CAFE

손님방

이상의 오감도는 한일합방 3.1운동 만주사변을 축으로 쓴 민족시다. - 김유섭

작성자김유섭|작성시간19.06.20|조회수448 목록 댓글 1

이상의 오감도는 한일합방 3.1운동 만주사변을 축으로 쓴 민족시다. 

 

김유섭


  방대한 이상에 관한 자료 중에 다음의 간략한 몇 가지 것들로 한정해서 시 오감도를 읽으려고 한다. 이상은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그해 조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건축기사로 입사했다. 그리고 1933년 각혈로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동경에서 1937년 사상불온 혐의로 구속된다. 그해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한다. 1933년 “가톨릭 청년”에 국문으로 꽃나무, 이런시, 등을 발표했고 1934년에 조선중앙일보에 국문시 오감도를 연재 하지만 15편에서 중단된다. 그 외에 더 많은 이상의 소설과 시(일문시 포함), 수필 등과 그의 탄생과 성장 과정, 백부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 것 등등 방대한 량의 연구가 있지만 다음의 것들에만 주목하려고 한다. 하나는 이상이 총독부에 근무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상은 건축기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건축기사의 설계도 그리기와 그림 그리기가 이상의 시에 비슷하게 작용하는 듯해서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필요시에만 언급하겠다. 또 하나 간접적인 증언이지만 동료 문인이자 친구인 박태원은 이상에 대해서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는 않았다."면서 "이상의 이번 죽음은 이름을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든가 - 그러한 의혹이 농후하여진다."고 하기도 했다. (*박태원 수필집 '구보가 아즉 박태원일 때' 조선일보 2005.01.03)


  오감도는 이상이 전 30편 연재를 계획했지만 결국 15편에서 끝나고 말았다. 때문에 우리가 아는 것은 이상이 생각했던 오감도 전체의 절반인 것이다. 이것은 오감도 15편의 시와 특히 오감도 제 1 호를 해석하는데 많은 제약을 준다. 왜냐하면 연작시 오감도는 이상이 살던 1930년대 초반의 시대상황을 건축물 도면의 형식으로 구상하고 쓴 듯하다. 즉 현실의 건축물 도면은 미래에 지어질 건축물을 미리 100/1 또는 1000/1 등의 축소된 도면으로 그리고 그 도면에 의해서 실제 현실의 건축물이 후에 만들어진다. 그러나 오감도는 정 반대의 형식이다. 이상이 살고 있던 1930년대 초반의 시대상황과 우리민족이 처해있던 현실을 도면의 형식으로 축소 압축하여 그리듯 그려낸 것이다. 때문에 건축물 도면에서 제일 첫 장에 건축물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조감도나 건축물 전체를 볼 수 있는 도면이 배치된다. 그리고 그 뒤에 그 건축물의 세부 도면이 따라붙는다. 말하자면 각 방의 구조, 기둥의 크기와 모양, 문의 위치, 배관, 전기 배선, 등등의 건축물 규모에 따라 세부 도면만 수십 장에서 수백 장 이상인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이상이 오감도를 30편으로 계획했다면 당연히 첫 시는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29편의 시가 그 첫 편의 시를 뒷받침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세부도면에 해당하는 세부 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오감도 제 1 호를 완벽하게 해석하려면 나머지 세부도면에 해당하는 29편의 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감도는 15편에서 중단되었고 나머지 15편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까 오감도 제 1 호를 해석하려면 나머지 14편의 세부 도면에 해당하는 작품을 기초로 나머지 15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추측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추축이라는 것도 최소한의 근거가 있어야 다소나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근거라는 것 안에 오감도 제 1 호 시 안에서 최대한 발굴해 내는 것이 첫 번째 최선이고 다음이 세부 도면에 해당하는 14편의 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상이 오감도를 발표할 즈음에 발표한 시 몇 편일 것이다.


