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시 당선작_ 당귀 방(외 4편) / 차현준
당귀 방
셔츠를 입었을 땐 이렇게 하면 된다. 통풍이 잘되는 곳을 찾아간다. 가슴팍에 있는 단추 두 개를 고른다. 윗단추와 아랫단추 사이에, 그러니까 명치보다 더 안쪽으로. 복도까지 닿게 손을 집어넣는다. 이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확보해놓은 부지에 찾아가는 방법이다.
그새 빽빽해진 것 좀 봐
단숨에 끼쳐오는 향내
남미 향을 담았다던 디퓨저를 책상에 놔둘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밭에 자주 찾아오는 편인데도 나는 늘 모르겠다. 입이 벌어지고 만다. 당장 흰쌀밥 흑미밥 밥에 넣을 만한 잡곡들…… 잎에다 올려놔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찰기가 입속에서 몇 바퀴씩 감싼다고 생각해봐. 적당히 찰진 밥을 한 품에 안아줄 당귀들이 여기 이렇게나 많고
작은 당귀 밭
밭을 품고 있는 당귀 방
벽과 천장과 창문과 손잡이
제각기로 쳐다보는 당귀들
저들끼리 깍지 낀 당귀들은 선택받지 못했다지, 뽑아내니까 바스러지는 거 봐, 어떡해, 말하면서 당귀를 거두는 손짓은 거침없다. 이 당귀들을 모두 뜯어 먹는 생각만 하면 참기름 고춧가루 버무리는 손처럼 즐겁다. 기분 좋은 숨을 들이마시자 당귀 향이 가득 들어왔다. 신나서 줄기들을 샅샅이 뒤지다가 어느 손가락이 건드린 당귀가 그렇게 싱싱하다는데…… 싱싱한데 싱싱? 잠깐만 싱싱은 아닌 거 같은데 싱싱…… 차라리 밍밍…… ?
그 주변 좀 젖혀봐
줄기가 잘 안 잡혀
나는 밭에 멈춰 섰다. 그 부근을 제대로 들추자 당귀 줄기를 타고 올라 꼬물꼬물…… 언젠가 하천에 가면 주근깨가 간지럽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기분에서 빠져나온다.
당귀 밭에서 빠져나와
당귀 방에서 빠져나와
복도에 늘어선
적근대 방
치커리 방
상추 방
케일 방
겨자 방
호박잎 방……
내가 자처한 방들……
오늘 점심은 쌈밥을 먹으려고 했다. 두부를 으깬 강된장도 올려 먹으려 했는데…… 나는 도통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얼마 전 집 안 냉장고 구석에서 녹고 얼고 녹다 잿빛으로…… 물컹해진 치커리의 퀴퀴한 냄새. 치커리를 처분했던 일이 떠오른다. 냉장고는 당황하지 않았다. 냉장고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지금도 밭 구석에서 뭉쳐지고 물컹해질 당귀들……
이거 봐, 복도에 또 멈춰 섰잖아
셔츠 밖에서부터 들어온 흰 김이 복도를 감싸고 나를 감싸고 나서야 복도에 멈춰 섰다는 걸 깨달았다. 당귀 방으로 흰 김이 들어가려 할 때 나는 당귀 방이 아닌 복도 밖으로 뛰쳐나간다.
셔츠 단추들 사이로 당귀 진물을 가득 묻히고 빠져나오는 축축한 손
단추가 튕겨 나갔으면 아마 실밥을 쥐고 한참을 부엌에 서 있었을 것이다. 새까맣게 그을린 찜기 앞에서 당귀 향과 탄내를 동시에 훅 들이켰다. 찜기에 물을 붓자 엄청난 연기가 솟아오른다. 흰 김과 연기가 동시에 당귀 방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손은 가끔 답답해 죽겠다. 손을 보고 있는데도 흰 김과 연기에 관한 생각을 참을 수 없다. 관자놀이를 스쳐 머리 주변을 맴돌아 구름을 형성해내는 형국으로 나를 감싸고 돈다.
아무것도 못 하면 어떡해?
구름이 감싸고 토닥거려준대도……
그러고선 당귀들에게 찾아가 스콜을 흩뿌려놓는다면……
나는 니트릴 장갑을 갈아 끼고 셔츠 단추들 사이를 지나 단숨에 당귀 방을 향해 손을 집어넣는다.
