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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님Nim〉 제2회 신인문학상 당선작_ 사각지대 (외 4편) / 최재준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6.02.03|조회수283 목록 댓글 0

웹진 Nim2회 신인문학상 당선작

 

 

사각지대(외 4편)

 

   최재준

 

 

갇힌 사각형은 답답하다

 

고요마저 닫아건 문

숨이 새지 않도록 두께를 덧댄 사각지대

못 하나 허용되지 않는 셋방 벽엔

가난조차 걸리지 않는다

 

작은 침대에서 아이는 접힌 꿈을 꾼다

기하학을 모르는 아이는 수평과 수직만으로 미래의 거푸집을 그린다

어른들은 일 년 내내 공사 중인 터 위에

분양받지 못할 뼈대를 자꾸 쌓아 올린다

 

아빠, 저 비행기는 몇 평짜리야?

창 너머 하늘을 보던 아이의 질문에

낡은 벽지가 나의 입을 틀어막는다

 

장방형 격자 숲속

사각 모자이크가 내걸리는 저녁

곡선은 멀어지고

날 선 모서리에 눈이 베인다

 

어둠의 길이만큼 숨죽이는 법을 배운다

앉는 자세로도 선 자세로도

눈금을 재는 마음으로

 

난 참 모난 사람이야

여태 보름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니

 

먼발치에서 둥그렇게 멀어지는 지구를 떠올려 본다

 

 

 

급정거

 

 

 

사원증을 반납하고 세 번째 직장에서 해고된 날

내리막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주행 속도가 우울한 생각을 앞지르는 순간

금속성 숨을 토해내는 자동차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처럼

삶과 죽음이 나란히 붙어있음을 확인한다

 

도로 한가운데 정적으로 남겨진 잔해

깃털은 어제의 몸을 버렸고

형상은 기도하듯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제야 흔들리며 눈에 들어오는 팻말

이곳엔 천사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입니다

 

기둥엔 빛바랜 사진이 붙어있고

사진 속 여인은 아이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천사의 눈빛으로 말한다

당신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요

가장 안전한 길은 당신의 뒤쪽에 있어요

 

가스레인지를 두 번 확인하고 나온 날이나

정해진 내일로만 떠오르는 태양처럼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쿵쾅거리는 심장이 스카이라인을 넘어간다

박동을 지운 검은 스키드 자국 위로

한바탕 빗줄기가 쏟아진다

 

 

 

난독증

 

 

 

젖은 유리창에 미끄러지는 자음과 모음

나무가무가 되어 춤춘다

 

능숙한 바리스타의 손길로

문장을 갈아 방울방울 내리면

향기 나는 당신의 언어

에스프레소가 에스레프소가 되는

당신의 입안은 무슨 향일까요?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섞듯 해석하면

너울대는 해가 거짓이 아니듯

너울대는 당신도 거짓처럼 이해됩니다

 

당신의 시는

악수 대신 사랑을 나누는 보노보처럼

상상을 드러낸 자세로 오해를 풀고

질감마저 과격한 구절로

웃음과 신음을 혼동하게 만듭니다

 

낯선 발음이 부풀고

어감의 삽입이 묘해지며

낭송된 운율이 혀끝에 흥건히 고입니다

 

비구름 거품이 잦아드는 오후

조금씩 젖어가는 웅덩이를

조금씩 처져가는 엉덩이로 읽습니다

 

입술에 묻은 낱말을 고치지 않아도

의미가 되기 전의 떨림으로

당신이 자꾸 새로워집니다

 

누군가의 문장이 될 때

관심은 오타에서 시작됩니다

 

 

 

2359

 

 

 

웨딩드레스였다면

목덜미는 마네킹처럼 창백하지 않았겠지

 

언니, 누군지 알겠어

올려보던 언니가 내 이름 대신 언니라고 답했다

 

밀물과 썰물로 뒤척이는 병실

등대조차 없는 바다

오늘은 풍랑이 높다

 

조타기를 놓은 선장은 어둠 속 나를 더듬듯

다시 언니라 부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표 하나 남기는 일

언니, 아침에 갈아입어

쪽지와 속옷 한 벌을 침대맡에 둔다

 

재스민 향 드레스를 꿈꾸던 시간

마지막 일 분이 수면제의 소용돌이에 잠긴다

 

오월의 신부로 피어난 꽃

꽃잎 진 자리엔 무슨 열매가 열릴까

 

계절을 잃어버린 마네킹

내일은 어떤 드레스를 준비해야 하나

 

꽃대에 링거 방울이 맺힌다

 

 

 

완벽한 대화

 

 

 