  이상은 때로는 격렬한 우리 민족의 자의식과 현실인식의 자각을 외친 시인이었다. 상당수의 시가 민족적 자의식과 민족의 현실자각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을 민족시인라고 해도 터무니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제목 오감도는 간단하게 말하면 죽음의 도면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즉 1930년대 초반 우리 민족이 처한 시대상황과 현실을 바라보는 이상의 관점은 까마귀를 연상시키는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도면의 형식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세상을 축약해서 보기 쉽게 그러나 강렬하게 독자의 심장을 찌르겠다는 것이다. 오감도 연재를 중단하면서 남긴 “오감도 작자의 말”에서

  “오감도 연재를 마치면서 이상은 “이천점(자신이 쓴 시: 필자 주)에서 30점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달고 그만 두니 서운하다. 깜박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지만 이태준, 박태원 두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준 데는 절한다. 철―이것은 내 새 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굴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물론 다시는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이고 위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따는 정신병이나 고치겠다”라는 “오감도 작자의 말”을 남겼다.“
[출처]이 상 오감도 시 제 1호 해설|작성자시의눈 sienun


  위의 이상의 “오감도 작자의 말”에서 보았듯이 오감도 연재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용대가리라고 말할 정도의 거대한 기획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놓았”다는 말 그리고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라는 말은 오감도를 해석하는데 큰 정보를 주고 있다. 즉 1931년에는 일본제국주의의 만주침략과 이어서 만주국을 세웠고, 그 무렵부터 일제의 한민족말살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한다. 인력약탈, 자원약탈, 조선어 사용금지, 창씨개명  등이 시작된다. 그야말로 암흑기였던 일제 시대였지만 이 시기부터 더욱 엄혹한 우리 민족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상이 오감도 연작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오감도”라는 제목부터 들여다보면 제목 오감도는 은유다. 즉 조감도는 대부분 미래의 청사진이다. 그러나 이상이 생각하는 당시 1930대 초반에서 바라보는 조선의, 즉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는 행복한 청사진이 아니라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죽음의 까마귀를 그린 도면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내용으로 들어가자.


  연작시 첫머리를 장식한 오감도 제 1 호는 이상이 공언한 용대가리에 해당하는 전체 도면이다. 그래서 오감도 연작시 30편을 집약시킨 거대한 상징과 메시지가 들어있다. 즉 오감도 제 1 호는 세 가지 중대한 시대적 사건을 기초로 상징물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세부적인 몇 개의 상징물과 등장인물의 행위로 그 사건들을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등장인물의 행위는 중요한 상징이고 은유이다.

  오감도 제 1 호에 나타나는 상징물은 13인의 아해, 도로, 막다른 골목, 뚫린 골목, 다른 사정, 그리고 상징과 은유를 가진 행위는 질주, 질주하지 아니하는, 무서워하는, 무서운, 이다. 즉 상징물 5개와 행위상징 4가지다. 이 9개의 상징으로 시가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어떻게 세 가지 중대한 시대적 사건을 설명하면서 우리 민족의 현실과 시대상황을 나타내는 것인가?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오./(길은 막다른 골목이 適當하오.)//
 
  첫 번째 상징물인 “13인의 아해”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다.
  이상이 연작시 오감도에 축으로 삼은 3가지 중대한 시대적 사건의 첫 번째 사건을 바로 이 13인의 아해가 말해주고 있다. 이 13인의 아해는 1910년 한일합방을 상징하고 있다. 1910년은 이상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된 일제강점의 출발점이 되는 사건인 한일합방이 있었다. 그런데 이 한일합방과 13인의 아해가 무슨 상관인가? 한일합방 당시 조선의 인구가 1,3백만이었다. 이 1,3백만 조선인은 한일합방이 되는 순간 일제 식민지 지배의 아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현실적 사건을 축소된 도면에 이상은 13인의 아해로 표시한 것이다. 이것의 또 하나 근거는 오감도 제 2 호다. 뒤에 설명하겠다.