루꼴라
알루미늄 사다리에 앉아서 우거진 방을 둘러본다 사다리는 굵고 안전을 보장한다 했고 흙 속에 분명하게 박아놨고 접은 채로 갖고 왔다 쫙 펴놨고 앉은 채로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썩였는데 추락하진 않았으니 말이다 우거진 꼴을 보고 있으면 멍한 표정이 자라서 우거졌다 사다리가 설 공간을 확보해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해낸 거 같아 얼이 나가 조경 가위를 꽉 쥐고 있다 얼이 나간 게 뭐지 싶을 정도로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가 사다리를 들여오느라 겨우 낸 경로를 바라본다 방도 밭도 벽도 창도 구분하기 힘들다 천장은 어느 쪽도 드러나지 않았다 스피커가 달린 곳이 어디 쪽인지 감이 안 올 정도로 사방으로
루꼴라들은 서로 손잡고 뭉쳐 있다 진액이 흘러나오지도 않는데 끈끈한 우정 같다 그런 우정 샐러드 안에서 발휘해봐 피자 위에서 발휘해봐 멜빵바지 주머니에 걸쳐놓은 도구들을 시시각각 바꿔가며 루꼴라들을 서로 떼어냈다 사다리에 앉아서 사다리를 올라가다 말고 사다리 사이에서 숨 좀 고르다 가자 사다리를 조금씩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조금씩 벽 쪽으로 지금은 벽에 부딪히는 것이 필요하다 사다리를 벽 앞으로 안착시킨다 사다리 위에서 조경 가위로 조금만 더 막바지 작업을 해준다 스피커가 드러나자 멍멍한 소리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루꼴라들은 내 귀보다 바깥소리를 잘 듣는다
그들은 내가 루꼴라를 손질하는 동안 엎드린 나를 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방 안에 흘러나온다
자?
자네
쟤 말도 많은데 평소에 주변에서 말 많잖아
쟤 지껄이는 거 듣고 있으면 좀 기 빨려
쟤 손 봐, 개더럽지 않냐
축축하고 좀 시큼한 냄새 나
손에 무슨 녹조……? 같은 거 꼈나 본데?
으…… 뭔 풀 냄새야……? 난 고기 먹을 때도 쌈 싸 먹는 애들이 제일 싫어
잡초 이런 거 아니야?
낫으로 휘두른다 벽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휘두른다 사정없이 맥없이 루꼴라 한 묶음이 푹 쓰러진다 망가진 밭 위에 루꼴라들이 누워 있다 그 곁으로 루꼴라들이 다시 자란다 폭발적으로 자란 루꼴라들은 쓰러진 루꼴라들을 감싸고 돌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그들의 목소리는 나를 감싸고 돌았다 스피커와 루꼴라가 동시에 나한테 우냐? 울어? 외친다
꾹 참으면 장화 주변으로 흥건해진다 밭도 흥건해지기 시작했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동안 흥건한 적 없었다 루꼴라들에게 수분이 풍부해졌다 여기서 자란 얘기들을 묻힌 손들이 쭉쭉 자라 방을 빠져 나가고 있다
뿌리를 움켜쥐고 복도로 나와
죽은 루꼴라들을 상자에 담아낸다
손이 큰 루꼴라 한 줄기
흙 털어내고 씹는다
온몸 일으키기
지난해 구청에서는 이 길거리의 보도블록을 상당 부분 들어내고 새로운 블록들을 깔았습니다. 그 뒤로 나도 이 거리에 같이 누워 있습니다.
배 위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따금 한국어를 쓰다 침을 흘립니다. 침은 내 몸에 자연히 스며듭니다. 나는 한국어 구사력과 침 흡수력이 좋거든요! 이건 방금 지나간 버스 밖으로 들렸던 라디오 광고에서 습득한 말투입니다.
버스에서 승객들이 쏟아집니다. 근처 국밥집에서는 배부른 기사님들이 쏟아집니다. 기사님들은 정겹습니다. 정겹다는 건 오래 누워 있었다는 거죠? 우리 좀 오래 봤거든요! 기사님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등 돌리고 싶어질 때 등 아래로 표정을 모르는 기억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기억은 나를 자주 간지럽게 하느라 등 아래에 있는 흙들을 한동안 휘저어놓았습니다. 그것에 닿는 손을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종종 실패했습니다.
