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 詩 제 12호(十二號)
때무든빨내조각이한뭉탱이空中으로날너떠러진다. 그것은흰비닭이의떼다. 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戰爭이끗나고平和가왓다는宣傳이다. 한무덕이비닭이의떼가깃에무든때를씻는다. 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맹이로흰비닭이를따려죽이는不潔한戰爭이始作된다. 空氣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무드면흰비닭이의떼는또한번이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 오감도 시 제 12 호 전문 -
이상의 오감도 연작시는 너무나도 독창적이고 특별하다. 흐릿하게 읽히는 활자화된 시를 서너 번 안개를 걷어내면 드디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모습이 놀라움이다. 놀라움의 하나는 안개를 걷어내지 않은 시와 마지막에 드러나는 시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안개를 걷어내지 않은 처음 시에서부터 한 꺼풀씩 안개를 걷어낼 때마다 시는 달라지지만 중요한 상징이나 은유적 이미지들은 뇌리에 그대로 남아 마지막에 드러나는 시의 모습에 선명함을 보태면서 동시에 그 의미의 폭도 확장시켜준다. 경이로운 시작법이다. 이상의 오감도 연작시는 입체이면서 도형이면서 다차원이다. 어떻게 한 시인의 두뇌가 이처럼 끝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고 높은지 우러러 바라만 볼 뿐이다.
오감도 시 제 12 호에 드디어 “무서운 아해”가 등장한다. 너무나도 비극적이다. 오감도 연작시 구조상 이쯤에서 나오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고 또 그 “무서운 아해”를 이상이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치밀한 이상 씨는 “무서운 아해”의 등장에서 다시 강화된 룰을 적용시키고 있다. 이제 익숙해졌을 테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이상이 말하는 것 같다. 이상이 살았던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시절이 얼마나 참혹하고 처참했으면 시를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때문에 더욱 이상이 위대해 보인다.
역시 오감도 시 제 12 호도 연막을 서너 번 벗겨야 그 본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데 첫 문장에서 “空中으로날너떠러진다.” 와 마지막 문장에서 “空氣에숯검정이가”를 제외하면 문맥의 흐름이 크게 막히는 곳이 없다. 이 두 곳을 살펴야 한다고 이상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두 곳을 제외하고 읽어도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안개를 몇 겹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시의 중요한 것은 “흰비닭이다.” “흰비닭이”는 “빨래”이기도 하다. 그런데 “빨래”인 “흰비닭이”가 스스로 깃에 묻은 때를 씻는다. 즉 빨래를 하는 주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는 빨래와는 무관하다는 말이 된다. 룰이 강화된 것이다. 해석을 하면서 설명하겠다. 이상이 안내하는 게임 속으로 들어가자.
“때무든빨내조각이한뭉탱이空中으로날너떠러진다.”
“빨내”는 당시 흔히 사용되던 단어로 보인다. 오장환의 “빨내”라는 시도 1934년 발표된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이상이 만든 장치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때무든빨내”다. 빨래는 보편적으로 때 묻은 옷을 말한다. 그런데 “때무든빨내” 즉 ‘석교돌다리’와 같다. 이상은 치밀한 사람이다. 이런 중복을 시에 쓸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이상이 강화시킨 새로운 룰이다. “빨내”를 살피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가보자.
“빨내”는 “때 묻은 옷”이다. 한자를 찾아보자. ‘구의’ 즉 ‘垢衣(때 묻은 옷)’이다. 垢衣의 한자 사전 의미를 살펴 문맥에 맞추자.
垢: 수치(羞恥), 부끄러움
衣: 행하다(行--), 실천하다(實踐--)
“빨내”는 ‘수치를 실천하다, 부끄러움을 행하다.’이다. 문맥에 맞추면
‘수치를 실천하다’이다.
이어지는 “조각이한뭉탱이空中으로날너떠러진다.” 이 문장에서 “空中으로”와 “날너떠러진다.”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문맥이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각 한 뭉탱이를 “空中으로날너떠러”지게 하는 주체가 없다. 빨내 뭉탱이가 저 혼자 공중으로 날너떠러질 수는 없다. ‘공중과 날너떠러지다’를 살피라는 것이다. 이런 장치 때문에 “빨내”와 같은 상징인 “흰비닭이”를 떼어서 뒤에 독립된 문장 하나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흰비닭이”와 같은 상징인 “빨내”가 시에 등장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시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이상이 만든 장치다. 정말 그런가? 가보자.
