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손님방

고성만 시인의 첫 에세이 | 다행이다, 내가 더 사랑해서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5.04.10|조회수184 목록 댓글 0

[책 소개] 고성만 에세이

 

다행이다, 내가 더 사랑해서

고성만(지은이) 시인의 일요일 2025-02-28

288쪽, 130*186mm,  302g,  정가18,000원

 

 

책소개

등단 후 27년 동안 여덟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시를 통해 순수에 대한 동경과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웃을 위로해 왔던, 고성만 시인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 30여 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쳐 왔던 선생님이 시적 은유와 가르침의 포즈에서 벗어나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의 깊숙한 속내를 드러낸다.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 만한 강렬한 지혜나 영혼에 균열을 낼 정도의 깨달음을 전해주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삶에 대한 반성에서 모든 걸 시작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차마 내보일 수 없었던 삶의 상처와 비밀 그리고 항상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사랑과 성찰을, 비 오는 날의 5교시 국어 시간처럼 솔솔 풀어낸다.

 

 

목차

 

1부 거절당하러 왔습니다
연제호숫가에서 / 겨울밤 사랑가 듣기 / 오늘도 걷는다, 마는 / 튀르키예 풍의 카페에 간다 / <라라의 테마>를 들으며 / 강은 물기 젖은 별을 반짝인다 / 나의 작은 영웅들 / 거꾸로 세상 보기 / 로또 당첨 꿈을 꾸다 / 입맛에 대하여 / 관계 중독 / 쉼 /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 당신께 미리 드리는 이별 편지 / 옥상에 서 있던 그 청년들은 / 상처에 대하여 / 내 선택은 틀렸다 / 보랏빛 등을 켜다 / 아직도 너를 기다려 / 사십이 년 만의 동창회 / 지구와 달의 거리 / 잊히지 않는 순간들 / 눅눅한 날들의 기억 /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 여름밤엔 별이 많다 / 별에서는 꽃향기가 난다

2부 눈이 내린 날의 안부
산중반점 / 부용산과 산동애가 / 육체는 여벌이 없는 옷 / 남자로 살아남기 / 결혼 축시 / 어머님 고향은 학선리 / 나에겐 운전면허가 없다 / 시내버스 여행 / 시외버스 여행 / 농담 / 비가 눈으로 바뀌는 동안 / 저물어 가는 빛 / 극락강역에서 백양사역까지 / 계절을 맞이하는 기분 / 부끄러움과 여러움 / 새들이 남기고 간 말 / 용서에 대하여 / 집 / 옛날 영화를 보다 / 동춘서커스단 / 바다가 보이는 밭 / 하늘은 어떤 색인가 / 웅덩이에 빠진 개 / 봄 속으로 / 영광 양반 이야기 / ‘첫’ 자 들어가는 것들의 아련함

책속에서

 

저자 및 역자소개

고성만 (지은이)  

199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올해 처음 본 나비』 『슬픔을 사육하다』 『햇살 바이러스』 『마네킹과 퀵서비스맨』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케이블카 타고 달이 지나간다』 『파씨 있어요?』, 시조집 『파란, 만장』을 발간했다.
지금은 광주광역시 연제호숫가를 산책하며 살고 있다.

 

고성만(지은이)의 말

 

오늘 밤 또 기차 타고 달리다 보면 모두 잠든 새벽에 혼자 깨어 마을을 지키는 가로등을 만난다. 봄이면 민들레처럼 노란 갓을 쓴 채 새로 피어나는 꽃들을 비추고, 여름이면 솜털 같은 빗방울 모아 목마른 숨 적셔주고, 가을에는 바스락 물든 잎사귀 뒤에서 황금 관을 펼친다. 겨울에는 흰 나비 떼 같은 눈송이의 춤을 비추며 어두운 세상 환히 밝혀주는 가로등은 자동점멸장치가 멈추는 그날까지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지난날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었고, 그 기록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뒤늦게 깨닫는 것이 사랑이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의
5교시 국어 시간 같은 이야기들


