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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오감도 제 5 호는 왜놈 즉 일제에 대한 격렬한 저항과 혐오를 드러낸 시다.

작성자김유섭|작성시간19.07.30|조회수2,052 목록 댓글 0

이상 오감도 제 5 호


김유섭


  오감도 제 5 호는 이 해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감도 제 1 호가 전체를 조감하는 도면이라고 설명한 것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오감도 5호부터는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의 시가 나와야 한다. 즉 오감도 제 2 호가 한일합방, 오감도 제 3 호가 3.1운동, 오감도 제 4 호가 만주사변을 큰 틀에서 상징하고 설명하는 것이라면 앞서 말했듯이 오감도 제 5 호부터는 세부적인 내용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감도 제 5 호는 무엇을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前後左右를除하는唯一의痕跡에잇서서
翼殷不逝 目不大覩
반矮小形의神의眼前에我前落傷한故事를有함.

臟腑라는것은浸水된畜舍와區別될수잇슬는가.
 
 -이상, 오감도 제 5 호. 전문-


  오감도 제 5 호는 오감도 제 2 호에서 한발 나아가서 한일합방과 그로인한 우리민족의 절망적인 처지와 삶을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림까지 동원해서 말이다. 친절한 이상 씨다.
  오감도 제 5 호는 이상이 1932년 조선 건축회의 기관지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제목 “二 十 二 年”의 일문 시를 다시 1934년 오감도 제 5 호로 퇴고해서 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오감도 제 5 호로 발표하기 전에 이미 일문으로 발표한 시의 제목에 주목해야 한다.
  1932년 이상이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일문 시 제목이 “二 十 二 年”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의미는 한일합방으로부터 22년이 지난 시점임을 말하는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뒤에 오감도 제 5 호로 발표하면서 다소 퇴고되었지만 주제는 동일하다. 즉 한일합방과 그로인한 우리민족의 절망적인 처지와 삶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1932년을 한일합방으로부터 22년이 지난 해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국경일이나 생일이나 의미 있게 가슴에 되새겨야 할 날을 기억하고 기리듯이 말이다. 이것은 우리민족을 비극에 빠뜨린 치욕적인 사건으로 이상이 한일합방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오감도 제 5 호의 내용을 보면 일본제국주의 즉 왜놈에 대한 강렬한 저항과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오감도 제 5 호로 발표하면서 부제 정도로 “二 十 二 年”을 넣지 않았는가? 오감도를 발표할 당시는 이미 2년이 지난 1934년이었고 만약 부제로 붙인다고 하더라도 “二 十 二 年”을 “二 十 四 年”으로 바꿔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二 十 四 年”을 오감도 제 5 호에 붙인다면 누구라도 이것이 한일합방 이후 24년이라는 것을 눈치 챌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 일본 제국주의자들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이상은 일문 시로 발표한 “二 十 二 年”이라는 제목을 삭제하고 발표한 것이다.


  다시 오감도 제 5 호로 돌아와서 그림을 보자. 이것을 도형이라고 하는 분도 계시고 여러 다양한 해설들이 있지만 그냥 완성되지 못한 사각형이다. 그리고 좀 더 이상식으로 들여다보면 완성되지 못한 사각형의 내부는 꺾어지고 꺾어져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완성되지 못한 한일합방을 상징한다. 이상은 그것을 친절하게도 1행과 2행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니 1행과 2행을 부연해서 아예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겠다.



前後左右를除하는唯一의痕跡에잇서서
翼殷不逝 目不大覩


  1행 /전후좌우를제하는유일의흔적에잇서서/ “전후좌우를 제하는 유일의 흔적에 있어서”에서 “전후좌우를 제하는”의 의미는 한일합방이 무지막지한 침략과 폭력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일본제국주의의 폭력적이고 침략적인 방식으로 강제로 만든 억지합방이라는 것이다. 합방이란 쌍방이 서로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정당한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한일합방은 일제의 일방적인 침략과 폭력의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때문에 그 결과는 즉 전후좌우를 제한 “흔적”인 2행, /익은불서 목대불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날개는 크지만 날지 못하고 눈은 크지만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상은 한일합방의 결과는 덩치만 커진 쓸모없는 괴물을 탄생시켰을 뿐, 결코 일본의 뜻대로 성공한 것이나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민족에게 그러한 한일합방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기도 하다. 한일합방으로 우리민족이 일본제국주의와 하나가 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일본제국주의와 뒤엉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임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서까지 부연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상은 3행에서 치욕적인 한일합방을 더욱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혐오감을 드러낸다.