“空中”을 살피면
空: 부질없이, 헛되이
中: 몸, 신체
空中 : ‘헛되이 몸’이다. 문맥에 맞추면 ‘헛된 몸’이다.
“날너떠러지다”를 살펴야한다. 날아 떨어지는 것은 ‘추락(墜落)’이다.
墜: 드리우다(한쪽이 위에 고정된 천이나 줄 따위가 아래로 늘어지다), 늘어뜨리다
落: 죽다
墜落: ‘늘어뜨리다, 죽다.’ 문맥에 맞추면 ‘늘어뜨려져 죽다’ 문장을 맞춰보자.
“때무든빨내조각이한뭉탱이空中으로날너떠러진다.” 풀면,
“때 무든 수치를 실천한(빨내) 조각이 한 뭉탱이 헛된 몸(空中)으로 늘어뜨려져 죽는(날너떠러진)다.”
다음 문장으로 가자.
“그것은흰비닭이의떼다.”
다르게 설명할 것이 없는 문장이다. “비닭이”는 당시 흔히 사용하던 말인 듯하다. 물론 사전에는 전라도 방언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흰”이 붙어있다. “흰비닭이”다. 이것은 조선 민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시에 세 번 등장하는 “흰비닭이”는 모두 다른 무리다. 즉 조선 민족은 맞지만 세 가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조선 민족을 의미하고 있다. 흰비닭이가 조선 민족을 상징하는 것의 설명은 아래 자료로 대신하겠다.
<1895년 전국에 변복령(變服令)과 단발령이 내리자 이에 항의하는 의병전쟁이 일어난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는 백의를 숭상하는 한국인의 집착이 남달리 강했던 증거라 할 수 있다. 그 뒤 일제하인 1920년대에도 백의의 습속은 여전하여 사람들이 운집하는 시장은 마치 솜밭 같이 희다고 외국인들은 기록하고 있다. 중략....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 민족이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로부터 그러한 것으로서 수천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뒤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역대 왕조에서도 한결같이 흰옷을 입었다.”고 그 유래의 오래됨을 강조하였다. 중략...
일제식민주의자들은 한국인이 흰옷을 입는 까닭을 여러 모로 왜곡하였는데, 가령 도리야마(鳥山喜一) 같은 자는 그의 <조선백의고 朝鮮白衣考>란 논문에서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망국의 슬픔 때문에 백의를 입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야나기(柳宗悅) 같은 자도 백의민족의 유래를 “이 민족이 겪은 고통, 많은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백의를 마치 상복(喪服)이라도 되는 듯이 착각하고 있다. 중략.....
백의를 숭상하는 습속에 대해서는 3세기에 편찬된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 즉 부여의 “재국의상백(在國衣尙白)”이라든지, 변진(弁辰)의 “의복정결(衣服淨潔)”이라든지, 고구려의 “기인결청(其人潔淸)” 따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의민족 [白衣民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따라서 두 문장을 합쳐 풀면,
“때무든빨내조각이한뭉탱이空中으로날너떠러진다. 그것은흰비닭이의떼다.”
“때 무든 수치를 실천한(빨내) 조각이 한 뭉탱이 헛된 몸(空中)으로 늘어뜨려져 죽는(날너떠러진)다. 그것은 흰 비닭이의 떼다.”
위에 자료에서 확인했듯이 흰 비닭이 떼는 조선 민족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리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닮은 ‘백의민족’ 조선 민족이 때 묻은 수치를 실천하고 한 뭉탱이 헛된 몸으로 늘어뜨려져 죽는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1934년이다.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에 신음하는 조선 민족이다. 조선 민족이 ‘때 무든 수치를 실천하고 헛된 몸으로 늘어뜨려져 죽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 군대로, 인력동원으로 끌려간 조선 민족의 처참하고 헛된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때 묻은 수치를 실천”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 번째 “무서운 아해”의 등장이다. 우리는 오감도 시 제 1 호에 등장했던 그 “무서운 아해”를 여기서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戰爭이끗나고平和가왓다는宣傳이다.”
“이 손바닥만 한 한 조각 하늘”이다. 여기서 “손바닥 만 한 조각” 중복이다. 손바닥 만 하다는 이미 작은 하늘을 말한다. 그런데 뒤에 또 조각을 붙였다. 이상의 장치다.