오늘은 레인 체크를 벌었다

가게는 비어 있었다

연필도 종이도 스마트폰도 필요 없는 날이었다

손님이 들었다

그의 안내견에게 물을 주었고

잠시 쉬어가게 해달라 해서 의자를 빼 주었다

잎을 버린 창밖의 노란 장미와

붉은 로즈힙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철 늦은 수박 한 조각을 그의 손에 건넸다

씨를 뱉어낼 수 있게 접시를 주었다

손으로 말하는 대신 그의 손을 접시로 끌어 주었다

눈을 감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심술궂게 내리는 늦은 폭우와

오지 않을 버스에 대해

떠내려가는 초라한 목소리에 대해서도

그가 커피를 주문했다

눈을 감고 마시는 커피 향엔 햇살이 배어있는 걸까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음에 또 오겠다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끝내 묻지 않았다

내게 언어장애가 있느냐고 

 

 최재준 시인

 미국 시애틀 근교 거주. 공학박사, 워싱턴대학 졸업. 보잉기술연구소(Boeing Research & Technology) 재직.

제2회 웹진  Nim 신인문학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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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연스러움과 새로운 시적 뉘앙스로의 안내

 

 

 

   연일 폭염의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이런 염천 아래 새삼 시의 위의(威儀)는 사람의 몸과 맘의 어디까지를 간정하고 웅숭깊고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되뇌이게 한다늦된 자의 마음은 자연의 맹렬함 앞에 그리고 우리가 지난 시간 혹독하게 겪었던 사회적 혼란의 수습을 통과하면서 시의 속종과 그 영향력을 다시 되짚게 한다지난한 통과의 과정이 오롯이 우리를 일깨우게 한다우리가 시의 신인에게 거는 기대는 단정한 복습과 복창이 아니라 어쩌면 거칠지만 새로운 질문의 가능성과 그 물음의 깊이를 확장하는 데 눈길을 둬 달라는 기대치인지도 모른다.

 

   예심을 거쳐 최종 여섯 분의 시편이 올라왔다폴카 에브리웨어」 는 시를 무겁게 찾지 않는 경쾌한 발어법에 주목했고 감정의 이입이 입체감 있게 잇닿는 활달함이 좋았다의미의 무게감을 강제할 필요는 없으나 나름의 깊이를 지향하는 눈길이 시를 안받침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박제된 123」 는 내면과 외면을 아우르는 치밀한 언어적 조직의 질감이 우선 눈길을 끌었고 쉽게 의미를 단정하지 않는 치열함과 모종의 불온함이 매력이었다어느 순간 지엽적인 말단을 지나치게 끌고 가는 건조한 주행의 느낌은 좀 더 습습하고 명민해질 필요가 있어 보였다하루」 는 표현의 이질적인 도입과 낯선 이미지의 결합이 시를 돌연하게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분위기를 보여줬다하지만 그 표현의 세목들 간의 결합이 생경해지거나 이음새가 자연스럽지 못할 때 시는 돌연 낯선 외물로만 남을 때가 종종 있었다문장들」 는 안정적이면서도 온후하고 때론 웅숭깊은 시적 내면을 고루 지닌 시의 품성을 보여줬다그럼에도 어딘가 더 의미나 분위기의 안정감에 치우쳐 뭔가 더 치받듯이 새로 발굴할 내용이 남았음을 아쉬워했다.

 

   최재준의 사각지대」 외 4편은 사물과 정황을 헤아리는 눈길이 따뜻하고 그 구체적인 정감을 의미와 결속하는 자연스러움이 시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무엇보다 존재의 입지와 그 내면을 자의식의 자의적 틀거지에 가두려 하지 않고 내외적으로 소통해 품으려는 심성과 성찰을 지니고 있다고통에 잇닿아 있는 연민은 성찰과 깊이를 통해 시적 울림을 견인하려는 눈길도 충분히 견지해 보였다허진경의 파노라마」 외 4편은 사소한 경험들을 시적 드라마로 견인하듯 독자를 지적 재미의 관객으로 유인하는 연출과 눈썰미가 완연하다사물들의 일반적인 현상을 파노라마처럼 입체화된 의미와 뉘앙스를 경험하는 세계로 안내한다사물에 투여된 상황에 새로운 시적 외관을 입히고 삶의 축도를 부여하는 눈길은 귀히 여길 만하였다하여 두 분을 새로운 시인으로 미는 데 주저함이 없없다두 분 시인 축하드린다시의 길그 붕정(鵬程)엔 좋은 길도 나쁜 길도 따로 있지 않아 보인다나머지 선()에 들지는 못했지만 열정과 가능성을 보여준 분들께도 정진을 당부하며 성원을 보낸다.

 

 -심사위원이용헌 안차애 유종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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