 

 두 번째 “도로”는 무엇인가?
  도로는 침략이면서 약탈이면서 지배이면서 문명이면서 속도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도로는 시 오감도 안에서 당연히 일본제국주의라는 것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질주“는 한일합방으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된 이 13인의 아해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된 처지다. 즉 도로를 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강제로 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질주는 일제가 지시하고 명령하는 방식의 삶이고 절망적 현실과 미래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13인의 아해에게 ‘도로’라는 것이 또 ‘질주’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도로나 질주와는 너무나도 무관하게 살아온 우리 민족이 하루아침에 일제의 식민지 지배라는 도로로 내몰려 죽은 듯 질주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이상은 소리친다. 그것은 질주가 아니라 일제가 강요하고 명령하는 죽음에 다름 아닌 절망적인 현실이고 미래일 뿐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막다른 골목”은 무엇인가?
  “죽음의 벽으로 막힌 골짜기”라는 말이다. 즉 한일합방으로 일제의 아해가 되어버린 1,3백만 우리민족이 일제가 강요하고 명령하는 죽음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속사정 즉 내부를 들여다보면을 ()로 표시하면서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의  질주를 하는 꼴이라고 하는 표현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3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4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5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6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7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8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9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10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2연이다.


  다섯 번째 상징 “무섭다고”가 무슨 말인가?
  일제 침략으로 주권을 잃어버린 우리민족이 일제 식민지 지배의 아해로 살아야 하는 삶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망적인 삶의 질을 말하고 있다. 일제에 지배당하는 삶이 무섭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2연에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해는 13인인데 왜 10인의 아해만 한 연에 묶었을까? 나머지 3인의 아해는 다음 연으로 떼어놓은 이유가 뭘까?
  다시 말하지만 이상은 건축기사이며 이 오감도 제 1 호는 도면 그리기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러한 이유로 이상의 연 나누기가 일반적인 시인의 연나누기와는 다른 점이 있다. 건축기사는 설계도면에 공간 하나까지 계획에 넣는다. 어쩌면 설계는 공간 나누기 또는 배치하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상이 이 2연에 10인의 아해만 배치한 것은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2연 10인의 아해는 10년의 세월을 말하고 있다. 이 10년은 1919년 3.1운동 이후 10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3연에서 나머지 3인의 아해와 합쳐져서 3.1운동 후 13년이 지난 시점을 말하고 있다. 왜 그런가? 너무 뜬금없지 않나? 역시 3연에서 이상이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


제 1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1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13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았소.)


  이 3연이 오감도 제 1 호의 가장 정점이고 이상이 계획한 나머지 시대적 사건 2개가 등장한다. “무섭다고”만 하던 아해 중에서 갑자기 “무서운 아해”가 등장한다. 즉 3.1운동 이후 10년 그리고 그 이후 다시 3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는 시점에서 무서워하기만 하던 아해들 중에 변화가 생긴 것을 연나누기로 이상은 말하고 있다. 즉 1932년 전후다. 이상이 오감도 작자의 말에서 남긴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놓고”에서 말한 그 시기다. 오감도 시점으로 현재라고 해야 할 지점이다.


  여섯 번째 “무서운 아해”는 무엇인가?
  가령 당시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실제로 일본인 형사가 무서운가? 아니면 일제 경찰에 근무하는 조선인 형사가 무서운가? 이 질문에 무서운 아해의 정체가 들어있다고 본다. 즉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을 넘어서서 앞장서는 아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무서운 아해들의 정체다. 무서운 아해의 본격적인 등장은 1931년에 일제의 만주침략,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시작된 것이리라. 일제의 본격인 물자수탈, 인력동원, 민족말살 정책의 시행, 조선어 사용금지 창씨개명 등의 폭압이 밀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무서운 아해들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무서운 아해는 몇몇 친일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 만주군관학교 출신 일본군 장교였다. 이상은 이때 민족이 본격적으로 분열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즉 살아남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무서운 아해가 되든지 아니면 그냥 일제를 무서워하기만 하는 19세기적 삶을 살던지 둘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뿐이 모였소.”라고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무서운 아해의 등장은 만주사변을 상징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일제의 만주 침략과 만주국을 세운 사건을 오감도 제 4 호로 뒷받침하고 있다.