등단 후 27년 동안 여덟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시를 통해 순수에 대한 동경과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웃을 위로해 왔던, 고성만 시인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 30여 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쳐 왔던 선생님이 시적 은유와 가르침의 포즈에서 벗어나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의 깊숙한 속내를 드러낸다.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 만한 강렬한 지혜나 영혼에 균열을 낼 정도의 깨달음을 전해주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삶에 대한 반성에서 모든 걸 시작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차마 내보일 수 없었던 삶의 상처와 비밀 그리고 항상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사랑과 성찰을, 비 오는 날의 5교시 국어 시간처럼 솔솔 풀어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웃음이 슬몃 새어 나오는 풍경에서부터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장면까지를 지나다 보면 사랑과 그리움, 미안함과 부끄러움, 기쁨과 슬픔 등 삶의 페이지들에 채색된,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의 결까지 모두 마주할 수 있다.

고향의 부모님을 떠나 도시로 전학 온 십대 시절에 겪었던 따돌림과 무차별 폭행의 상처, ‘비극’이 ‘축제’처럼 다가왔다던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 일남 오녀의 외아들로 대학 시절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지 못했던 시대적 부채감. 손발이 마비되어 가고 기억마저 희미해져 가는 누나에게 미리 쓰는 이별의 편지, 영문도 모른 채 좌절해야 했던 연애 이야기, 염치없게도 남이 운전하는 차 타기를 좋아하게 된 사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찾아가는 어머니의 고향 학선리 이야기, 삼십여 년의 교사 생활에 대한 소회 등, 그동안 시 행간 속에 감춰져 있던 자연인 고성만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마땅하고 옳은 일이 무엇인지 오리무중인 세상
한 계단 위쯤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지혜


고성만 시인의 제자인 김정희 변호사(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장)는 『다행이다, 내가 더 사랑해서』를 읽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인은 도시에 산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 반거충이 도시인, 아직도 고향 변산 어귀에 엉거주춤 서서 하늘빛을 닮은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시내버스 창가로 흐르는 올망졸망한 풍경들을 좋아하고, 헛헛함이 스멀거리면 시외버스 타고 소읍을 구경하고, 일없이 걷다가 극락강 어디쯤에서 잠시 멈추기도 한다. 해 질 녘 시끄럽게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라도 만나면 더 좋을 것이다. ‘마땅하고 옳은 일’이 무엇인지 오리무중이다. 시인은 어느 모퉁이에서 다시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고.

인생의 길모퉁이에서 시인은 뒤돌아본다. 누님과 함께 태어나서 자란 그 바다, 최락희 씨 댁의 자취방, 시를 노래하던 포장마차, 동네 골목으로, 카페로, 저수지로, 할 일 없이 걸으며 만나는 이들마다 따뜻한 시선과 연민을 던진다. 이 책은 누구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사랑과 행복, 그리움을 원했으나 미음과 연민, 두려움으로 점철된 삶을 되돌아보는 시인은 독자인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이 책이 그저 한없이 움츠러들던 안타까운 영혼의 외침이라고 낮춰 말한다. 독자는 오히려 그의 이런 시선에 함께 눈을 맞추고 마음을 얹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는 사이 독자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용서의 마음과 지혜가 스며들고, 삶을 한 계단쯤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조금 넓고 높은 시야를 갖게 될 것이다.
 

