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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고은의 「문의마을에 가서」평설 / 장석주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3.02.22|조회수601 목록 댓글 0

고은의 「문의마을에 가서」평설 / 장석주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고 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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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마을에 가서》에 실린 시들은 수많은 장소를 머금고 있다. 표제로 다뤄진 것만 열거하더라도 종로, 섬진강, 삼각산, 남산, 청진동, 연희동, 청수장, 죽사, 제4한강교, 광화문, 일선사, 동작동 묘지, 용인 절터, 정릉, 수유리, 창경원, 영월, 공덕동, 서울, 두만강, 추풍령, 남원 등이 있다. 왜 장소들인가. 장소는 환경 경험의 일차적인 조건이다. 장소를 내면으로 수렴하여 체화해내려는 노력과, 장소와 의식의 상호작용을 향하여 열린 마음의 예민함을 보여준다. 아울러 세상에 넓게 퍼진 피상적이고 진부한 장소 정체감에 대한 거부를 드러낸다. 더 근원적으로는 이 세상이 스쳐 지나는 곳일 뿐 참된 장소가 아니라는 부정의식이 깔려 있다. 고은의 장소들은 장소감이 희박한 장소들이다. 백석이나 서정주의 시들이 보여주는 깊은 장소감에 비교하면 이는 뚜렷하다. 깊은 장소감은 장소에 대한 애착과 그것을 자신의 내면으로 육화된 자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다.

   《문의마을에 가서》는 장소에 귀속하지 못한 방외인의 상상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듯 고은의 장소들은 한곳에 뿌리박고 사는 자의 장소가 아니라 뜨내기로서 떠도는 자의 장소다. “오늘 돌아다니면 / 내일 돌아다닐 곳 없어서 / 뜻밖의 구름 일고”(〈다만 어떤 마을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살아온 것은 없고 / 남아 있는 것은 여기서 몸으로 남아 있는가. / 깊은 밤이 돌아다보면 더욱 깊어서 / 물소리는 저 혼자 흐르는 물을 따라가는가.”(〈청수장(淸水莊)에서〉), “우리가 떠돌지 않을 때 / 누가 9층(九層) 10층(十層) 밑에서 우리로서 떠돌겠는가.”(〈청진동(淸進洞)에서〉) 등등 《문의마을에 가서》는 흐르다·떠돌다와 같은 동사의 빈번한 쓰임으로 떠돎의 흔적이 매우 뚜렷하다. 이 시기 고은의 시는 방랑의 상습화를 바탕으로 삼은 시가 많은데, 이 방랑에는 매임 없이 사는 자유가 주는 싱그러움과 함께 내쳐진 자의 어쩔 수 없는 고달픔이 어려 있다.

   〈문의마을에 가서〉는 시적 화자가 “문의마을”을 방문한 뒤 “보았던” 것들에 대한 보고를 그 중심으로 삼는다. 그 보고는 “문의마을”에 뿌리박고 사는 자의 시각이 아니라 잠시 들렀다가 스쳐 지나간 자의 시각에 의지한다. 그런 까닭에 이 시에 나타난 경관에 대한 묘사나 장소 정체성은 엷게 나타나는데, 이는 장소에 대한 시인의 접근이 추상적이며 자의적인 까닭에 있다. 이를테면 “거기까지 닿은 길이 / 몇 갈래의 길과 /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벋는구나.”와 같은 길에 대한 상념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일어나는 어느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의 상념을 이끌어내는 길은 중원 내륙에 있는 “문의마을”의 길이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잇는 적막함에 감싸인 이 세상 모든 보편의 길이다. 길이 “문의마을”이란 장소에 귀속되지 않음으로써 이 시의 중심이 “문의마을”이 아니라 죽음과 그것에 잇대인 여러 상념을 향하여 있음을 암시한다. 거기에 덧붙여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 한 죽음을 받는것을.”과 같은 시구가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선험은 “문의마을”의 장소 정체성에 연계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성에 안착한다. 죽음에 대한 시인의 경험과 인식은 기실 특정 장소와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인데, 그 익명적 장소의 경험과 인식을 “문의마을”을 호출하여 거기에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개별화한다. 그 개별화로 인해 “문의마을”은 매우 사적이고 고유한 곳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문의마을”은 하나의 지리적 위치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맥락에서 심오하고 의미 있는 장소로 태어난다.