  일곱 번째 “다른 사정”이란 무엇인가?
  이상은 1연 2행과 마찬가지로 ()를 사용해서 속사정은 또는 내면을 들여다보면 ~ 이렇다. 를 사용하고 있다. “다른 사정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았소.” 라고 한다. “차라리 없는 것이” 라는 것은 있었던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즉 이미 있었지만 오히려 없는 것이 나았던 사건을 말하고 있다. 이상이 우리 민족에게 1930년대 초반이라는 시점에서 되돌아보아 차라리 없었으면 나았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사건은 3.1운동이었던 것이다. 1919년 불길로 타올랐던 3.1운동의 결과적 실패는 우리 민족에게 좌절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1920년대 문학사조마저 허무주의 낭만주의 카프 등의 등장으로 그 절망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윤심덕의 “사의 찬미” 역시 1926년 대 히트를 친다. 살아서 뭐하나? 이 풍진 세상, 3.1운동의 결과적 실패가 한일합방에 이어 우리민족을 해어나 올 수 없는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한 것이라고 이상은 인식한 것이다. 이 3.1운동을 오감도 제 3 호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4연이다. 이 4연이 4행으로 이루어진 것을 제목 오감도 힘을 빌어서 죽을 4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겠다. 4연 4행이 죽을 4의 의미를 가진다. 왜? “무서운 아해라도 좋”고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리고 꼭 4행으로 만들었을까?
  일제 식민지 지배아래 놓인 우리 민족은 이래도 저래도 죽음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무서워하는 아해와 달리, 무서운 아해 즉 살아남기 위해 진심으로 질주하려는 아해에게도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임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즉 무서워하는 아해이거나 무서운 아해가 되거나 일제 식민지 지배를 당하는 피지배 민족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이상은 1933년 “가톨릭 청년”에 발표한 “꽃나무”에서 이미 잘 설명하고 있다. <꽃나무와 오감도 제 2 호, 제 3 호, 제 4 호는 뒤에 설명하겠다.>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適當하오.)
十三人의 兒孩가 道路를 疾走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마지막 5연이다. 여덟 번째 “뚫린 골목”은 무엇인가? 이 마지막 5연에서는 왜 ()가 앞서 두 번, 앞 행 뒤에 붙어 사용된 것과는 달리 먼저 ()가 사용된 것일까? 이상은 이 마지막 5연에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희망을 우리 민족에게 제시한다. 그래서 ()를 앞 행으로 내세우고 그 뒷 행에 행위 상징을 진술하면서 그것의 방법론을 강조해서 밝히고 있다. 즉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는 뚫린 골목정도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좋다는 말이다. 여기서 “적당하오.”는 1연 2행의 “적당하오.”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1연 2행은 “적합하다.”는 의미이고 이 5연 1행은 “좋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라도“는 정도라고 해석된다. 따라서 ”뚫린 골목정도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좋다.“ 라는 진술이다. 이 속마음은 도치되어 있다. 다음 행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술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홉 번째 “도로를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는 무엇인가? 이것은 질주에 대한 거부를 말한다. 구체적 방법이 무엇인지 불분명하지만 명백한 것은 일제가 지배하고 명령하는 삶의 중단을 의미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아마도 오감도 다른 편에서 밝혔을 듯싶지만 부족한 내 능력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상은 우리민족이 일제에 지배당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희망을 밝힌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못한 삶은 어떤 경우에도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상은 오감도 제 1 호에서 우리 민족이 처한 죽음의 현실을 제시하면서 이 죽음의 현실을 자각하고 작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 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시의 흐름에 따라 조금 추측을 보탠다면 아마도 이상은 “도로를 질주하지 아니하는” 것에 대한 방법론과 그리고 그 성공 가능성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하더라도 도로를 질주하지 아니해서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할지언정 일제 식민지 지배아래 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또한 도로를 질주하지 아니하는 방법 중 분명한 하나는 3.1운동과 같은 비폭력 저항은 절대로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오감도 제 3 호에 드러나 있다. 때문에 이상이 꿈꾸던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몹시 궁금하다. 다만 이상이 주장하는 것 하나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그러한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왜 이렇게 시를 암호처럼 써야만 했을까? 물론 그가 모더니즘 시에 정통해 있었고 선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 모더니즘 시 잡지 『시와 시론』을 구독하고 또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즉 이상은 새로움에 목말라 있었고 그 새로움은 쉽게 읽히지 않는 시, 일상의 경험을 기술적으로 왜곡시키는 시, 낯설게 하기 등등을 추구하는 시를 쓰고 있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수의 시편들 그리고 적어도 오감도 연작시에서는 일제에 반대하는 시를 썼다가 발각되면 어떤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총독부에 근무했던 이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고 난해하게 연막과 위장술까지 사용하면서 쓴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상은 영민한 사람이었고 불치병인 결핵을 앓고 있었다. 단 한 번의 투옥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리하여 자신의 의도를 최대한 숨긴 시를 쓰고 일상생활 역시도 숨긴 부분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왜냐하면 오감도 작자의 말 끝에 “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시는 이런―물론 다시는 무슨 방도가 있을 것이고 위선 그만둔다. 한동안 조용하게 공부나 하고 따는 정신병이나 고치겠다”라는 “오감도 작자의 말”을 남겼다.“ 여기서 ”정신병이나 고치겠다.“ 는 말은 연막이고 위장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연막 또는 위장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오감도 연작시에도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즉 오감도 제 1 호, 용대가리를 뒷받침하는 세부 시가 아닌 전혀 엉뚱한 주제의 시가 연작시에 더러 섞여 연작시 오감도의 거대한 주제를 위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감도를 해석할 때 이 연막 시 또는 위장 시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상이 불행하게 산 것이 아니라 이상이 살던 일제 식민지지배 시절이 불행이고 비극이었던 것이다.