 

 

 

  웅덩이에 빠진 개  / 고성만

 

 

 

  강아지는 태어난 후 석 달 지날 즈음부터 말썽이 심해진다. 사람으로 치면 미운 일곱 살 쯤 되는 나이이다. 차분한 탐색에 앞서는 호기심이 왕성할 시기이다. 강아지에서 개로 변해가는 이 무렵 목줄을 매기 시작하는데, 목줄 매이기 직전 강아지는 온갖 것에 관심을 보인다. 주막에 가신 아버지의 신발을 물고 돌아와 집에 갖다놓거나 닭장 틈으로 기어들어가 알 낳는 닭의 날개 죽지를 물어서 부러뜨려놓거나 모종 뿌려놓은 텃밭을 짓밟아서 어머니께 작대기로 쳐맞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호기심에 제 키보다 깊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 속엔 분명 물고기 같은 놀잇감으로 적당한 뭔가가 있었을 것이다. 쥐, 두더지 혹은 땅강아지 무엇이라도 잡아다가 요리조리 놀리면서 즐겁게 논다.

 

  아이들은 강아지의 상상력을 닮았다.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말리는 곳에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그곳은 약간 으슥해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아야 하고 막대기 돌멩이 벽돌 삽 망치 등이 널브러져 있어야 한다. 어느새 하도 많이 드나들어서 그곳으로 내려가고 올라가는 곳에 위치한 나무뿌리는 손잡이처럼 맨들맨들 닳아졌다. 어른들은, 분명히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야단치는 시늉을 한다.

  “떼끼놈들, 빨리 못 나와!” 

  “다쳐서 울지 말고 퍼뜩!”

  “그럴 정신으로 공부를 할 것이지 쯧, 쯧,” 

  노는 일을 향한 아이들의 열망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나뭇가지를 엮어서 얼기설기 움막 같은 집을 짓고, 집에서 가재도구 훔쳐와 살림을 차린다. 구덩이는 어느새 아지트가 되고, 가상의 가족이 탄생한다. 이 무리에 끼려면 상당한 양의 물질을 제공하거나 희생을 선사해야 한다. 나처럼 몸이 약한 아이는 무리에서 소외되기 쉬우므로 열심히 구애 작전을 편다. 약간의 아부 발언과 함께 중간 간부급 이웃집 형에게 찰싹 엿처럼 달라붙어 그의 수고를 대신한다. 아이들이 자란 건지 구덩이가 메워진 건지 어느새 그곳은 마침내 평평하고 밋밋한 땅이 되고야 만다.

 

  사춘기가 지나며 몸과 정신이 부쩍 자란 나는 이번에는 여자에 관심을 보인다. 동네에서 가장 야시시한 여자를 고른다. 배경은 우리 집 마루, 시간은 초여름 한낮, 그런 내용의 소설을 읽다 낮잠에 들어 비몽사몽 중인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등장한다. 아주머니는 마치 모네가 그린 양산을 든 여인처럼 통이 넓은 치마를 입었다. 그 순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이 흠뻑 젖을 위험에 처한다. 어디선가 고함이 들린다.

  “고추 안 걷고 뭐해!”

  “엉큼한 녀석”

  “혼 좀 나야겠어.”

  아주머니가 찰싹 엉덩이를 때린다. 아직도 꿈속이다. 아주머니가 귀를 잡아당긴다. 못이긴 척 뜬 눈 앞에 밭에서 돌아오신 어머니가 서있다. 귓불이 달아오르고 부끄러움에 쥐구멍을 찾는다. 부끄러움은 금기와 관련이 있다. 금기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시킨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면 꼭 열어보고 싶은 심리.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것에 대해 화가 난 제우스가 준 벌이었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준 상자를 열어버렸고 그 속에 있던 질병 슬픔 가난 전쟁 증오 등의 모든 악이 쏟아져 나왔다. 놀란 판도라는 상자를 닫았고 맨 밑에 있던 '희망'만이 상자에 남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인간들은 힘든 일을 많이 겪지만 희망을 잃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강아지도 그랬을 것이다. 물속에서 뭔가가 노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잡고자 하는 희망에 시달린 결과 물 쪽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가다 한순간 발을 헛딛어 미끄러졌을 것이다. 죽을 위험에 처한 강아지는 자기도 모르게 헤엄을 치게 되었다. 개나 돼지가 물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려 수영하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호기심은 그러니까 창조의 원천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호기심에 시달릴 때가 많다. 남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사실이 궁금하다. 예를 들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첫사랑이 궁금하고 그해 겨울 우리 마을에 찾아왔던 대바구니 장수의 사연이 궁금하다. 담양이 고향이라 했는데 어찌하여 그 먼 변산반도 바닷가까지 왔는지 의아하고 하필 인색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우리 집 부엌에서 뜨거운 국에 밥을 말아 먹었는지, 지금쯤 늙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다.

