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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정채원의 「낙원 빌」감상 / 이덕주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3.03.24|조회수355 목록 댓글 0

정채원의 「낙원 빌」감상 / 이덕주

 

 

낙원 빌

 

   정채원

 

 

   불빛을 등지고 앉은 내 뒷모습이 보인다 불빛을 마주한 상대방 얼굴을 볼 수 없다 604호 불빛에 먹혀버린 사람은 왼손을 들어 문을 가리킨다 808호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죽은 사람이 있다 곁에는 내 친구들 연락처가 적힌 수첩이 펼쳐져 있고 한쪽 다리가 부러진 안경도 떨어져 있다 이인삼각 놀이를 하다 너는 발목을 나는 목을 부러뜨렸지 숨이 막혀도 서로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어 내가 가장 아끼던 모자는 화장실에 걸린 채 입을 꼭 다물고 305호 문이 잠겨있다 문 앞에서 나와 한 아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는 꼭 내 어릴 때를 닮았구나 엄마의 심부름으로 아스피린을 사오던 나는 20년 후의 나를 알아보지 못 한다 아이는 나를 피해 비상구 쪽으로 가려 한다 계단들 벽들 문들을 지나 어디에 있든 어디에 숨든 나를 피해가지 못한다 지하에서 백년옥 1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는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내 생일은 첫눈 내리는 4월의 밤, 어떤 기억도 기대도 없이 한 사람이 낙원에 막 당도했다

 

                                                                                                 ㅡ『현대시』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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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인 빌립보서의 내용으로 “이는 나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다 For to me live is christ, and die is gain.”(『성경』빌 1:21)을 ‘낙원’과 연관지어 생각하여야 한다. 또한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도 좋겠다” (『성경』빌 1:23)는 의미도 곁들여야 한다. 이 시에서 제목인 「낙원 빌」은 물론 죽음 이후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죽음은 처음 태어난 곳인 ‘낙원’같은 집으로 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시인의 작의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시의 문면을 살펴본다면 내용파악이 더욱 용이할 것이다.

   “불빛을 등지고 앉은 내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거울을 뒤에 두고 앞에 앉아 뒤돌아봐야 한다. 거울에 비친 생을 시적 화자는 지금 현재의 생이 실재하는 604호실에 연계한다. ‘백년옥’이 상징하듯 화자는 인간의 삶을 100년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808호는 화자에게 미래에 도래할 죽음 이후를 나타낸다. 일상에서 귀중하게 여겼던 일용품인 ‘친구들 연락처가 적힌 수첩’과 ‘안경’은 죽는 순간까지 곁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곧 화자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기 위해 생의 황금기인 삼십대를 상징하는 305호 앞에서 다시 어린 시절을 반추한다. 시간이 흘러도 화자에게 “엄마의 심부름으로 아스피린을 사오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화자가 ‘20년’ 동안 억척같은 삶을 살아낸 화자를 피해, 빠르게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계단들 벽들 문들’이 상징하는 시간의 흐름은 또 다른 화자를 피해가지 못한다. ‘낙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화자는 주시한다. 죽음 이전을 표상하는 ‘지하’에서 한 생이 시작된다. 그곳은 한 생을 살기 위해 걸음을 내딛어야 할 “백년옥 1층으로 오르는 계단” 이다. 화자가 도착한 곳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다. ‘4월의 밤’에 내리는 눈은 마지막 눈이고 ‘첫눈’이다. “어떤 기억도 기대도 없이 한 사람이 낙원에 막 당도했”듯이 화자는 ‘울음소리’를 내며 탄생한 것이다.

   문면마다 주밀하게 정치한 시인의 언어배열은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통합적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분리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와 불이不異의 견해를 화자가 문면에 언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시인이 의도하는 ‘낙원’은 생을 시작한 곳이며 그곳은 또한 죽음에 이르는 곳이다. 인간에게 세상의 삶은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의미마저 강하게 시사한다. 그 때문에 문면에 제시된 삶과 죽음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과 통합적 인식을 하게하며 시인이 현재의 삶에서 ‘낙원’을 찾아야 한다는 역설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덕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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