나는 내 등을 세워 완전히 앉아 있는 모습도 상상해봤습니다. 움직이고 싶을 때마다 몸에서 거친 부스러기만 묻어날 뿐 나에겐 일어나 앉을 근육이 없습니다. 생각하는 근육만 감수분열처럼 늘어났습니다.
그럼 여전히 누워 있는 걸 잘해보기로 합니다. 나는 답답한 기분에 뛰어나거든요! 망각이 블록들 사이에 껴 있습니다. 망각은 기억의 별명이 되기도 합니다. 기억처럼 오랫동안 내 뒤통수를 감쌌습니다. 기억은 나의 등 아래에도 울퉁불퉁한 허리 옆에도 나의 배 위에도 있을 테고
거친 피부 위로 얹힌 기억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습니다.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며 매연을 풍기던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도, 초등학생이 떡볶이 양념을 흘리고 갈 때도, 욕설을 남발하는 사람이 괴성을 지를 때도, 이제부터 누구세요! 애인들끼리 싸우는 육성도 내 아래로 많이 남겨두었습니다. 태풍이 와서 나무가 어쩔 수 없이 내 위로 쓰러졌을 때도, 나는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요즘 들어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움직이는 데에는 지진이 효과적이겠지만 태풍도 의외로 효과적일 겁니다. 태풍이 오면 블록들은 잠시나마 흔들리고…… 그보단 내 앞에서 주저앉아 울던 사람에게 흔들릴 것만 같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마다 말을 걸고 싶어집니다. 며칠 전에 여기 앞에서 웅크리지 않았나요? 내게 잠시나마 희망을 주고……
이렇게까지 얘기한 모양인지 누군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나를 옮겨줄 건가요?
끈적한 먹이를 얹고 느리게 걸어가는 개미는 나의 천적입니다. 개미를 보는 사람은 내 위에 떨어뜨린 콘택트렌즈를 주웠습니다.
차라리 낮잠을 자겠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와 손을 잡고 싶지 않거든요. 내 곁에 있는 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내 등을 세워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앉았던 생각은 전력 질주할 생각으로 횡단보도 너머로 달려갔습니다. 주말에 비바람이 올 거란 예보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 차현준 / 1997년 출생. 명지대학교 철학과, 문예창작학과 졸업 예정. 2022년 《문학과 사회》 신인상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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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된 당선작 5편은 “당귀 방, 루꼴라, 거기에 무성한 측백나무와 아카시아에 대해, 온몸일으키기, 한자 쓰기”입니다.
여기에는 두 편을 생략합니다.(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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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발췌
202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 508명 응모.
본심에 오른 8명 : 강채현, 김도현, 김예진, 이영은, 이정화, 은세임, 정해은, 차현준
은세임과 차현준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오랫동안 숙고하였다. 논의를 잠시 쉬어갈 때 다른 두 심사위원이 들려준 반려식물에 관한 얘기들은 마치 심사의 일부인 듯 흥미롭기도 했다. 하늘이 너무 맑았던 그날의 심사장에는 왠지 모르게 싱그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 우리는 차현준의 「당귀 방」이 좀더 ‘새로운 시’이자 ‘다른 시’, 그리고 ‘젊은 시’일 것이라는 판단에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_조연정(문학평론가)
최종적으로 차현준의 「당귀 방」외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작품들에 나타나는 식물과 관련된 장소들은 생활 세계의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도, 또한 가상적 리얼리티를 창출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집요한 진술을 통해 만들어내는 공간의 구축과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삶의 양태에 결국 설득될 수밖에 없었다. _하재연(시인)
당선작은 「당귀 방」 외 10편으로 결정되었다. 세계를 감각하고 탐지하려는 의욕이 넘치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또 퍼져가는 것처럼 시의 언어 또한 그렇게 세계를 자꾸 더 그리고, 또 만지려 하고 있었다. 넘쳐흐르는 언어를 따라 읽으며 이 과도함의 연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저 있었으나, 저 맹렬한 언어의 전진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당귀들 사이에서 향을 맡고, 그것들을 헤아리고 또 만지며 계속 세계와 접촉하려는 시적 태도는 다른 투고작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위적인 힘이었다. 어디로든 당도하려는 이 호기로움이야말로 오늘의 시에 필요한 저력이 아닐까 싶었다. _황인찬 (시인)
—계간 《문학과 사회》 202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