   산사나무 가지 사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둥지가 보인다. 새가 둥지를 튼 나무는 가장 안정적인 나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새의 둥지는 견고하다. 겉에는 나뭇가지 안에는 진흙으로 다져진 벽, 솜털이 푹신하게 깔린 내부. 건축공학적으로도 훌륭한 둥지는 한겨울 눈보라 한여름 폭풍우에도 안전하다. 이렇게 눈이 오는 날 새들은 어디서 겨울을 날까. 그들의 사랑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까. 자손을 낳기 위한 짝짓기는? 호기심은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호기심이 대견하다. 

 

 

 

강은 물기 젖은 별을 반짝인다 / 고성만

 

 

 

  마음속에 시의 스승 두 분이 계신다. 

 

  내가 강인한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2학년 때였다. 나는 습작을 하는 시인 지망생이었고, 시인은 고등학교 교사였다. 나는 시인의 시에 이유 없이 끌렸다. 깨끗하고 가지런한 시 세계가 좋았고, 특히 그 무렵 발간한 제3 시집 『전라도 시인』은 드물게 신선한 감각의 시집이었다. 장석주의 해설, 카피라이터 이만재의 발문도 새로웠을 뿐 아니라, 시인과 시인 가족 주변의 풍경이 아주 잘 어우러진 책이었다. 그 시집에서 「슬라브지붕에서 바라본 지중해」, 「대문에 태극기를 달고 싶은 날」, 「냉장고를 노래함」과 같은 시를 본 기억이 나는데, 시인 가족이 힘들여 마련한 집과 관련된 시편들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소박하고도 따뜻했다. 일간지에도 여러 번 광고가 실렸던 기억이 나고, 독자들의 호응도 좋았던 듯하다. 그 무렵 광주는 죽음의 냄새로 뒤덮인 음울한 도시였다. 비극의 땅에 새로 돋아나는 씨앗처럼, 강인한은 시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인한 시인이 쓴 「팬지꽃」은 사실상 5월의 광주를 상징한다. 80년대 초에 나는 차마 이 시를 읽을 수가 없었다. 시인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이 작은 꽃에다가 ‘벌거벗은 울음빛’, ‘벙어리 시늉’을 담았겠는가. 그때 마침 대학교 교지 편집을 맡고 있던 나는 강인한의 시를 소개하는 코너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평소 존경하던 시인이 근무하는 살레시오 고등학교에 찾아갔다. 몇 권의 교과서와 참고 서적이 있는 학기말? 학기초?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의 나무책상이 있는 교무실에서 짧으나마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40대의 시인은 생각보다 훨씬 수수한 옷차림, 말수도 많지 않았으며, 무척 친절한 분이었고, 선량한 눈빛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와의 첫 번째 짧은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가 얼마 안 있어 군에 입대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습작을 하고도, 신춘문예와 문예지 최종에서 번번이 미끄러진 나는 제대하여 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 시작하였다. 그동안 중단하였던 시 작업을 재개했는데, 어떨 때는 일주일에 한 편, 어떨 때는 이삼일에 한 편 시를 썼다. 쏟아지는 시에 대한 평을 듣고 싶어 하던 차에 강인한 시인이 근처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인이 근무하던 고등학교는 걸어서 이십 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간간이 시인의 시를 읽었던 터라 학교로 안부 전화를 걸었다. 옛날 찾아뵈었던 일은 기억하지 못하셨지만, 시를 가지고 “다시 뵙고 싶습니다.”라는 말엔 흔쾌히 허락하셨고, 자주 시간을 내주셨다. 그로부터 나는 시의 ‘과외교사’ 한 분을 모시게 되었다. 덜된 부분, 좋은 부분을 일일이 지적해 주셨는데, 1998년 초여름 “고 선생은 이제 등단할 수 있겠어요.”라는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섬, 검은 옷의 수도자」외 4편의 시로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게 되어 문단에 나서게 되었다.

