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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하반기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 당선작 / 강혜원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5.10.27|조회수596 목록 댓글 0

2025 하반기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 당선작

 

 

2층과 3층 사이에 기린 얼룩이 살아서 (외 4편)

 

강혜원

 

 

새로 한 매직은 실패야

열나흘째 오락가락 비 내리고

올올이 시위 중인 머리카락 때문에

꼼짝없이 달력 속에 갇혔다는 건

거짓말 같은 사실

 

엄마는 입덧할 때 감잣국을 퍽도 먹었다는데

그때 그 감자의 출신성분이

개똥밭일 거라 이따금 생각했어

감자싹처럼 자라난 우울과 얘기할 때

 

길 건너 발레학원 소녀들처럼 를르베 를르베 발꿈치를 들어 올리고 조명보다 환하게 스스로 빛나고 싶어

 

급여통장에 첫 줄이 쓰일 수 있다면, 종일 파쇄기만 돌린다 해도 박물관 반가사유상 뮷즈처럼 퇴근 후 명상으로 온화해졌을 텐데 십 년째 오십견 중인 엄마의 양쪽 어깨에 수막새로 덮여 신라 때 미소처럼 웃으려 했어

 

베란다 문턱 아래

로켓으로 배송된 감자가 자꾸만 파란 눈을 씰룩여

건너뛴 끼니 사이로 호우특보는 내리고

빈집에 혼자인데

송곳니가 소심해서 어슬렁거릴 수가 없어

 

물먹은 발가락 사이에서 울음주머니처럼

감자알이 또 부풀고 있어

정체전선을 격파할 대파를 사다가 오늘은

감잣국이라도 한 솥 끓여야겠어

 

일어나 기린, 긴 다리로 잡풀숲을 헤치며 비 오는 날의 굿즈가 되어 줄래 계단 벽에 얼룩으로 잠자던 심약을 벗고 약동의 아이콘이 되기로 해 나가는 길에 봉숭아 꽃잎을 심장에 달아 줄게 이력서 행간 깜빡이던 커서 같은 키 작은 너의 친구가 두 팔을 한껏 들어 올리게 될 거야

 

 

 

꿈꾸는 맹그로브

 

 

 

화살촉 같은 날들이에요

나는 동생들과 날마다 어깨를 겯고 큰 숨을 쉬어요

학교에 가고 숙제하고 일기를 쓰고

그런 생시는 가당치 않아서요

숲으로 게를 잡으러 나갔던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날로부터

뒤숭숭한 꿈에서 악취가 나요

아빠가 쓰나미로 돌아올까 봐

무럭무럭 뻗어가는 뿌리로 밤마다 빗장을 걸어요

우리는 물구나무 선 채로 크다가 진흙 속에 거꾸로 처박혔어요

어떤 추락은 방패로 자라기도 한다네요

얼굴도 없는 짜디짠 꿈이

우리 집을 지워버린 해안선처럼

점점 사나워져요

소금기 게워내는 꿈속에서도 우리는

심상치 않은 파도를 쉴 새 없이 썰어요

고장 난 적도의 허리뼈에 말뚝을 박고

숭숭 구멍 난 꿈을 시침하듯 안녕의 깃발을 걸어요

무성한 손으로

헝클어진 달의 앞머리를 쓸어주며 달래요

지친 천사를 만나면

기도는 왜 고단한 꿈들의 몫인지 묻고 싶어요

신전도 없이, 꿈은

밤의 미로 속을 헤매며

두려운 것들은 어째서 송두리째 덮쳐 오는가 생각해요

바닷물에 젖은 빨래가 다 마르면

휩쓸려도 떠오르고 마는 뿌리 깊은 집을 다시 지어야겠어요

 

 

 

시그널

 

 

 

오래전 추파를 던졌을 때

나의 윙크 소리는 들렸느냐고 묻는다

이를테면 왼쪽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묶이고 싶은 영혼에게 던지는 진득한 신호

 

주파수가 약한 너는 밥을 먹다가 희미하게 웃기만 하고

 

