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와 표절의 차이에 대하여
이승하
올해는 신춘문예 발표가 나고 여러 날 지났는데도 표절 시비가 일어나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도 <동아일보> 당선자는 당선작이 표절시비에 걸려 당선의 기쁨을 느끼자마자 큰 곤경에 빠졌고, 결국 2007년에 펴낸 첫 시집에 당연히 들어가야 할 신춘문예 당선작을 빼버렸다.
실종된 지 일년 만에 그는 발견되었다 죽음을 떠난 흰 뼈들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독극물이 들어 있던 빈 병에는 바람이 울었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경찰차가 사내의 유골을 에워싸고 마지막 울음과 비틀어진 웃음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했다 비닐봉투 속에 들어간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 접근금지를 알리는 노란 테이프 안에는 그의 단단한 뼈들이 힘센 자석처럼 오물거리는 벌레들을 잔뜩 붙여놓고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단단한 뼈」전문
산문시임에도 느슨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소재도 이색적이고 주제도 제목 그대로 단단하며, 특히 표현에 있어 군더더기 하나 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기에 그 해의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최금진의 제1회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작을 모방했다고 인터넷에 올린 이들이 있었다. 인터넷 세상에서 누가 한 번 비난을 받으면 너나없이 그를 향해 화살을 쏘아대기 때문에 당사자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마도 <동아일보> 당선자는 한동안 가슴앓이를 심하게 했을 것이다.
차는 계곡에서 한 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니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웃고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서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 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해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 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최금진,「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전문
시의 첫 문장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니 ‘모티브’가 비슷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단단한 뼈」를 쓴 시인이 최금진의 등단작을 표절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습작기의 시인 지망생이 기성시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 것은 다반사이며, 후자가 전자를 모방한 것도 아니기에 ‘표절작’이라는 네티즌의 선언은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동아일보> 당선자는 그 뒤에 시도 열심히 발표하고 시집도 내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므로 당선 직후의 소동이 가져다준 마음의 상처는 많이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1996년 말에 어느 시인의 시집을 받고 묘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시집에 있는 아래의 시를 내가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치자빛 저고리 위로 갈피 갈피 눈 내리는
할머니의 겨울에는
문패 없는 이웃집 나무 위 새들이 콕콕 눈물 글썽이는
고요와 슬픔이 쉬고 있다
마른 세월 끝을 지나가는 인동(忍冬)의 그믐 밤
가슴 마디 잘린 그 추위 속에
할머니의 나긋발림으로 풀어놓은 털실을 물고
새들은 저마다 핏줄 깊은 하늘로 날아가고
물레처럼 잣는 할머니의 뜨개질은
백자빛 울음 우는 이조 여인의 가슴 뿌리로부터
순금(純金)의 날개 펄럭이며 하늘을 향해 가고 있다
성긴 홰를 치며 휘젓는 이조의 겨울
그 소요의 먼 꿈속을 걸어나와
갈피 갈피 겨울의 시간을 짜고 있는 할머니의 나라
자주 애장터로 간 자손을 생각하며 흐느끼시던
긴 은빛 실로 뜨이는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외로움이 피어
통정(通情)같이 반짝이는 세월의 손금을 펼치신다
우리가 닿지 않는 마음밭을 서성이시는 할머니
구전의 나라에서 듣던 형형한 사랑이
다시 우리 가슴에 새살같이 돋고 있구나
눈이 와서 나무들은 풍설(風雪)의 옷을 입고
눈물새의 단단한 부리와 만나는 날
설레이는 손끝에 감긴 미래의 가락으로
숙지황 같은 할머니 무릎에 놓인
내 귀가 듣는 여윈 맥박
이 겨울 누구의 옷을 짜며 기울고 계신가
-「할머니의 뜨개질」전문
이 시 한 작품만 놓고 보면 수준작이다. 빛나는 비유법들에, 사유의 깊이도 만만치 않다. 작자는 눈 내리는 겨울날 할머니가 뜨개질하던 모습을 떠올려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는데, 할머니의 할머니들도 깊어가는 어느 겨울에 뜨개질을 하면서 온갖 시름을 잊었으리라 생각해보았던 것이다. 특히 “자주 애장터로 간 자손을 생각하며 흐느끼시던” 할머니에 대한 묘사에서는 이 시인의 역사의식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래에 제시하는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과 여러 가지 점에서 유사하기에 온전한 창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하늘과 아이들이 쉬고 있다.
마른 가지의 난동(暖冬)의 빨간 열매가 수실로 뜨이는
눈 내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神)의 아내들이 찐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內部)의 겨울바다로 한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의 가봉(假縫),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받은 아이들의 전샹애(全生涯)의 옷을 짜고 있다.
설레이는 신(神)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 나와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알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뢰(雨雷)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儀式)의 옷을 입고
축복 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는 직조의 방에 누워
내 동상(凍傷)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 일을 엿듣고 있다.