  이상은 오감도 제 1 호에서 한일합방과 3.1운도 그리고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 만주국 세움을 골격으로 시를 한 장의 건축물 설계도면 그리듯 쓴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어서 오감도 제 2 호로 한일합방을 오감도 제 3 호로 3.1운동을 또 오감도 제 4 호로 일제의 만주침략을 사건 순서대로 뒷받침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상은 당시 1930대 초반 극도로 암울했던 우리민족의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면서 그것에 무너지지 않고 작은 희망의 미래를 제시하려는 의도로 이 오감도 30편을 계획했다고 생각된다. 그 방법론의 하나로 우리민족의 현실 자각을 소리친 것이다. 이상이 작자의 말에서 “호령”이라고 했던 그 “호령”이 민족의 현실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자각에는 일제 식민지 지배 속에 사는 우리 민족은 어떤 경우라도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라는 외침이다. 오감도라는 제목 역시도 그러하다. 한일합방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이 일본민족으로 통합 될 수 없는 까닭을 여러 편 시에서 밝히고 있다. 식민지 착취를 해야 하는 일제에게 우리민족은 착취와 멸시와 차별과 지배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자명한 현실 상황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그런 자각이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상은 오감도 제 1 호라는 연단위에 우뚝 서서 외치고 있다.


1. 한일합방을 설명하는 오감도 제 2 호


 나의 아버지가 나의 곁에서 조을 적에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고 또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고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대로 나의 아버지인데 어쩌자고 나는 자꾸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느냐 나는 왜 나의 아버지를 껑충 뛰어넘어야 하는지 나는 왜 드디어 나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노릇을 한꺼번에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냐
 
    - 오감도 제 2 호 전문  -

  이 오감도 제 2 호가 왜 한일합방을 설명하는 시인가?
  나의 곁에서 졸고 있는 아버지는 무능한 아버지이다. 이러한 아버지는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아버지이다. 그래서 한일합방이 일어났고 그런 까닭에 나는 자꾸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즉 일제 식민지 지배아래 사는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고 그 조선인이라는 것은 민족적 차별이고 멸시이고 식민지 지배를 당하는 민족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로 이어져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나는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나는 자꾸 “중략 아버지가 되느냐” 고 일제에 의해 조선인이기에 당하는 멸시와 민족적 차별 앞에 신세를 한탄한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더러 살아남기 위해서 아버지를 껑충 뛰어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드디어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하는 조선에서 조선인이라는 것은 “나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노릇을 한꺼번에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즉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조선인임을 일제는 언제나 차별과 멸시와 지배와 명령으로 피지배 민족임임을 각성시켜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근원적인 이유는 한일합방임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한일합방이 없는 조선에서 살았더라면 시시각각 조선인이라서 민족적 차별과 멸시와 명령에 굴복해야 하지 않는 조선의 백성, 이상으로 살았을 것이라며 한일합방을 막지 못한, 졸고 있는 아버지 세대를 원망한다. 이것을 이상은 용대가리인 오감도 제 1 호 뒤에 첫 번째 사건으로 배치한 것이다.