반矮小形의神의眼前에我前落傷한故事를有함.


  “반왜소형”을 해석하면 반동가리 왜에 소형이다. 여기서 이상은 “반”을 한자가 아닌 한글로 써서 연막을 치면서 속된말로 쥐똥보다 작은 왜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 이상은 대놓고 왜놈을 말하는 것이다. 구한말에서 일제시대를 살아오신,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어린시절 한번도 일본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왜놈”이다. 일본 제국주의시대가 아니라 “왜정시대”였다. “왜놈” “왜정시대”, 할아버지 할머니 독립운동하신 분도 아니고 왜정시대에 적응해서 열심히 사신 분들이다. 언제부터 일제강점이었나? “왜정시대”다. 언제부터 일본 사람이었나? “왜놈”이다. “일본제국주의”, “일본 사람”은 아마도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된 이후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튼 반왜소형 왜놈이 신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왜놈 신은 왜의 천황으로 읽히는데 물론 그 왜 천황의 분신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 왜놈 천황 눈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왜놈 신에게 우리민족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아전낙상”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더 구체적으로 “아전낙상한고사를유함” 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제국주의 왜놈 신 앞에서 낙상한 고사라는 것은 침략의 치욕적인 한일합방을 말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상이 태어난 해에 일어난 일이다. 때문에 이상은 한일합방의 책임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 그래서 “아전”이라는 말을 쓴다. 오감도 제 2 호에서 “졸고 있는 아버지” 그 무능한 아버지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그 무능한 아버지의 아들일 뿐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왜놈 신에게 지배당하는 민족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일합방이라는 자신 앞에서 벌어져서 낙인이 되어버린 옛날이야기가 있음을 이상은 24년이 지나간 1934년을 살고 있는 우리민족 모두가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제국주의 왜놈에 의해서 강제로 합방된 피지배민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야 하고 또 “아전낙상한고사”는 강제로 맺은 합방이고 그로인해서 우리민족의 삶이 순식간에 치욕과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임을 잊지 말고 각성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어떤 치욕과 나락인가?
 


臟腑라는것은浸水된畜舍와區別될수잇슬는가.


  이상은 한일합방 이후의 우리민족의 삶을, 내장이 침수된 축사와 구별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속된말로 내장이 썩어 문드러졌다는 것이다. 내장이 썩어 문드러진 민족, 침수된 축사는 똥물로 가득 찬 곳이다. 축사는 키우는 가축이 배설한 똥과 오줌이 항상 뒤섞여 있는 곳이다. 그곳이 물에 잠기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가축의 똥물이 되어 출렁일 뿐이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는 똥물! 똥물에 잠긴 것과 구별할 수 없는 내장으로 삶을 살고 있는,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민족이라는 것이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일제가 내놓는 그 어떤 삶의 방식도, 유화정책도 가축에 지나지 않는 왜놈의 똥물에 내장이 잠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절망적인 삶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은 오감도 제 5 호에서 오감도 제 2 호의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일합방으로 우리민족이 처한 절망적인 처지와 삶의 참상을 세부적으로 보여주면서 왜놈, 즉 일제에 대한 격렬한 저항과 혐오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 만세!!!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바로 이 연작시 제목이 왜 오감도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청사진이 아니라, 절망과 죽음으로 가득 찬 까마귀를 그린 “오감도”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그 이유를 이상은 오감도 시 제 5 호로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이상의 시를 여러 가지 각도로 해석하고 있지만, 오감도를 발표하기 2년 전인 1932년에 “조선과 건축”에 그것도 일문으로 한일합방의 부당성과 일본 제국주의를 조롱하는 시를 발표한 이상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시인 만해나 이육사 등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었던 분들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민족운동의 방식을 좀 더 폭넓게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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