  강인한 시인께서는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신다. 나는 시인의 시가 좋다. 좋은데 이유가 있으랴마는 시어를 고르는 치열성이 좋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좋다. 불의한 시대에 대한 통찰을 통해,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촌철살인하는 비판 정신이 부럽고 닮고 싶다. 

 

  또 한 분의 스승이 계신다.

 

  나는 이천 년대 초반 무렵 범대순 시인을 만났다. 범대순 시인은 <원탁시>를 만든 창립동인으로 이미 시에 일가를 이룬 분이셨다. 1965년 시집 『흑인 고수 루이의 북』이라는 시집으로 등단하고, 1997년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한 범대순 시인이 활동 중이던 <원탁시>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원탁시>에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동인 활동을 접게 되었다. 비록 동인 활동은 접었지만, 범대순 시인과 강인한 시인과 나, 이렇게 셋이서 가끔 만나게 되었다. 광주 용전동의 생고기집에 가기도 했고, 두암동 먹자골목에서 해물찜을 먹기도 했다. 범대순 시인은 무등산에 천 번 이상 올랐고, 2013년에 시집 『무등산』을 내셨는데, 그 시집으로 ‘제12회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하셨다. 

 

  내가 범대순 시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지역성이다. 시인은 광주 북구 생룡동을 세거지로 둔 ‘금성 범 씨’ 가계에서 태어나셨고, 시인의 아버님은 그 지역에서 서당을 운영하셨다. 누구보다 앞서간 영문학자셨고, 대학교수로 사셨지만, 자기가 태어난 곳의 정서를 잊지 않으셨다.

  둘째 열정이다. 대학에서 정년퇴직 후 오히려 시에 몰입해서 거의 1~2년에 한 권씩 시집을 내시고, 독자들과 소통하셨다. ‘전체 시집 읽기 모임’ 등을 개최하며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셨다.

  내가 범대순 시인을 뵈었을 때 시인은 이미 칠십 중반의 나이셨다. 그리고 십여 년 후 타개하셨다. 시인은 만날 때마다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강 시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여.”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두 분을 뵙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고, 내 판단으로 학자적인 범대순 시인은 강인한 시인의 명징한 시 세계를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존경하는 시인을 두 분이나 모시게 되어 몹시 행복했고, 시인으로 산다는 것의 ‘존엄’을 깨닫게 되었다. 

  범대순 시인의 고향은 광주시 북구 용강동이다. ‘하신’이라는 작은 마을에 시인의 생가가 있는데, 그곳은 영산강과 아주 가까워 여울물 소리 바람에 쓸린 갈잎 소리가 들린다. 별 몇 개 반짝반짝, 시인의 선친께서 조성하셨다는 대나무 습지가 멀리 보이고, 습지 주변으로는 수십 수백만 마리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끔 그곳에 들른다. 자운영 금계국 꿩의다리 고마리 쉴 새 없이 피어선 지고 흰 날개의 새들이 떼 지어 날 때 숨이 막힐 것 같은 삶의 시름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시인은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눈을 뜨는 존재이다. 밤 깊어 새로 태어난 별처럼 강을 읊다가 강을 사랑하다가 강물 따라 먼 길 나서는 운명, 그래서 강은 오늘도 물기 젖은 별들을 반짝인다. 멀리멀리 떠났다가도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시인이 돌아올 때 더욱더 빛나는 눈빛으로 시인을 맞이하기 위해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