이제 점잖은 기도로는 부족해

식사를 마칠 때 숟가락으로 밥그릇을 텅텅 두드리기로 해

 

그건 다음 밥을 부르는 의식 같은 거라고 해두자

 

우리가 훗날 서로의 눈 내린 무덤 위에 꽃을 두고 오듯

 

숟가락 위에 하얀 밥무덤을 수북이 돋우고

오이지 장조림 계란말이를 번갈아 올려

허기에게

고맙다고 그동안 무심했다고

 

옛사람들이 산정에 올라 막대기로 땅을 치며 머리를 구했듯

 

바닥이 드러난 오늘에게 다시 빈손임을 들키는 일일지라도

내일을 알 수 없는 위태로움에게 움켜쥘 고삐를 주는 거야

 

예고도 없이 밥그릇을 텅텅 치며

너의 얼굴은 출정을 알리는 북 가죽처럼 웃고

 

밤은 미치 미첼*의 스틱처럼 기진한 우리를 두드린다

 

 

* 미치 미첼 : 지미 핸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드러머로 잘 알려진 영국의 음악가

 

 

 

보늬밤조림

 

 

 

없는 당신이 어제는

검은 봉지 속 말라가는 나의 작심을 물었지

 

누구라서 최선의 과녁에 꽃다발을 걸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쟁반 위에는

귀를 닮은 밤껍질 수북하다

귀를 벗겨내자, 칼날이 긋고 가는 얼룩덜룩한 말의 기억들

 

꽃철 지난 후

나의 말만 기다리는 귀와 나의 귀에만 친절한 말이 있었네

 

나의 밤이 물렁했을 때

나의 귀가 다른 숨결에 아직은 나긋했을 때

바람의 말을 곱씹느라

한낮의 멸실을 각오한 수국의 파란 입술에 귀를 기울여야 했는지도

 

혼자로 가득한 방과

이제 와 빽빽해진 새김의 갈피들

 

보늬로 두른 장막 바깥은 떫고 아린 말들의 골짜기

 

불의 호흡 가늠하며 벼랑을 물씬 헹궈내다가

반복되는 붉은 울음은 조금씩 순한 결을 회복하는데

 

귀 없이도 들려오는 헐렁한 노래, 당당

달콤해지기 위하여 다정해지는 다짐

 

품을 자랑하던 키 큰 나무들도

앙상한 그림자로 결계를 짓는 상강 무렵

 

투명 유리병 속

묵시록같이 차가운 시간에 갇히려 하네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된서리 오는 날

흠씬 감돌아

그토록 외따로였던 밤과 밤,

당신 입속에서 나의 귀가 새로 돋아나도록

 

 

 

내가 나의 후회일지라도

 

 

 

오래 가꾼 사과에서 날내가 났다

온몸의 심지 돋우어 가으내 바구니를 채웠는데도 

 

나는 겨울밤 길고양이의 눈빛,

 

엉킨 털을 삼키듯 불안을 핥고 있던 사과밭 구릉 아래 찢긴 운동화 비어져 나온 발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언가 적고 있는 아홉 살

 

시소를 타다가 공중을 크게 오리려 발을 많이 굴렀다고

곤두선 머리카락이 영 가라앉지 않는다고

 

발치에 떨어진 아이의 한숨을 집어 흙을 털고 가만히 쥐여 주었다

 

주눅 든 아이 몰래 눈물 훔치고 심호흡을 해보는데 고쳐 앉을 때마다 끈적하게 엉겨 오는 거미줄, 오래 방치한 칼을 꺼내 주섬주섬 사과를 깎아 내는데

 

구불구불 밀려 나가 쌓이는 사과껍질들

한사코 피어나는 양떼구름들

 

빈틈없이 날카로웠지만, 사과가 둥근 동안 앞을 향하는 칼날

 

같이 가지 않겠니

서로 가여운, 웅덩이에 얼비친 얼굴

 

나는 다시 앞장서야 하는 사람

 