-「재봉」전문
눈 내린 날 할머니의 뜨개질과 아내의 털실 짜기라는 모티브의 유사성은 차치하고라도 시의 전개 과정과 전체적인 얼개가 거의 같다. 구성이 거의 같으므로 「할머니의 뜨개질」은 김종철 시인의 등단작이 없었더라면 결코 태어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긴 은빛 실로 뜨이는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외로움이 피어”가 어찌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가 없었더라면 나올 수 있었을까? ‘설레이는’ 같은,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까지도 같다. 이런 여러 가지 점에서 「할머니의 뜨개질」이 「재봉」을 모방한 작품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유의 모방은 학생들이 제출하는 작품 중에서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패러디임이 확실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표절의 혐의가 짙은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지만,
나는 오만 걱정을 다하며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아리지도 못한 채 걷습니다.
서민들 가슴속에 하나, 둘 박혀지는 못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이 고생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요
앞으로 기약 없는 월세 내는 날짜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 때문이외다.
정책 하나에 한숨과
정책 하나에 한심함과
정책 하나에 정쟁(政爭)과
정책 하나에 짜증과
정책 하나에 허무함과
정책 하나에 대통령님, 대통령님
대통령님, 저는 정책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언제나 붙여볼까요.
초등학교 때 책상을 같이 하던 동무들의 꿈이 과학자, 선생님, 가수, 간호사……
이런 꿈을 갖고 있었던 내 동무의 이름들이 벌써 실업자, 백수, 취업준비생, 고시생, 허울 좋은 프리랜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답니다.
대통령님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대통령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홀로 유토피아에 계십니다.
저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처음 내거신 공약들을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했던 약속들을 못 지키어 부끄러워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저희의 별에도 봄이 오게 해주신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대통령님 초상화 걸고 내려오시는 그 날 그 그림 위에도
사랑처럼 무수한 박수 쏟아질 거외다.
-진준무,「별 헤는 밤」전문
이 작품은 누가 봐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패러디한 것이다. 부제를 붙이지 않았지만 모작이니 표절작이니 하면서 시비를 걸 수 없다. 전체적인 구성은 그대로 두고 시어를 다른 것으로 대체시켜 나갔는데 시의 소재와 주제가 원작과 완전히 다르게, 정치풍자시로 탈바꿈을 시켰다. 시에는 경제를 안정시켜줄 것이라고 믿고 대통령으로 뽑아주었는데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원망감이 잔뜩 실려 있다. 나는 이 시를 써낸 학생에게 절묘한 패러디다, 패러디 시라는 것이 어떤 시인지 하나의 모델을 보여준 것이다, 패러디를 재미있게 함으로써 시의 내용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는 등 칭찬을 잔뜩 해줬다. 같은 시간이었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다른 학생은 등단한 시인이었다. 이런 시를 써냈다.
송곳 같기도 하고 톱날 같기도 한
불안만 삐걱거리는 물소리를 쪼개본다
물푸레나무 가지 갈라지는 소리 들을 때마다
한밤의 별들을 모조리 토해놓은
그 강가의 시간을 떠올리며
내가 먼저 유리처럼 뾰족해 물소리를 쪼개본다
나를 두고 어긋나는 것들을 향해 천진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상처를 싸맬 수도 없었다 나는 출렁거렸고 안개는 또 나를 모로 세웠다
그곳에는 낙과들이 즐비했고 나도 비틀거리며 하얗게 얼어붙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 빗줄기같이 구근을 깨우는 새소리를 듣고
몸을 뒤틀었다 서글픔도
더구나 진실 같은 것은 얼마만큼의 팽창으로
금가야 하는지 나는 귀를 세웠다 가시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귀를 키웠다
겨드랑이에 프로펠러가 생겼다
망가진 육신에 엔진 소리가 났다
강가 바람은 떠밀려가고
형체도 없이 웅크린 궤도의 불빛들이
나를 비추고 있다
강을 가득 채우는 속도음
나의 비행이 물소리를 쪼갠다
-「물소리를 쪼개본다」전문
완성도가 꽤 높은 시였다. 시어의 선택에 있어서나 행과 연의 갈림에 있어서나 비유법 구사에 있어서나 공력을 보통 기울인 시가 아니었다. 등단한 시인이라 그런지 세련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칭찬을 해주자 동급생 한 명이 손을 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 시는 신춘문예 당선작을 모작한 것이라고 하면서. 훗날 읽은 2005년 <전남일보> 당선작은 아래와 같았다.