2. 3.1운동을 설명하는 오감도 제 3 호


  싸흠하는사람은즉싸흠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흠하는사람은싸흠하지아니하는사람이엇기도하니까싸흠하는사람이싸흠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흠하지아니하던아니하던사람이싸흠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흠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흠하는구경을하든지싸흠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흠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흠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오감도 제 3 호 전문-

  도입부부터 이상이 뿌린 연막으로 자욱하다. 싸움하는 사람,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 등이 등장하지만 사실 오감도 제 3 호의 골자는 싸움하는 사람의 싸움 구경이다. 나머지는 연막으로 시의 주제를 은폐하고 있다. 싸움하는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임을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주된 내용은 일본 제국주의에게 싸움 구경을 시켜준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뭐가 그렇다는 말인가? “싸움하지 아니하는 것을 구경”이 이상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즉 싸움 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일본 제국주의에게 싸움하지 아니하는 것을 구경시켜준 것 말이다. 여기서도 “든지”를 거듭 사용해서 연막에 연막을 치고 있지만 마지막 “구경하든지 하였으면 그만이다.” 라고 시를 마무리한다. 싸움 구경을 하려는 일본 제국주의에게 싸움하지 아니하는 구경을 시켜준 것이 무엇인가? 싸움하지 아니하는 구경이란 비폭력 저항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제국주의에게 보여준 우리 민족의 대표적 비폭력 저항은 3.1일 운동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에게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에게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비폭력 저항이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얼마나 처참한 희생과 좌절을 남기고 현실적으로 실패 했는지 보지 않았냐고 이상은 역설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민족이 처해있는 현실임을 인식하고 자각해야 한다고 그래서 “하였으면 그만이다.”라고 분노에 찬 듯 시를 끝맺고 있다. 이상의 이 진술로 보아 그가 꿈꾸는 우리 민족의 희망의 방법론 중에 비폭력 저항은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오감도 제 1 호 3연 5행 ()속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앗소”라던 진술을 이해할 수 있다.


3. 일제의 만주사변을 설명하는 오감도 제 4 호


 오감도 제 4 호는 환자 용태에 관한 문제라는 부제가 달린 시다. 이것은 의사가 발행하는 진단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뒤집어진 숫자에 1에서 0까지 차례로 하나씩 숫자와 숫자 사이 가운데 의도적으로 점을 찍어 11개씩 11개의 행으로 그려 펼쳐놓았다.
 시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11 행은 질서를 상징하는 숫자 1에서 0까지에서 숫자 사이 한 가운데에 점을 찍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점은 한 행씩 내려갈 때마다 한 칸씩 숫자 사이로 들어와 찍혀있고 0,9,8,7,6,5,4,3,2,마침내 마지막 행 숫자 1 앞에까지 찍혀있다.

 이것은 1부터 0까지라는 질서의 세계가 숫자와 숫자 사이로 파고들어 찍은 점에 의해 깨어져 있고 그런 탓에 무너진 질서 때문에 뒤집혀져 있는 세계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를 그림의 형태로 보았을 때 숫자 사이로 틈입해 들어온 점이 질서의 세계를 칼로 자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어서  “진단 0ㆍ1”에서 진단이라는 단어 뒤에 붙어있는 0과 1 사이에도 가운데 점이 찍혀있다. 또 그 아래로 년도와 월과 일을 뜻하는 <26 ㆍ10 ㆍ1931>이라는 숫자 사이에도 역시 가운데 점이 찍혀있다.(이상의 자필 원고 원본 참조) 이것은 이상이 의도적으로 숫자 사이 한 가운데에 점을 찍은 것이고 이 점은 태양을 의미하는 일본 국기에 그려진 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이상은 이 시에서 질서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일장기를 앞세워 침입해온 일본 제국주의를 치밀하게 그림 그리듯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왜 진단서가 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이처럼 진단하고 있으므로 “책임의사 이상“이라고 명시한 이유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되돌아 이 시를 다시 읽어보면 1에서 0까지로 표현되는 질서의 세계를 무너뜨리며 일장기를 앞세운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해 들어왔고 따라서 1에서 0까지 질서의 세계는 칼에 사선으로 벤 듯한, 회복불능의 뒤집힌 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조선 또는 우리 민족의 용태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시대를 진단하는 이상의 비극적이고도 절망적인 현실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이상은 본문에 이어 시 끝부분에도 “진단 0ㆍ1”라고 부연하여 0과 1까지 질서의 세계를 침략해 들어온 일장기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압축해서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년, 월, 일에도 가운데 점을 찍어, 단 한 순간 숨 쉴 틈도 없이 일장기를 앞세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세계임을 외친다.
 
