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윤의 「스파이드맨」감상 / 권순진
스파이드맨
임동윤
그는 빌딩에 붙어산다, 가느다란 거미줄에 체중을 묶고
여전히 30층 유리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중이다
종일 길거리를 쏘다녔으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눈물들이
그렁그렁 얼룩진 벽을, 부릉부릉 전속력으로 질주하지만
늘 목적지를 벋어나는 울분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벽을,
윈덱스 세제로 박박 밀어낸다, 물과 세제는 2대 1
너무 묽어서는 아무 것도 지울 수 없다
창문에 낀 마음들을 닦고 문지르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런 것이 아닐까, 등줄기가 흠뻑 젖는다
잠시 허리를 펴고 유리창 안의 세계를 훔쳐본다
자판을 두들기고, 원탁에 앉아 회의를 하고, 하나같이
제 자리에 착실히 붙어 부지런히 손과 몸을 움직인다
벌집 같은 빌딩 속에서 제 몫의 거미줄을 치고 있는 사람들
저 무리 속에 그가 끼어있던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 몰아친 바람이 그를 허공으로 내몰았다
빌딩 앞 벚나무가 후루루 후루루 봄을 분사하고
내려왔다가 올라가기를 몇 번, 그는 마침내 연착륙한다
그가 지나온 길 아득히, 구름 둥둥 떠다니고
첨탑 같은 빌딩 끝 너울너울 황금빛이 밀물지고 있다
—계간 《문학 선》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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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를 통해 얻은 영감으로 쓴 시들이 꽤 있다. 이 시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최근 상영 중인 스파이더맨 버전은 아니고,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전편 시리즈1~3편의 내용인 것 같다. 1편에서는 주인공 ‘피터 파크’가 방사능에 누출된 슈퍼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얻은 뒤 ‘거대한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을 깨닫고 소시민에서 일약 뉴욕을 지키는 슈퍼히어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그저 거미에 물린 죄로 큰 힘을 갖게 되지만 주인공의 현실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매달 집세를 걱정해야 하고 주변엔 친구도 그다지 없다. 좋아하는 연인이 있긴 한데 그나마도 별 진전 없이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30층 유리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창문에 낀 마음들을 닦고 문지르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초능력을 가졌지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어디나 있을법한 남루한 현실의 영웅일 뿐이다.
그런 고달픈 주인공에 대해 일종의 동질감이 느껴졌고, 그가 벌이는 활약상이기에 더 신나할 수 있었다. 그저께 내가 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도 기본 틀은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번에는 그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섬세하고 비중 있게 다뤘고, 탄생의 배경을 상세하게 보여주다 보니 오락영화로서 초반부가 조금 늘어진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거미줄을 타고 넘나드는 시퀀스는 역동적이며 눈부셨다.
영화에서 흥미를 끈 부분은 악당 ‘리자드맨’이다. 원래는 ‘코너스’란 생명공학박사였으나 파충류의 재생능력을 연구하던 중 한쪽 팔이 없는 자신을 생체실험하게 되는데, 뜻하지 않게 거대한 힘을 얻게 된 후 그 힘을 포기하지 못한다.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숨겨진 자아인 악당 ‘리자드’를 탄생시켜 거대한 도마뱀으로 변신, 세상을 마구 파괴시킨다. 역시 전편처럼 ‘거대한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가 숨어있는 영화였다.
권순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