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 시 제 15 호 해석 - 김유섭
1
나는거울업는室內에잇다. 거울속의나는역시外出中이다.나는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잇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랴는陰謀를하는中일가.
2
罪를품고식은寢床에서잣다. 確實한내꿈에나는缺席하얏고義足을담은軍用長靴가내꿈의白紙를더럽혀노앗다.
3
나는거울속에잇는室內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解放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沈鬱한얼골로同時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未安한뜻을傳한다.내가그때문에囹圄되어잇드키그도나때문에囹圄되여떨고잇다.
4
내가缺席한나의꿈. 내僞造가登場하지않는내거울. 無能이라도조흔나의孤獨의渴望者다. 나는드듸여거울속의나에게自殺을勸誘하기로決心하얏다. 나는그에게視野도업는들窓을가르치엇다. 그들窓은自殺만을爲한들窓이다. 그러나내가自殺하지아니하면그가自殺할수업슴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不死鳥에갓갑다.
5
내왼편가슴心臟의位置를防彈金屬으로掩蔽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견우어券銃을發射하얏다.彈丸은그의왼편가슴을 貫通하얏스나 그의心臟은바른편에잇다.
6
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업즐러젓다.내가遲刻한내꿈에서나는極刑을바닷다. 내꿈을支配하는者는내가아니다.握手할수조차업는두사람을封鎖한巨大한罪가잇다.
- 오감도 시 제 15 호 전문 -
오감도 시 제 15 호는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에 사는 조선 민족의 삶이 세 가지라는 것을 네 번째 “무서운 아해”를 등장시켜서 보여준다. 즉 세 가지의 삶이라는 것은 조선 민족 각각의 사람이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조선 민족 한 사람의 내면에 혼재되어 있는 처참한 풍경이기도 한 것이다.
앞서 시 제 12 호부터 이어져 오는 “무서운 아해”의 네 번째 또 다른 모습을 이상은 오감도 시 제 15 호에서 그 내면으로 확장시켜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 제 12 호 “무서운 아해”는 제국주의 일본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고 시제 13 호 “무서운 아해”는 민족적 자의식을 제거당하고도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 제 14 호 “무서운 아해”는 조선 민족이 당연히 간직하고 있어야 할 민족의 역사마저 스스로 버리려고 하였다.
그리고 오감도 시 제 15 호 “무서운 아해”는 민족적 자의식을 자살시키거나, 살해하려고 시도 한다. 이러한 네 번째 “무서운 아해”의 내면에는 민족적 자의식의 삶, 민족적 자의식을 거부하려는 삶, 그리고 모조의 삶이 혼재되어있다. 그러나 그 세 가지 삶 모두는 운명적으로 비참하고 불행하기만 한 것이다. 이것이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사는 피지배 민족인 조선 민족의 처참하고 비극적인 내면의 현실인 것이다. 시로 들어가자.
1
나는거울업는室內에잇다. 거울속의나는역시外出中이다.나는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잇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랴는陰謀를하는中일가.
“나는거울업는室內에잇다.”
거울이 상징하는 것은 앞서 오감도 연작시에 이어지고 있는 민족적 자의식이다. 그래서 조선 민족인 시적 화자의 또 다른 내가 거울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운명적으로 조선 민족으로 태어난 모든 조선 사람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런 민족적 자의식을 거울로 표현하는 까닭은 민족적 자의식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사는 조선 민족은 피지배민족이고 민족차별의 대상이다. 식민지 지배를 당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제국주의 일본에게 강제 합방을 당한 조선 민족이기 때문이다. 즉 조선 민족은 주권을 빼앗겼고 때문에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살아가면서 언제나 민족적 자의식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볼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는 진술은 민족적 자의식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네 번째 “무서운 아해”임을 알 수 있다.
“거울속의나는역시外出中이다.”
때문에 거울 속에 나는 외출중임을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즉 민족적 자의식인 거울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외출중이라고 하는 것은 시적 화자인 내가 민족적 자의식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 조선 민족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민족적 자의식 없이 살더라도 나는 조선 민족이고 때문에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는 외출중일 수밖에 없다.
“나는至今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떨고잇다.”
앞서 오감도 시 제 14 호에서 민족의 기억과 역사를 스스로 버리려는 “무서운 아해” 이마에 싸늘한 손자옥의 낙인이 찍히는 응징을 보았다.
시적 화자가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는 것은 민족적 자의식 없이 사는 삶이 잘 못 된 것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삶은 민족적 자의식 속의 나에게 응징당해 마땅한 짓이고 그것이 무서워 떨고 있는 것이다.