 또한 이상은 일본 제국주의에 강점당한 조선과 우리 민족의 내면 상태를 격렬하고도 충격적으로 드러내어 불치의 환자라고 절규하는 것과 동시에 1931년을 명기해서 오감도 제 4 호가 만주사변을 상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즉 1931년은 일본이 만주를 침략해 만주국을 세운 해이다. 그래서 이 불치의 진단상항은 조선을 넘어 만주로 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만주사변 전후를 기점으로 자원수탈, 인력수탈, 창씨개명, 조선어 사용금지 등등 민족말살 정책이 시작되었다. 때문에 무서운 아해들이 생겨났다는 오감도 제 1 호 3연의 해석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4. 오감도 제 1 호 4연 “무서운 아해라해도,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이상의 시 꽃나무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가 하나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런 숭내를 내었소.

   - 시, 꽃나무 1933년 『가톨릭 청년』에 발표 -


 꽃나무는 이상이 오감도보다 한 해 전인 1933년에 발표한 시다. 이 시에 나타나는 것은 민족의 현실 자각이다. /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벌판 한복판에 하나로, 혼자 서 있는 꽃나무는 외로운 꽃나무이며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꽃나무이다.
  그런 까닭에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서 있어/ 봐야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로 갈 수 없는/ 운명을 가진 꽃나무이다.

 이것은 일제 식민지배 시대를 일본인 흉내를 내면서 일본인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 속에 놓인 조선 사람, 즉 우리 민족의 현실적 자각인 것이다.
  /나는 막 달아났소/라는 진술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런 숭내를 내었소./라는 진술에서 아무리 꽃을 피워가지고 있어봐야 내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절망은 절벽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즉 조선 사람이 마치 일본 사람이 될 수 있기라도 한 듯, 일본 사람 흉내를 내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참 이상스런 숭내/인 것이다.

  조선 사람이 아무리 일본 사람인 척 흉내를 내어봐야 일본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일본 사람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자신의 삶은 벌판 한복판에 혼자 서서 일본 사람 흉내 내기나 하고 있는 우스운 존재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런 자신의 삶에 절망하고 또한 그처럼 일본 사람 흉내를 내어야만 하는 일제 식민지 지배 상황이 절망과 부끄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의 화자는 /막 달아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 꽃나무의 주제는 우리 민족의 현실 자각이다.

  이러한 시 꽃나무의 주제는 오감도 제 1 호 4연의 무서운 아해나 무서워하는 아해나 다를 것 없이 같은 처지이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단서를 준다. 무서운 아해나 무서워하는 아해나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피지배 민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 그러한 현실을 자각하라고 이상은 우리 민족에게 오감도 제 1 호에서 소리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중략)



이상의 90년간 에코 없는 죽음과 희망의 일장연설! 오감도 해설을 올리면서

6년 전인 2013년에 문예지 여기저기 그리고 신춘문예까지 응모했었지만 적막뿐이었던 원고를 꺼내 다시 퇴고하고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추가할 것은 추가하면서 고민했다. 발표지면도 없는데 그리고 앞으로 발표지면이 생길 가능성 역시 제로인데 그냥 계속 묻어둘 것인가? 아니면 페북, 블로그, 카페에라도 올릴까?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공을 들인 원고다. 하지만 이미 많은 시인 평론가 학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하고 있고 수많은 논문, 평전 등이 발표되었는데 아무 형식이나 자격도 갖추지 못한 내가 이 글을 발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더 큰 고민은 90년간 이어져온 이상의 오감도 해석과 너무나도 다른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내가 오독하는 것일 터이지만..... 그래도 6년이나 묻어 두었던 원고를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올립니다.

원고지 140매... 분량이어서 줄여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naver 블로그 “찬란한 봄날”, 다음 카페 “미래서정” 에 전문을 올립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박선희 | 작성시간 19.06.24 정독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