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손님방

김소월 개여울 - 김유섭

작성자김유섭|작성시간19.11.08|조회수2,032 목록 댓글 1

김소월 개여울 - 김유섭


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만 20세에 김소월이 이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보다 어린 나이에 썼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놀랍다. 이 시는 떠나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별의 외로움과 슬픔의 서정을 넘어선 이상주의적 애정관과 그에 따른 원망의 마음을 표현한 시다. 대부분 소월의 시가 그러하듯 단숨에 독자의 가슴을 휘감아오는 서정적 감성의 언어가 매혹적으로 빛난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시적 화자는 아픈 마음을 달래려고 헤매어다닌다. 외로움과 그리움에 몸부림치면서 햇살 밝은 봄날, 개여울에 도착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작별을 고하고 속절없이 건너서 멀리 떠나갔던 그 개여울이다. 시인은 그만 그곳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그리고 시의 첫머리가 시작된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 여기서 당신은 타인이 아니다. 즉 사랑했던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객관화 시킨 또 다른 자아이다.

무슨 말인가? 외로움과 서러움이 극한에 이르면 자기 스스로를 객관화 시켜 ‘너 왜 이래?“ 또는 ”너 왜 이리 못났니?“ 라고 스스로 자책하듯이 소월은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자신을 객관화 시켜 바라보면서, 오히려 외로움과 서러움 그리고 처량함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처량한 마음으로 절규하듯 진술하는 ”무슨 일로 / 그리합니까“에서 “무슨”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이유다. 그것을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생각하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 시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소월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계절이 봄인 듯도 하지만 어쩌면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오는 봄날에 대비되어 쿵, 하고 닥쳐오는 이별이 극적인 슬픔을 준다는 것을 활용한 듯도 하다. 아무튼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는 봄날의 이별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더구나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이별이라니!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이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 아픈 이별을 경험한 감성적인 시인의 눈이 아니면 쉽게 보이지 않으리라.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이 3연까지가 소월이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관찰자적 입장으로 바라보면서 스스로에게 절규하듯 쏟아내는 중얼거림이다. 그리고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라는 구절은 이별했던 까닭이 사랑의 변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구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라는 구절을 덧붙여 강조하고 있다. 이 구절은 소월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 이유가 서로의 사랑이 식었거나 변심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약속이 있었겠지요.”라고 진술하면서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한다. 그것은 그 약속이 의미 없고 부질없는 것이라는 마음을 슬쩍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왜 의미 없고 부질없는 약속일까? 4연에서 소월은 깊은 속마음을 드러낸다. 3연 마지막 행인 여기까지는 시인이 자신을 객관화 시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슬퍼하는 모습과 외롭고 처량한 모습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 이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이 4연에서부터는 3연까지 객관화 시켜서 자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관찰자적 입장에서 시인 자신으로 돌아온다. 왜냐하면 시의 흐름이 그리움에서 원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소월이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생각하는 무엇”은 이별의 이유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다양한 세속적인 사정일 것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절망적 시대상황일 수도 있고 가난하게 살던 경제사정일 수도 있다. 당시 100년 전 그때는 아비 노름빚에 팔려간 딸도 많았다고 한다. 또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유교적 풍속도 남아있었던 때라 시의 내용만으로는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세속적인 이유를 소월이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그 세속적인 이유가 이 시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리라.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는 것을 소월은 반복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반복할까? 그리고 세족적인 이유가 왜 중요한 것이 아닐까?

다음에서 알 수 있다. 소월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드러낸다. 즉 “무엇”이라고 하는 이별의 이유 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물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떤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사랑을 위해서라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따위 것들을 이겨내고 사랑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이것은 사랑의 본질은 무엇이냐는 철학적 질문을 소월은 떠나간 사람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닥쳐와 있는 이별은 그렇지 못한 것이고 그에 대해 소월은 떠나간 사람을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그리워하고 또 원망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다.

 

//가도 아주 가지는 / 않노라심은 /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굳이”는 사전적 의미로 “구태여”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다른 말로 하면 “몸은 떠나가도 마음은 당신 곁에”, 또는 “ 헤어져도 당신만을 사랑하겠어요.” 등등일 것이다. 그러나 소월은 이런 말들에 “굳이”를 붙여서 부질없음과 원망의 마음을 드러낸다. 어떤 것일지라도 사랑을 깨어지게 할 것은 없다는 이상적 애정관을 가진 시인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무슨 이유로든 떠나가는 사람은 변심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변심한 사람이 구태여 잊지 말라는 부탁 따위를 하는 것이 부질없고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월의 이상주의적 애정관과 철학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절규하듯 혼자 중얼거리는 이 원망의 마음 또한 이별한 사람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끝없이 되뇌며 현실 앞에 놓인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것 역시도 그러할 것이다. 이토록 아픈 이별 속으로 독자를 단숨에 빠져들게 해서 잠시나마 그 속에 살게 해준 소월, 그러하기에 소월은 시와 함께 독자들 가슴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ㅑ월암 | 작성시간 19.11.13 인상깊은 내용 깊이 감상하고 갑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