그런데 또 하나 걸리는 것은 대명사 “이”다. 이 문장에서 굳이 손바닥 앞에 대명사 “이”가 붙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역시 중복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상이 “손바닥”과 “하늘”을 살피라는 장치다.
손바닥은 ‘掌’이다. 한자 손바닥 장‘掌’을 살피자.
掌: 받들다, 헌신하다(獻身--) 문맥에 맞추면, ‘헌신’이다.
다음으로 “하늘”을 살펴보자. 하늘을 의미하는 한자는 모두 6개다.
天하늘 천, 祆하늘 천, 靝하늘 천, 兲하늘 천, 靔하늘 천, 䒶하늘 천 등이다. 이 6개의 ‘하늘 천’ 한자 의미를 살펴 문맥에 맞추면
靝하늘 천: 목숨
“이 손바닥만 한 한 조각 하늘”을 풀면
“이 헌신(손바닥)만 한 한 조각 목숨(하늘)”이다. 이어서
“저편에戰爭이끗나고平和가왓다는宣傳이다.”
외형적으로 문맥이 맞다. 첫 문장에서 세 번째 문장까지 합치면,
“때무든빨내조각이한뭉탱이空中으로날너떠러진다. 그것은흰비닭이의떼다. 이손바닥만한한조각하늘저편에戰爭이끗나고平和가왓다는宣傳이다.” 풀면,
“때 무든 수치를 실천한(빨내) 조각이 한 뭉탱이 헛된 몸(空中)으로 늘어뜨려져 죽는(날너떠러진)다. 그것은 흰 비닭이의 떼다. 이 헌신(손바닥)만 한 한 조각 목숨 저편에 戰爭이 끗나고 平和가 왓다는 宣傳이다”
수치를 실천한 헛된 몸으로 늘어뜨려져 죽는 흰 비닭이의 떼는 제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끌려갔거나 자발적으로 참여한 조선 민족을 의미하고 상징하는 것이다.
그 조선 민족은 수치를 실천하고 헛되게 죽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어떤 명분이나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헌신만 한 한 조각 목숨에 지나지 않는 처참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 결과는 한 뭉탱이 헛된 몸으로 늘어뜨려져 죽는 것일 뿐인 어리석은 일이다. 왜? 조선 민족을 짓밟아 강점한 제국주의 일본의 전쟁에 나가 제국주의 일본의 승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조선 민족의 수치이고 헛된 죽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다음 문장이다.
“저편에戰爭이끗나고平和가왓다는宣傳이다.”
"이 헌신만한 한 조각 죽은 목숨 저편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다는 선전이다.” 그대로 읽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즉 제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해서 일본의 승리를 위해 죽어간 조선 민족 목숨이 한 뭉탱이 조각 죽음으로 늘어뜨러져 있어도 오직 제국주의 일본은 전생 승리만 선전할 뿐이다. 그만큼 제국주의 일본에게 조선 민족의 죽음과 헌신적 희생 따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선전(宣傳)은 과연 전쟁이 끝났는지도 의문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짚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이상이 작자의 말에서 밝혔던 31년, 32년 일이라는 것에 만주사변이 들어있음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오감도 시 제 12 호의 전쟁은 당연히 만주사변이라는 것에 반론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전쟁이 만주변이고 전쟁의 주체가 제국주의 일본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다소의 미진함이 있다. 그래서 위 문장을 다시 살피면 평화(平和)는 가짜라는 의미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제국주의 일본의 중국과 동남아 침략의 야욕은 지속되고 있었다.
오히려 전쟁은 더욱 확장되거나, 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때문에 “平和가 왓다는” 말은 당시 시대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이상이 강화한 또 하나의 룰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당시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단어를 살피라는 것이다.
평화: 平和
平: 평정하다
和: 나라의 이름(일본), 일본인들은 화(和)를 ‘와’로 발음하고 일본을 화의 나라(和國)라 하고 일본식 음식을 화식(和食), 일본 스타일을 화풍(和風)으로 부를만큼 화(和)를 그들 문화의 기본으로 여긴다
“平和”는 ‘평정한 일본 제국주의’로 풀면,
“저편에 戰爭이 끗나고 평정한 일본 제국주의(平和)가왓다는宣傳이다.” 다시 보면,
“때 무든 수치를 실천한(빨내) 조각이 한 뭉탱이 헛된 몸(空中)으로 늘어뜨려져 죽는(날너떠러진)다. 그것은 흰 비닭이의 떼다. 이 헌신(손바닥)만 한 한 조각 목숨 저편에 戰爭이 끗나고 평정한 일본 제국주의(平和)가 왓다는 宣傳이다”
내용이 훨신 선명해졌다.
