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펜하이머」
영화의 토대가 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공동 저자 카이 버드, 마틴 셔원
2010, 사이언스북스 | 옮긴이 최형섭
저널리스트 카이 버드와 영문학과 미국 역사학 교수 마틴 셔원이 25년에 걸친 답사와 인터뷰, FBI 문서 등을 통해 작성한 오펜하이머 일대기이다.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지휘자였던 오펜하이머,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위해 태어난 핵무기는 지금도 힘, 파괴력, 두려움 등을 안겨준다.
〇 지난겨울(2022년 12월) 어느 신문 기사에서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68년 만에 소련 스파이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과학자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대가를 국가는 어떤 식으로 갚았으며, 역사에 오점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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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길,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한단 말야.
―로버트 오펜하이머
1967년 2월 25일, 살을 엘 정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600여 명의 조문객들이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에 차려진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1967년)의 추도식장에 모여들었다. 노벨상 수상자, 정치인, 장군, 과학자, 시인, 소설가, 작곡가 등 오펜하이머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은 그의 일생을 기억하고 그의 죽음에 조의를 표했다. 그들 중 일부에게 오펜하이머는 ‘오피(Oppie)’라고 불리는 것을 즐기던 자상한 선생님이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그는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1945년에 개발된 원자폭탄의 ‘아버지’, 그리고 과학자가 공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국민 영웅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날 모인 모든 사람들은 원자폭탄의 개발에 성공한 지 불과 9년 후,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1890~1969년)가 이끄는 공화당 정부가 어떻게 오펜하이머에게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위험인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미국 반공주의 성전(聖戰)의 가장 유명한 희생자로 만들어졌는지를 기억하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조문객들의 무거운 마음 속에서 오펜하이머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동시에 끔찍한 비극을 경험한, 명석한 인간이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1898~1988년), 유진 폴 위그너(1902~1995년), 줄리언 시모어 슈윙거(1918~1994년), 리정다오(李政道,1926년~), 에드윈 메티슨 맥밀런(1907~1991년) 등 세계적 명성을 지닌 물리학자들이 조의를 표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년)의 딸 마고는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서 버클리 시절 제자이면서 로스앨러모스에서도 함께 일했으며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던 로버트 서버와 프린스턴 대학교의 위대한 물리학자로 태양의 작동 원리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한스 알브레히트 베테(1906~2005년)도 참석했다. 오펜하이머가 공개적인 굴욕을 당한 후, 카리브해 세인트 존 섬의 해변에 별장을 짓고 조용히 살던 시절의 이웃이었던 이르바 데넘 그린도 참석했다. 또 변호사이자 오랫동안 대통령 자문역을 맡았던 존 매클로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군사 지휘관이었던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 해군부 장관 폴 니츠, 퓰리처 상을 수상한 역사학자 아서 마이어 슐레진저 2세(1917~2007년), 뉴저지 상원의원 졸리퍼드 케이스 등 미국 외교 정책을 좌지우지하던 저명인사들도 참석했다. 백악관을 대표해서는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그의 과학 담당 보좌관인 도널드 F. 호닉을 보냈다. 호닉 역시 로스앨러모스 출신으로 첫 번째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던 1945년 6월 16일 오펜하이머와 함께 ‘트리니티’ 실험장에 있었다. ……
- P. 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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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오펜하이머」감상 후기 / 강인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로 분한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 「오펜하이머」 의 한 장면
바로 위에 보인 장면을 위해 촬영하고 있는 현장 사진. 이런 보통의 장면들조차 모두 아이맥스 전용 필름으로 촬영하는 불편한 낭비.
뭔가 지시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주연 배우 킬리언 머피, 촬영기사.
어제(8월 22일) 용산 아이파크몰 CGV 12시 50분 프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킬리언 머피 주연의 3시간짜리 영화 「오펜하이머」를 관람했습니다. 「다크 나이트」, 「인터스텔라」, 「인셉션」 등 자자한 명성의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여서 정말 기대가 컸습니다. 400석 좌석의 상영관인데 화요일 2회 프로건만 관객들은 3/4 정도 찼습니다. 단지 원자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의 일대기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배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정도의 배경지식을 지니고 영화관을 찾았지요. 영화 시작 전 화장실을 미리 다녀왔기에 영화 끝날 때까지 도중에 화장실 가는 불편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두 명의 저자가 25년간 자료를 섭렵하고 인터뷰를 하여 쓴 1천 쪽 이상의 『오펜하이머 평전』이 영화의 원작. 나는 언제쯤인지 영화 초반 20분 정도를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감독이 소화해 낸 재구성이 아니라 원작의 평전만 졸랑졸랑 따라다닌 줄거리여서, 너무나 많은 인물과 그들의 대사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솔직히 말해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였습니다. 놀란 감독은 지나치게 평전 자체에 얽매어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대사가 많고 많아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스크린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대사들은 마치 장편소설 대화 문장을 자장가처럼 듣는 것 같았습니다(잘 만든 영화일수록 대사가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대사를 가진 영화는 아마도 이 영화가 유일할 것입니다. 수많은 자료(1천 쪽 이상)를 취사선택하여 다시 작가(영화감독)가 영화 미학의 관점에서 재구성했더라면 하는 나 혼자만의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감독이 그 많은 자료를 차라리 소설로 써서 발표하지, 왜 이런 영화로 만들었을까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3시간 정도 분량의 오래전 감명 깊게 본 영화로 감히 데이비드 린 감독,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 주연 「닥터 지바고」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수려한 영상과 감미로운 음악 등 「닥터 지바고」는 영화미학으로 볼 때 평점 10점 만점짜리라 한다면, 이건 잘해야 평점 6.5밖에 못 줄 것 같습니다. 종합예술로서의 영화가 지니는 강점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깡그리 무시하고 과학자의 일대기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를 늘어놓은 평전만 정신없이 따라다니느라고, 고매하고 훌륭한 주제를 간신히 소화해 냈을 뿐. 영화로서의 낙제 점수는 차마 면해주고 싶습니다. 한두 장면의 사치스러운 감동적 쾌감을 위해 굳이 아이맥스 영화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효율적인 낭비에 불과합니다.
「오펜하이머」 전기(傳記)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1천 쪽 이상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읽고 영화관을 찾는 착한 관객들이 얼마나 될까요. 일제 식민지 시대를 모르며 6.25 전쟁의 체험을 갖지 못한 우리나라 장년 이하 세대들에게는 이 영화를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귀중한 애국심과 생명에 대한 외경, 그리고 휴머니즘의 주제를 지닌 영화라는 점을 값진 소감으로 나는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팁을 하나 소개할까요. 지루하면 밖에 잠시 나갔다가 중간에 다시 들어와서 끝까지 봐도 좋습니다. 중반 이후 영화적 즐거움과 중요한 주제를 놓치는 건 별로 없을 영화가 「오펜하이머」입니다.
한 물리학자의 영예와 몰락을 기록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2006년 퓰리처상 수상작입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 명저에 드리운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오펜하이머)
(2023.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