“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랴는陰謀를하는中일가.”
시적 화자인 나의 무서움은 더 깊어져서 민족적 자의식 속의 내가 어디에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시적 화자인 내가 민족적 자의식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해 불안해하고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로부터 응징 당할까봐 무서워하는 것은 민족적 자의식에 대한 부채감과 죄의식에 다름 아니다.
이상은 이렇게 1연에서 민족적 자의식 없는 삶을 살아가는 조선 민족의 불안하고 무서워하는 내면을 보여주면서 민족적 자의식 없는 삶이 결코 편안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2
罪를품고식은寢床에서잣다. 確實한내꿈에나는缺席하얏고義足을담은軍用長靴가내꿈의白紙를더럽혀노앗다.
“罪를품고식은寢床에서잣다.”
2연은 또 다른 상황을 보여준다. 죄를 품었다는 말은 1연에 이어지는 죄의식을 말한다. 민족적 자의식 없는 삶은 죄를 품고 사는 삶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따뜻할 수 없는 침상에 자는 것이다. 앞서 오감도 13호에서 “싸늘한 손자욱”처럼 “식은 침상” 또한 죄책감과 응징을 의미한다.
“확실한 내 꿈에 나는 결석하얏”다는 말은 풀면,
내가 명백하게 희망하고 꿈꾸는 미래에 나는 결석하고 없는 것이다. 민족적 자의식 없는 삶이지만 내가 희망하고 꿈꾸는 미래에 내가 결석하였다. 왜 그럴까?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사는 조선 민족이 민족적 자의식 없이 산다고 하더라도 일본인들이 차별하는 조선 민족일 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내 꿈에 결석할 수밖에 없다. 내가 꿈꾸는 미래는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지배를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은 차별당하는 식민지 피지배 민족인 조선 민족에게 미래의 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진술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義足을담은軍用長靴가내꿈의白紙를더럽혀노앗다.”
의족을 담은 군용장화는 앞서 오감도 시 제 10 호 나비에 등장했던 “거울 가운데 수염”에 이어지는 제국주의 일본 군대나 현병을 캐릭터로 만드는 조각의 하나다. 이것은 이상이 오감도 연작시를 30편까지 마무리 했다면 완성된 그림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안타깝게 콧수염과 의족을 담은 군용장화에서 멈춘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폭압의 무자비한 총칼의 지배 때문에 조선 민족의 미래나 꿈 따위는 여지없이 짓밟힌다. 미래에 대한 꿈이 아무리 순수하고 깨끗한 것일지라도 피지배 민족인, 조선 민족의 미래는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3
나는거울속에잇는室內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解放하려고.그러나거울속의나는沈鬱한얼골로同時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未安한뜻을傳한다.내가그때문에囹圄되어잇드키그도나때문에囹圄되여떨고잇다.
“나는거울속에잇는室內로몰래들어간다.나를거울에서解放하려고”
시적 화자인 “나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울 속에 있는 내실로 몰래 들어간다. 민족적 자의식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몰래”라고 한다. 몰래 들어간다는 말은 거울 속에 나에게 들키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이어지는 진술로 나를 거울에서 해방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거울에서 나를 해방한다는 말은 결국 민족적 자의식에서 해방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내 꿈에 결석하지 않고 또한 의족을 담은 군용장화에게 더렵혀지지 않는 길이라고 “무서운 아해”인 시적 화자는 믿는 것이다.
“그러나거울속의나는沈鬱한얼골로同時에꼭들어온다.”
거울 속에 나는 침울한 얼굴로 동시에 꼭 들어온다는 진술은 민족적 자의식은 조선 민족에게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말이다. 민족적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순간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조선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적 자의식 속의 나 역시 침울한 얼굴이다. 현실의 나처럼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거울속의나는내게未安한뜻을傳한다.”
거울 속에 내가 나에게 미안한 뜻을 전한다는 진술에서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 역시 당당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강제합방으로 조선과 조선 민족을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로 전락시킨 무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현실의 나에게 민족적 자의식이 없는 것이 죄이듯이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 역시 조선 민족을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피지배 민족으로 전락시킨 무능했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안한 뜻을 전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그때문에囹圄되어잇드키그도나때문에囹圄되여떨고잇다.”