“한무덕이비닭이의떼가깃에무든때를씻는다.”
“한 무덕이 비닭이의 떼가 깃에 무든 때를 씻는다.” “한 무덕이”는 무엇인가? 앞서 “한 뭉탱이”는 이상이 조각으로 늘어뜨려져 죽은 목숨의 허망함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읽었다.
“한 무덕이”라는 표현은 조금 달라 보이지만 역시 살아있는 비닭이 무리라는 의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깃에 묻은 때를 씻는 비닭이 떼다.
흰 비닭이가 아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흰 비닭이였지만 깃에 때가 묻었기 때문에 그냥 비닭이라는 것이다. 이것 또한 불편한 시선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상은 흰 비닭이는 깃에 때가 묻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니 결코 묻어서는 안 된다는 불편한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흰”을 생략해버린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다행히도 비닭이는 흰 비닭이가 되기 위해서 깃에 묻은 떼를 씻는다. 이것이 당시 조선 민족 중에 “무서운 아해”의 진솔한 모습일 것이다.
“이손바닥만한하늘이편에방맹이로흰비닭이를따려죽이는不潔한戰爭이始作된다.”
역시 “이 손바닥만 한 하늘”은 ‘이 헌신(손바닥)만 한 목숨(하늘)’으로 풀어야 한다.
“이 헌신(손바닥)만 한 목숨 이편에 방맹이로 흰 비닭이를 따려 죽이는 不潔한戰爭이始作된다.”
이 헌신만 한 목숨 이편에 방맹이로 흰 비닭이를 따려 죽이는 불결한 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헌신만 한 목숨은 만주 사변에 나가 제국주의 일본의 승리를 위해 전쟁에 참여해서 헛된 몸으로 늘어뜨려져 죽은 조선 민족이다. 때문에 목숨 저쪽은 만주 전쟁터를 말하는 것이고 목숨 이쪽은 조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리하면 목숨 저쪽은 전쟁터이고 목숨 이쪽은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조선이다.
그런데 목숨 이쪽 즉 조선에서 “흰비닭이”를 때려 죽이는 불결한 전쟁이 시작된다고 한다. 흰 비닭이는 조선 민족이고 또한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라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민족적 순수함을 간직한 조선 민족이다.
따라서 이 흰 비닭이를 때려 죽이는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다. 즉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흰 비닭이로 살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1930년대 초반 조선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 일본의 민족 말살정책, 정신대 설치, 조선어 사용금지 등등 이루 말 할 수 없는 폭압 정책뿐만 아니라 조선 민족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 민족정신의 말살과 함께 황국신민화를 내세우며 방맹이로 흰 비닭이를 때려 죽이는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이 전쟁은 불결한 것이다. 방맹이로 흰 비닭이를 따려 죽이는 이유는 희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즉 조선 민족이 민족정신과 민족적 자의식을 잃지 않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방맹이로 따려 죽이는 것이다. 때문에 이 일방적인 살해의 전쟁은 조선 민족의 민족적 순수성을 더럽히고 말살하려는 만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결한 전쟁이고 아니 불결하고도 비극적인 학살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의 심정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상의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저항을 넘어 적개심마저 느껴진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살펴야 할 것이 있다.
“不潔한戰爭이始作된다.”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흰비닭이를 방맹이로 따려 죽이는 불결한 전쟁은 한일합방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1930년대 초반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불결한 전쟁이 시작된다.” 라고 쓴 것은 또 하나 이상의 강화된 룰의 장치다. “始作”을 살피라는 말이다.
정말 그런지. “始作”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살펴보자.
始: 비로소
作: 저주하다.
시작(始作) 문맥에 맞춰면 ‘비로소 저주’로 풀면,
“이 헌신(손바닥)만 한 목숨 이편에 방맹이로 흰 비닭이를 따려 죽이는 不潔한 戰爭이 비로소 저주가(始作)된다.”