   고은의 시와 삶은 놀라움 그 자체다. 우선 문학 생산이라는 면에서 시인을 앞설 자가 없다. 아울러 시인의 숱한 기행과 파격은 문단에 평지돌출하는 화젯거리였다. 조계사 청년 승려로 지낼 즈음 비맞으며 앞마당에서 벌거벗고 춤출 때, 누구네 집에서 까닭 없이 대성통곡하며 날밤을 새울 때, 서정주의 집에서 몇 시간째 박장대소하다가 골난 미당에게 출입금지 처분을 받고 돌아설 때 시인의 천진난만은 드러난다. 시인의 내면엔 천진난만과 광기와 황홀경과 로고스가 함께 소용돌이치는데, 시는 이것의 분출이다. 허무와 퇴폐의 대표자였던 시절부터 고은 문학은 활화산이다. 고은은 끝없이 쓴다. 양적 팽창의 끝 간 데서 홀연히 질적 전환의 길이 열린다. 시인은 개체의 삶에서 만인의 삶을 보고 만인의 삶에서 개체의 삶을 읽어내는데, 그게 《만인보》가 아닌가! 시인은 “나는 우리 겨레의 교과서를 지향한다”고 호언했는데, 그 말의 실질에 에누리가 없는 내용의 삶을 산다. 술 몇 잔을 들이키면 눈빛은 생기로 번쩍이고 목소리는 고압의 에너지로 충전되며 영감이 번뜩이는 말들이 쏟아진다. “나는 깨닫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취하기 위해 왔다”고 일갈하는 시인이 바로 고은이다. 시인에게 취중은 선적 직관 언어의 시간이다. 취중방담의 어휘는 금쪽같은 수사(修辭)의 날개를 달고 떠다닌다. 과음의 언어들조차 한국어의 섬세하고 순결한 영혼과 잇닿아 있다. 고은의 시는 굳은 것, 낡은 것을 혁파하는 푸릇한 힘으로 늘 역동적이다. 그 역동성이 한국문학의 내연을 깊게 하고 외연을 한껏 키워놓는다. 1990년대부터 세계 문학인들의 주목을 부쩍 받은 뒤 영어·일어·독일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스웨덴어 번역시집이 연이어 나왔다. 변방의 문학으로 곤고하던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견인해가는 고은은 영원한 청년 시인이다.

 

   고은(1933~ )은 전라북도 군산 출신이다. 본명은 고은태(高銀泰)다. 군산중학교 4학년 무렵부터 가출과 방랑을 상습화하다가 마침내 1952년에 20세의 나이에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 승려 시절의 법명은 일초(一超)다. 효봉선사의 상좌로 있으면서 10년간 참선과 방랑으로 세월을 보낸다. 조지훈과 서정주 등의 천거로 1958년 《현대시》에 〈폐결핵〉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내놓고, 1962년 환속하여 제주도 등지를 떠돈다. 폭음과 거침없는 기행을 일삼으며 낭만적 시인의 길을 걷던 고은은 1970년대 전태일의 분신자살에 자극받아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투사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는다. 1974년 시집 《문의마을에 가서》를 내놓으며 한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뒤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뛰어들어 민주화운동의 전위에 우뚝 선다. 고은은 전위·탐미·민중·실험·서정을 한 몸에 아우르는 세계 유일의 시인이다.

   암사내에서 승려 일초로, 승려에서 허무 시인으로, 파계승에서 민주투사로 변신한 시인은 자기갱신에의 열정으로 역사의 파란과 파행을 온몸으로 거스르며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건너온다. 《고은 시 전집》 1, 2권을 민음사에서 엮어 낸 뒤 국가내란죄의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의 독방에서 착상한 《만인보(萬人譜)》를 1986년부터 《세계의 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해서 바로 지난해에 끝냈다. 《피안감성》에서 《해변의 운문집》 《신·언어 최후의 마을》에 이르기까지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 언어로 형상화하던 초기 시의 경향은 《문의마을에 가서》를 기점으로 청산하고, 그 뒤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으로 시 세계로 바뀌어간다.

 

 

  _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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