내가 그 때문에 영어되어 있고 그도 나 때문에 영어되어 떨고 있다는 진술이 이해가 된다. 현실의 나와 민족적 자의식 속의 나는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서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유로 현실의 나와 민족적 자의식 속의 나는 떨고 있다. 현실의 나는 민족적 자의식의 응징이 무서워 떨고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는 오감도 시 제 13 호 팔은 죽어서도 나를 겁내이는 것과 같이 현실의 내가 민족적 자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릴까봐 무서워 떠는 것이다. 여기서 거울 속 나를 “그”라고 부르면서 현실의 나와는 분리된 타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실의 내가 얼마나 민족적 자의식을 부정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이상의 치밀함이다.
4
내가缺席한나의꿈. 내僞造가登場하지않는내거울. 無能이라도조흔나의孤獨의渴望者다. 나는드듸여거울속의나에게自殺을勸誘하기로決心하얏다. 나는그에게視野도업는들窓을가르치엇다. 그들窓은自殺만을爲한들窓이다. 그러나내가自殺하지아니하면그가自殺할수업슴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不死鳥에갓갑다.
“내가缺席한나의꿈. 내僞造가登場하지않는내거울. 無能이라도조흔나의孤獨의渴望者다.”
세 개의 문장이 각각 세 개의 삶을 보여준다. 내가 결석한 나의 꿈은 내가 나로 살 수 없는 절망적인 미래다. 그리고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내 거울은 민족적 자의식 속에는 위조된 나, 즉 조선 민족이 아닌 나, 즉 황국신민으로 위조된 현실의 내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의 나는 무능이라도 좋은 나의 고독의 갈망자라고 진술한다. “무능이라도 좋은 나의 고독의 갈망자”는 무엇인가?
고독(孤獨)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이다. 문맥의 의미 흐름으로 보면 ‘부모 없는 어린아이’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내가 미래의 꿈에 결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내 거울에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부모로부터 운명적으로 물려받는 민족적 자의식 때문이다. 그리고 갈망자(渴望者)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으로 풀면,
“무능이라도 조흔 나의 고독의 갈망자다”는 나는 무능하더라도 부모 없는 어린아이가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부모가 없는 어린아이라는 위조된 삶이 되더라도 민족적 자의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불행하기만 한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 때문이다.
“나는드듸여거울속의나에게自殺을勸誘하기로決心하얏다.”
민족적 자의식을 자살시키려는 반민족적인 “무서운 아해”의 등장이다. 오감도 시 제 12 호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무서운 아해”가 드디어 네 번째 등장에서 민족적 자의식을 자살시키려고 한다. 시적 화자인 내가 거울 속에 내게 자살을 권유하기로 결심하는 까닭은 간단하다. 거울 속에 나, 즉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내가 죽어야 현실의 내가 삶에서 그리고 꿈의 미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적 화자인 “무서운 아해”가 조선 민족을 버리고 현실의 삶, 황국신민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선 민족의 민족적 자의식을 없애야 한다. 때문에 시적 화자인 나는 거울 속에 나에게 자살을 권유한다. 조선 민족의 삶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하는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가 얼마나 절망적이고 폭압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나는그에게視野도업는들窓을가르치엇다. 그들窓은自殺만을爲한들窓이다.”
여기서 “그”와 “가르치엇다.”를 주목해야 한다. 다시 거울 속에 “나”가 “그”로 바뀐다. 역시 자결을 권유할 것을 결심한 나에게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는 내가 아니라 타인이다. 이것은 민족 배반이라고 이상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내가 아닌 그의 자살은 나와 무관한 것이 된다. 이것이 당시 “무서운 아해” 즉 친일파, 황국신민화 되어가는 일부 조선 민족의 생각이라는 것을 이상은 섬광처럼 번뜩이는 치밀함으로 다시 보여준다.
시야도 없는 들창을 가르치엇다는 진술은 비극적이다. 현실의 내가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에게 가르치는 것이 시야도 없는 들창인 것이다.
그것은 무엇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을 가르치엇다는 것이다. 현실의 내가 민족적 자의식 속 나에게 캄캄한 절망을 가르쳤다는 말은 역으로 말하면 누군가 나를 그처럼 가르치고 세뇌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窓은自殺만을爲한들窓이다.” 더구나 그 캄캄한 절망은 오직 자살만을 위한 절망이다. 이러한 민족적 자의식의 자살만이 현실의 나 즉 조선 민족이 살 길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 분명하다. 제국주의 일본의 민족말살, 황국신민화에 조선 민족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세뇌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사는 조선 민족은 스스로 민족적 자의식을 말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비극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내가自殺하지아니하면그가自殺할수업슴을그는내게가르친다.”
당연한 반전이 일어난다. 그가 나에게 내가 자살하지 않으면 그도 자살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 현실의 나는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에게 자살을 가르치고,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는 내가 자살하지 않으면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도 자살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 이것은 현실의 나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사는 조선 민족이 민족적 자의식을 버리고 황국신민이 된다고 하더라도 민족적 차별을 당하지 않는 일본 민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거울속의나는不死鳥에갓갑다.”