반창고 붙인 나를 들쳐업고 우리는 귓속말하며 오래 걷기로 한다 구릉 너머 구릉, 사과꽃 향기가 우리를 둥실 띄워 올릴 때까지

 

 

 

강혜원

2011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5년 계간 시로 여는 세상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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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인상 선정의 무거움

 

 

 

응모된 투고작을 놓고 순위를 가를 때마다 마음이 몹시 무겁다. 과연 우리가 선택한 당선작이 당선되지 못한 시들보다 나은 시일까. 당연한 일이지만, 시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다. 결국 예심을 통과한 시는 심사자의 취향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더욱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심사에 임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좋은 시의 요건들을 복기하며 최선을 다해 공정한 심사를 하고자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당선작보다 당선되지 못한 응모작들을 더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

 

호수정도자기 빚는 시간5편은 진술에 가까운 표현이 난만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신기한 매력을 지닌 시편이었다. 아마도 실제로 겪은 응모자의 경험들이 시상으로 잘 이동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얻은 것이리라. 심사자의 마음을 건드린 시인의 진심은 다른 시인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면모라 판단되지만, 습관처럼 반복되는 표현들은 앞으로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진술에 가까운 불필요한 문장과 말줄임표, “-같았다”, “-같다로 문장이 끝나는 직유적 표현들은 이 응모자가 반드시 고쳐야 할 습관이다.

 

김종성해변에서 작아지는 것4편은 시적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러나 시는 담백함만으로 표현되면 좀 싱겁다. 이 응모자는 시적 대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참신한 비유를 찾아보고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서서하말리지 못한 말들4편은 시를 여러 번 다듬고 고친 흔적들이 역력하다. 그만큼 시에 공을 들였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자칫 시를 짓는 일이 고된 노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심사자를 슬프게 한다. 이 응모자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되, 억지스럽지 않게 표현되고 연과 연이 잘 이어지는 시가 될 수 있도록 좀 더 시상에 집중하면서 응모자만의 인상적인 시구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하겠다. 이를테면 이 응모자는 길게 쓰기보다는 집중해서 이미지를 찾아내는 연습을 좀 더 할 필요가 있다.

 

신현진오류코드 25 : 낮의 달이 반짝일 때6편은 독특한 시제만큼이나 시의 내용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응모자의 시적 관심이 폭넓고 이채롭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시편마다 등장하는 큰따옴표로 표현된 대화체와 인용, 작은따옴표로 강조된 시어들이 과연 적합한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시에 문장부호를 사용하는 경우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에 남은 시는 한유의 빈대의 방6편과 강혜원의 2층과 3층 사이에 기린 얼룩이 살아서4편이었다. 한유의 시는 전반적으로 시적 완성도가 높았다. 응모한 7편의 시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적 대상을 끝까지 밀고 가는 힘도 만만치 않아서 쉽게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유의 모든 응모작들이 이야기시로 여겨질 만큼 시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지나치게 치중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시인이 한 편의 시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버리면, 독자는 달리 여지가 없다. 좋은 시는 독자가 시를 읽으며 어떤 끌림에 의해 상상력이 자연스레 펼쳐지는 시라 생각한다. 읽는 순간 떨림을 느끼는 시를 다음번 한유의 시에서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

 

당선작으로 선()강혜원2층과 3층 사이에 기린 얼룩이 살아서4편은 밀도 있는 시편들이다. 시를 끌어가는 힘이 이미 습작기를 넘어서고 있으며, 시상의 전개 또한 무리하지 않게 이어지면서도 행간의 여백을 남겨 두고 있어서 그 틈으로 독자를 스며들게 한다. 여러 차례 응모한 노력과 저력도 이 응모자가 지닌, 시에 대한 애정을 짐작하게 했으며 투고 시기마다 점차 나아지는 시적 표현들도 이 시인의 성장을 확인하게 했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후에 안 사실이지만, 강혜원은 오래전에 지역 신춘문예에 당선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간의 공백기가 앞으로 《詩로여는세상을 통해 의미 있게 채워지기를 바란다. 강혜원 시인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김용옥, 김병호, 전해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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