돌에 물을 준다
멈춘 것도 같고 늙어 가는 것도 같은
이 조용한 목마름에 물을 준다
이끼 품은 흙 한 덩이 옆으로 옮겨 온
너를 볼 때마다
너를 발견했던 물새우 투명한 그 강가의
밤이슬을 생각하며 내가 먼저 목말라
너에게 물을 준다
나를 건드리고 지나는 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없었고
뒤돌아볼 수도 없었다 나는 무거웠고 바람은 또 쉽게 지나갔다
움직일 수 없는 내게 바람은 어둠과 빛을 끌어다 주었다
때로 등을 태워 검어지기도 했고 목이 말라 창백해지기도 했다
아무하고도 말을 할 수 없을 때, 긴 꼬챙이같이 가슴을 뚫고 오는
빗줄기로 먹고 살았다 아픔도,
더더구나 외로움 같은 건 나를 지나는
사람들 이야기로만 쓰여졌다 나는 몸을 문질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소리도 없이 몸을 문질렀다
내 몸에 무늬가 생겼다
으깨진 시간의 무늬 사이로 숨이 나왔다
강가 밤이슬 사라지고
소리 없이 웅크린 기억들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너의 긴 길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멈출 수도, 늙어갈 줄도 모르는
돌 속의 길이
나에게 물을 준다
-이선자,「돌에 물을 준다」전문
대조를 해보니 「물소리를 쪼개본다」는 이 시를 거푸집 삼아 시어를 교체해 나간 것에 지나지 않았다. 부제를 붙이거나 각주를 달아 「돌에 물은 준다」를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하지 않았으므로 이 시는 명백히 표절작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난감해졌다. 학생은 시단에 나가 활동하고 있는 나와 동갑의 시인이었기에 심한 꾸중은 하지 않았지만 패러디와 표절이 왜 다른지를 설명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러디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어떤 저명 작가의 시(詩)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 또는 조롱삼아 꾸민 익살 시문(詩文). 어떤 인기 작품의 자구를 변경시키거나 과장하여 익살 또는 풍자의 효과를 노린 경우가 많다. 창조성이 없으며 때로는 악의가 개입되지만 여기서의 웃음의 정신은 문학의 본질적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풍자시인 히포낙스가 그 시조라고 한다. (『두산백과사전』에서)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란 부제를 붙여 발표한 장정일의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이나 이상의 「烏瞰圖 詩 第1號」를 패러디한 함민복의 「광고의 나라」 같은 작품도 있고,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패러디한 박세현의 「신동엽 흉내내기 1987~1988」도 있다. 정현종의 유명한 시 「섬」을 패러디한 다음과 같은 시는 우리나라가 이념의 진통을 겪던 군사정권 시절에 발표되었기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박덕규,「사이」전문
어디에 소속되지 않으면 ‘회색분자’라고 비난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고충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이 절묘한 패러디 시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윤동주의 「八福」이 『마태복음』제5장 3~12절을 표절했다고 보지 않는다. 박남철의 「주기도문」과 「주기도문, 빌어먹을」을 표절작이라고 하지 않고 주기도문을 패러디했다고 한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폴 엘뤼아르의 「자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 표절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김지하의 작품과 폴 엘뤼아르의 작품 사이에 유사성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의도’를 가지고 베낀 것은 아니기에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전태련 시인의 시 「기차는 깁는다」는 “기차는 두 줄로 된 지퍼 채우듯/ 갈라진 것들을 깁는다”로 시작되는데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차창 밖, 풍경 빈 곳」은 “철길은 열려진 지퍼처럼 놓여 있다”로 시작된다. 신춘문예 심사평을 보니 도입부의 참신성에 대해 칭찬을 하면서 이것을 높이 사 최종심에 오른 다른 작품을 제치고 당선작으로 뽑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유사한 모티프나 모티브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베끼기나 짜깁기가 기존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거나 비틀기를 시도한 패러디의 차원이 아니라 기존의 작품을 숨겨둔 채로 행한 표절이나 모작의 차원이라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신춘문예에서 간혹 문제가 되는 것으로 ‘중복투고’라는 것도 있다. 2005년 중앙일보의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만능사 2호점」이란 시가 같은 해 5월에 경희대 <대학주보>에서 실시한 ‘전국대학생 문예현상공모’ 시 부문에 가작으로 뽑혀 게재된 작품과 동일한 작품이었다. 아니, 제1연 첫 시어가 ‘회기동 수목원’에서 ‘홍릉수목원’으로 바뀐 것과 제3연 세 번째 문장이 “잎을 돌돌 말더래요”가 “잎을 돌돌 말아 이른 동면에 들어갔어요”라고 바뀐 것이 달라진 부분이기는 했지만 같은 시였다. 이 사실이 신문사에 알려졌으나 시를 쓴 이가 같은 사람이므로 봐주자고 하여 수상 취소가 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그 뒤로는 신춘문예에서 중복투고가 엄격히 금지되어 2009년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된 이에게는 취소 통지가 가기도 했다.
아무튼 습작기에 있는 이가 기성시인의 시를 놓고 패러디해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흡사 화가가 되기 위한 수련의 기간에 유명화가의 작품을 모사해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베껴도 누가 알랴 하는 심보는 흑심이다. 시심에 흑심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앞으로 우리 시단에서 표절시비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계간평 자리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다.
ㅡ『문학나무』(2010.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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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서봉교 작성시간 12.01.07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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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석란 작성시간 12.01.08 시 쓰는 것이 어렵기만 해요...감정의 중복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비슷한 언어들이 씌여진다면? 심하게 가슴앓이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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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여우나무 작성시간 12.01.09 공부 잘 하고 갑니다. 페러디와 표절은 엄연히 다르다는 걸 다시 깊게 생각해 봅니다. 함께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종종 비슷한 시를 써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참 난감하더라는.... 사유를 비슷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