현실의 내가 드디어 깨닫는다. 민족적 자의식은 스스로 자결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먼저 죽지 않으면 결코 죽지 않는 불사조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불사조에 가깝다” 즉 불사조가 아니라 불사조에 가깝다는 것은 절대로 죽거나 죽일 수 없는 완전한 불사조가 아니라는 것이고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5
내왼편가슴心臟의位置를防彈金屬으로掩蔽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견우어券銃을發射하얏다.彈丸은그의왼편가슴을 貫通하얏스나 그의心臟은바른편에잇다.
“내왼편가슴心臟의位置를防彈金屬으로掩蔽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견우어券銃을發射하얏다.”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를 죽이기기 위해서 시적 화자인 내가 직접 행동에 나선다. 그것만이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역으로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조선 민족의 민족적 자의식을 죽거나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 왼편 가슴 심장의 위치를 방탄금속으로 엄폐하고”는 현실의 나는 왼편 심장이 있는 위치를 방탄금속으로 숨겨 심장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삶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의지를 드러내면서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를 죽여 현실의 불행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방탄금속으로 엄폐해야 하는 심장이다.
심장이 멈추면 나는 죽는다. 그런데 현실의 심장을 방탄금속으로 엄폐하고 민족적 자의식 속에 심장을 총으로 쏘면 현실의 나는 살고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모순이다. 즉 현실의 심장을 방탄금속으로 엄폐하려는 까닭은 민족적 자의식 속 심장에 총을 쏘는 것이 현실의 심장에 총을 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야 하는 현실의 심장을 방탄금속으로 엄폐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심장과 민족적 자의식 속에 심장이 운명공동체라는 말이기도 하다. 즉 민족적 자의식 속에 심장이 멈추면 현실의 심장 역시도 멈춘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의 심장만 엄폐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시적 화자인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견우어券銃을發射하얏다.”
결국 “무서운 아해”인 시적 화자는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내 심장을 향해 총탄을 발사하고 만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 이상은 이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해서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 것일까?
“彈丸은그의왼편가슴을 貫通하얏스나 그의心臟은바른편에잇다.”
거울로 상징되는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와 현실의 나는 운명적으로 하나다. 때문에 현실의 심장 위치를 방탄금속으로 엄폐했던 것이다. 방탄금속으로 엄폐하면 민족적 자의식 속에 심장은 무방비상태로 총탄에 관통당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여기서 이상이 왜 이런 모순되고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는지 알 수 있다. “총탄은 그의 왼편 가슴을 관통하였으나 그의 심장은 바른편에 있다.” 라는 진술에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현실의 심장을 방탄금속으로 엄폐하면 운명공체인 민족적 자의식 속에 심장 역시도 자동으로 엄폐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아무리 총탄이 그의 왼편 가슴을 관통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심장은 이미 바른편으로 옮겨져 엄폐되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현실의 내가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를 죽이려는 행위는 어리석고 헛된 짓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려주면서 각성하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의 내가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동시에 너무나도 어리석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덧붙이면 어떻게 “내”가 “그”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시 문장에 “그”를 등장시켜서 이상은 “무서운 아해”에게 되묻고 있다. “나”는 나이지 결코 “그”가 될 수 없다. 내가 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허망한 착각이고 망상이라는 것이다.
6
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업즐러젓다.내가遲刻한내꿈에서나는極刑을바닷다. 내꿈을支配하는者는내가아니다.握手할수조차업는두사람을封鎖한巨大한罪가잇다.
“模型心臟에서붉은잉크가업즐러젓다.”
앞서 4연에서 현실의 삶은 위조의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위조(僞造)의 삶에 심장 역시 모형심장이라는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민족적 자의식을 죽여 현실에서 황국신민이 된 듯 살아가는 것은 결코 온전한 황국신민으로 일본인과 동등한 삶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위조(僞造)된 나이고 위조(僞造)된 삶일 뿐이다. 때문에 현실의 삶은 여전히 불행하면서도 동시에 위태로운 것이다. 언젠가 위조임이 드러날 운명의 근원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행한 삶이다.
더구나 5연에서 거울 속에 나, 즉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를 자살시키지도 죽이지도 못한 시적 화자에게 돌아오는 현실의 응징은 모형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업즐러지는 것이다. 위조의 삶이라도 살겠다고 민족적 자의식을 죽이려고 했던 삶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조선 민족이 아무리 황국신민으로 살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조선 민족이라는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위조의 삶이고 헛되고 어리석은 모형의 삶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遲刻한내꿈에서나는極刑을바닷다.”
