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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전윤호, 「신문 보는 남자」감상 / 권순진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2.04.19|조회수296 목록 댓글 0

전윤호, 「신문 보는 남자」감상 / 권순진

 

 

 

신문 보는 남자

 

  전윤호

 

 

위성도시로 가는 전철에서

손잡이에 매달려 내일자 조간을 읽는 남자

반을 접어도 옆 사람과 부딪치는 정치면을

두 번 읽는 남자 아파트 분양공고 위에

땀방울을 떨구는 남자 최고 발행부수의 권위를 신뢰하고

독설이 강한 사설에 이마가 조금씩 벗겨지는 남자

선거 때마다 고민하면서도

늘상 1번만 찍은 남자 매일 300원짜리 신문을 사면서

중산층이 된 남자 한번도 어제 기사를

다시 읽어보지 않은 남자 종점까지 가서

내일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은 남자

네 컷짜리 만화보다도 볼 게 없는

어딘지 낯익은 남자

 

 

                                —시집『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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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은 세상의 현재를 스크린 하여 매일 우리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요즘은 다른 매체의 발달로 신문의 비중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신문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물정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신문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지면은 역시 정치면이다. 한국인의 정치에 대한 관심에 비례하여 현실정치가 발전하지 못했기에 작금의 정치혐오나 무관심 계층이 늘었겠지만, 그 또한 따지고 보면 정치에 대한 관심의 결과이다. 다만 그 관심이 게임의 관전 이상의 의미를 넘지 못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대권을 누가 거머쥘 것이고 금뺏지는 누가 다느냐 따위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금까지는 그랬다.

   ‘독설이 강한 사설에 이마가 조금씩 벗겨지는’ 동안에도 우리의 삶은 너무나 평범하고 따분했다. 선거 때마다 고민하면서도 늘 같은 번호만 찍어왔다. 설령 다른 번호를 찍었다 해도 내 일상에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지금 온 사방을 어깨띠 맨 사람이 들쑤시고 다닌다. 마치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 정치 밖에 없는 양 북새통을 이루지만 내보기엔 거의 일방적인 구애다. 번호가 뒤로 밀린 많은 경우는 희박한 패를 잡고 한 알 밀알이 되겠노라 읍소하고, 앞 순번에 포진한 이들은 겉으로는 조금 긴장하는 척 하지만 늘 가는 길로 가는 붓 뚜껑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느긋해 한다.

   ‘네 컷짜리 만화보다도 볼 게 없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그래도 기왕지사 벌어진 판의 게임은 즐겨야 한다. 전문가들의 판세예상도 박빙이라고 하지 않은가. 관건은 투표율이다. 찜찜하지 않으려면 투표율이 77% 이상은 되어야한다. 그리고 내가 참가하지 않은 게임을 결과만으로 관전한다면 흥미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공공적 역할과 가치를 모르고 사생활에 함몰된 인간을 지칭하는 ‘천치바보’(1950년대 미국 대선 투표율이 40%대로 곤두박질쳤을 때 정치학자 ‘밀스’가 정치에 무관심한 미국의 일반대중을 빗대어 한 말) 소리도 듣지 말아야겠다.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칠 일이다.

 

  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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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邱日報 2012년 4월 9일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에서. (국회의원 선거일자는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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