이것은 시적 화자가 당시의 절망적인 시대상황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흰비닭이를 방맹이로 따려 죽이는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조선 민족은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결사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그 댓가는 방맹이로 맞아 죽는 처참하고 비극적인 것이다. 때문에 이 방맹이로 흰비닭이를 때려 죽이는 불결한 전쟁은 비로소 저주가 된다는 것이다. 참혹하고 절망적인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의 잔악함에 조선 민족이 할 수 있는 것이 저주뿐인 것이 한탄스럽기만 하다.
“空氣에숯검정이가지저분하게무드면흰비닭이의떼는또한번이손바닥만한하늘저편으로날아간다.”
“공기(空氣)에 숯검정이가 지저분하게 무드면” 공기에 숯검정이가 지저분하게 묻는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은유나 상징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공기(空氣)를 살피라는 것이다.
空: 헛되다.
氣: 기백
공기(空氣) : ‘헛된 기백’으로 풀고
“이손바닥만한하늘” 역시 ‘이 헌신(손바닥)만 한 목숨(하늘)’로 푼다.
문맥에 맞추면
“헛된 기백(空氣)에 숯검정이가 지저분하게 무드면 흰 비닭이의 떼는 또 한번 이 헌신(손바닥)만 한 목숨(하늘) 저편으로 날아간다.”
드디어 “무서운 아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이상은 독자에게 보여준다. 제국주의 일본이 방맹이로 따려 죽이는 절망적인 식민지 지배 상황 속에서 살기 위해서 숯검정이를 묻히고 제국주의 일본에 협조하고 앞잡이가 되는 흰비닭이 무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이미 시 첫 머리에서 그 결말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수치스러운 전쟁에 도구로 사용되는 비극적이고도 헛된 헌신이다.
그 결과로 조선 민족에게 돌아오는 것은 영광이나 행복이 아니다. 조각 한 뭉탱이로 취급당하는 목숨의 처참한 죽음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죽을지언정 제국주의 일본에게 협조하거나 동화되는 짓은 “헛된 기백”이라고 이상은 일갈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헛된 기백에 숯검정이가 지저분하게 묻으면 흰 비닭이의 떼는 또 한번 헌신만 한 목숨 저편으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무서운 아해”의 무리에 대해 또 다른 “아해”인 시적 화자의 불편하고 막막하고 눈물겨운 심정이 드러난다.
이상은 드디어 오감도 시 제 12 호에서 “무서운 아해”을 등장시켰다. 오감도 시 제 1 호에서 보았던 “무서운 아해”의 정체를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정체를 보여준 것이다. 오감도 시 제 1 호에서 조선 민족이 “무서워 하는 아해”와 “무서운 아해”로 나뉘고 있다고 했던 그 실체를 독자에게 공개한 것이다. 즉 당시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상황에서 빛이라고는 없는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는 조선 민족의 가장 가슴 아픈 현실 중에 하나가 바로 “무서워하는 아해”와 “무서운 아해” 둘로 나뉘는 민족 분열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상은 제국주의 일본의 방맹이로 흰비닭이를 따려 죽이는 만행 앞에서도 결코 민족적 정체성을 잃는 것은 지저분하게 더렵혀지는 것이고 더구나 제국주의 일본에 협조하거나 앞잡이가 되는 짓은 헛된 헌신이고 헛된 죽음으로 이어지는 처참한 짓이라고 일갈하면서 안타깝고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해석 후 오감도 시 제 12 호를 다시 읽어보자.
때 무든 수치를 실천한(빨내) 조각이 한 뭉탱이 헛된 몸(空中)으로 늘어뜨려져 죽는(날너떠러진)다. 그것은 흰 비닭이의 떼다. 이 헌신(손바닥)만 한 한 조각 목숨 저편에 戰爭이 끗나고 평정한 일본 제국주의(平和)가 왓다는 宣傳이다. 한 무덕이 비닭이의 떼가 깃에 무든 때를 씻는다. 이 헌신(손바닥)만 한 목숨 이편에 방맹이로 흰 비닭이를 따려 죽이는 不潔한 戰爭이 비로소 저주가(始作)된다. 헛된 기백(空氣)에 숯검정이가 지저분하게 무드면 흰 비닭이의 떼는 또 한번 이 헌신(손바닥)만 한 목숨(하늘) 저편으로 날아간다.
- 오감도 시 제 12 호 전문, 해석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