때문에 미래의 꿈에서도 나는 여지없이 극형을 받을 것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민족적 자의식을 죽인 듯 위조의 삶으로 결석했던 꿈에 지각으로라도 도착하더라도 극형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꿈조차 꿀 수 없어서, 민족적 자의식을 죽인 듯 황국신민이 되어 일본인과 동등하지는 않아도 지각으로라도 미래의 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헛된 망상이라고 이상은 일갈하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사는 조선 민족에게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현실에서 황국신민이 된 듯, 미래를 꿈꾼다면 그 결과는 극형을 당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내꿈을支配하는者는내가아니다.”
이상은 더둑 강력하고 직설적으로 조선 민족 “무서운 아해”에게 비극적인 현실을 자각할 것을 말한다.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사는 조선 민족의 꿈과 미래는 조선 민족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무서운 아해”는 왜 모르느냐고 질타하는 것이다. 조선을 강제점령으로 식민지 지배하는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 민족의 삶뿐만 아니라 미래의 꿈마저 절망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더구나 조선 민족은 결코 일본인이 될 수도 없고 일본인처럼 살 수도 없다. 식민지 지배를 위해 조선을 강제로 점령한 제국주의 일본에게 조선 민족은 수탈의 대상이고 “아해”이고 노예일 뿐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황국신민이 되어 일본인처럼 살겠다고 하는 것은 위조의 삶이고 허무하게 무너져버릴 진짜가 아닌 모조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이상은 절규한다.
“握手할수조차업는두사람을封鎖한巨大한罪가잇다.”
2연에서 “罪를품고식은寢床에서잣다”는 진술을 민족적 자의식 없는 삶이 죄라고 설명했다. “악수조차 업는 두 사람”이라는 것은 현실의 나와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를 말한다. 이 둘은 하나이지만 결코 악수를 하지 못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상이 민족적 자의식의 상징물로 거울을 선택한 것이다. 거울 속 나는 나이지만 동시에 내가 아니다. 그러나 나를 닮은 나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지배 아래 사는 조선 민족의 현실적 삶과 민족적 자의식 속에 삶을 피부를 벗긴 듯 적확하게 보여주는 상징인 것이다.
거울 속에 나와 거울 밖의 나는 악수할 수 없다. 거울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조선이 제국주의 일본에게 강점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와 악수할 필요조차 없다. 왜 그런가? 현실의 나와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울 따위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제국주의 일본의 폭압적 식민지 지배 아래 조선의 현실은 나를 위조하게 하고 나를 모형의 삶으로 부서지게 하고 또한 현실의 나와 민족적 자의식 속에 나로 쪼개서 둘로 분리시키고 악수조차 할 수 없게 봉쇄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절망의 현실을 만든 것은 폭력으로 침략해서 조선을 강제 점령한 간악한 제국주의 일본이다. 조선 민족을 말살하고 수탈하고 잔악하게 짓밟아 악랄하게 식민지 지배하는 제국주의 일본이 나와 나를 봉쇄시킨 거대한 죄다!
오 이상이여!
오감도 시 제 15 호는 이상이 발표한 오감도 연작시 마지막 작품이다.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 될 줄은 이상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독자의 항의로 오감도 연재는 중단되었고 결국 이상이 30편으로 기획하고 계획했던 전체 연작시에서 절반만 세상에 알려진 것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전체 도면에 해당하는 오감도 시 제 1 호와 세부도면에 해당하는 시 제 2 호부터 이어지는 각각의 연작시들이 시 제 15 호에서 뚝 끊어졌음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시 제 12 호부터 이어져오던 “무서운 아해” 이야기도 네 번째에서 끝나버린 것이다. 필자는 오감도 연작시가 30편까지 연재되었더라면 아마도 열 번째 정도의 “무서운 아해”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뒤로 오감도 시 제 1 호에서 밝혔던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適當하오.)”의 시들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조선 민족에게 어떤 저항과 항거 그리고 희망의 방법이 있는지 이상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 텐데.... 그리고 마지막 문장 “十三人의 兒孩가 道路를 疾走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즉 조선 민족이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되는 해방의 순간은 어떤 방식으로 조선 민족에게로 올 것이고 또 그 해방의 공간에서 조선 민족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등의 필자 따위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천재 민족 시인 이상의 시를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무엇인가?
이처럼 위대한 천재 민족 시인 이상의 시를 중단시켜버린 것이 정말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