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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평설 / 장석주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3.04.18|조회수423 목록 댓글 1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평설 / 장석주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

 

  이토록 하염없는 사랑이라니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감각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시다. 달과 고양이를 한줄에 엮다니! 달이 뜨자 고양이는 돌아온다. 달과 고양이의 두 행위는 공교롭게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공교로울 것도 없는 사건이다. 진실은 이렇다. 달은 하늘의 고양이, 고양이는 변신한 집 안의 달이다. 둘 사이에 아무런 피의 연대는 없지만 둘은 이복형제처럼 엮인다. 달은 수시로 모양이 바뀐다. 하현 때 야위고 보름 때 둥글어진다. 야생의 부름에 고양이는 자주 집을 나간다. 무단가출했다가 어느 날 불쑥 돌아온다. 고양이는 여자의 숨은 내면이고, 달은 여자의 드러난 외면이다. 그 둘은 변심하기 쉬운 여자의 표상이다.

   달은 차고 일그러지고, 파도는 오고 감을 되풀이한다. 여자는 그런 달이고 파도다. 여자는 항상 영혼의 가장 위험한 상태다. 여자들의 내면에는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들어 있다. 남자들은 한 생애 동안 얼마나 많은 고양이들을 만나는 걸까. 고양이들은 “어둠과 추위로부터 쫓겨온 무리”고, 이 고양이는 깜찍하게 “한때는 방 안을 뒹굴던 털실 몽상가와 잘도 놀았답니다 / 현기증 나는 속도의 바퀴와 아찔한 연애도 해봤구요”(<고양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파멸을 감수하면서 이 변심 잘하는 고양이에게 제 모든 것을 걸고 연애에 투신한다. 고양이는 바람의 딸이다. 늘 모든 것은 갑자기 사라진다. “앗,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방 안 모서리, 손거울, 집 열쇠, 어항의 물고기가 사라지고 없어요 / 다그쳐 물어도 종알종알 털만 핥을 뿐 모른다 도리질만 하네요”(<고양이>) 다그쳐 물어도 모른다 모른다 도리질만 하는 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수컷들의 가혹한 운명이다. 이 가혹한 운명에 들린 수컷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니체는 이렇게 적는다. “추억이 고름이 되어 아침마다 침대를 더럽힐 때 그는 지나간 삶을 원망하게 된다.” 송찬호 시인은 이렇게 적는다. “달이 해를 가리고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 / 나는 늑대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복면을 하고 / 은행원들을 개처럼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 불이야, 소방차가 불난 꽃집으로 달려가게 하고 / 유명한 불륜 남녀를 맨홀 속으로 내려가 사라지게 하고 / 앵무새가 되어 엽기적 살인 사건의 배후로 등장하고 싶었다”(<일식>). 그러나 그러질 못한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도시는 다시 환해졌다 / 웅덩이의 물이 바지에 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 나는 오랫동안 다른 이름으로 살기를 원했다”(<일식>). 겨우 웅덩이 물이 바지에 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걷고, 오랫동안 다른 이름으로 살기를 원할 따름이다. 그런 남자들에게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꼴로 살아간다는 것은 개라도 비웃을 일이다!”

   달이 뜨고 고양이가 돌아온 이때는 궁기가 사무치는 저녁이다.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굴던 고양이는 이제 다정하다. 집 나갔던 여자가 돌아온 것일까? “손을 핥고 / 연신 등을 부벼”댄다. 고양이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를 애무한다. 애무는 정사의 전 단계다. 그러나 ‘나’는 식물성이므로 고양이의 적극적 구애 행동에도 발기가 일어나지 않는다. 발기가 없는 육체에게 섹스의 달콤하고 넘치는 쾌락도 없다. 이 저녁은 금욕주의로 일관한다. 이 다정한 고양이에게 ‘나’는 줄 게 없다. 그래서 겨우 할 수 있는 게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 맑게 씻은 / 접시 하나 꺼”내는 일이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라고 말하는 이 저녁은 잔인한 저녁이다. 가난은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한다. 여자들은 다시 돌아오지만 이미 헐벗고 가난한 남자는 여자에게 줄 것이 남아 있지 않다. 서로의 마음이 엇갈린다. 엇갈리는 두 마음 사이로 차고 축축한 달빛이 흐른다. 여자는 다이아몬드를 원했으나, ‘나’는 숯을 주었다. 니체는 숯과 다이아몬드는 ‘동족’인데, 이토록 다른 ‘동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도 약간은 쓰다.”(니체) 이 하염없는 사랑의 시라니 ! 가난한 연인은 배고픈 제 애인에게 빈 접시를 주고 이것이나 핥아 보렴, 하는 수밖에 없다. 송찬호는 여자/고양이를 발명한다. 그 여자/고양이와의 사랑이 하염없음을 노래한다. 이 지구 위에서 사랑은 그 하염없음 때문에 멸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돌로 찧은 여뀌즙 사랑은 여전히 물고기 눈을 찌르고 갈라진 시멘트 틈에서라도 아이들은 분수처럼 솟고 그대의 어미들은 천 일의 밤을 팔아 아침 한때를 맞이하리니”(<사과>). 이 세상에 사랑이란 사랑은 다 말라 비틀어져서, 더는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을까, 그리고 새 아침이 영원히 오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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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찬호(1959~ )는 충청북도 보은 사람이다. 고향인 보은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는 대구에서 마쳤다. 동해안에서 초병으로 군대 생활을 하며 그이는 심심할 때마다 김춘수 시집을 꺼내 읽으며 시인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대학을 마친 뒤 아주 짧은 기간동안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있지만 몸에 맞지 않았다. 직장을 1년 만에 그만두고 그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1992년이다. 그 뒤로 고향에 붙박이로 눌러 살고 있지만 한일한 은둔자가 아니라 수족을 바쁘게 놀리는 농사꾼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이는 겉으로는 부드러우나 속으로는 강한 사람이다. 시인의 아내는 중학교 교사다. 그이는 아내의 소망을 이뤄 주기 위해 고향에 한옥을 지었다. 아무 경험 없이 인부들과 함께 한옥을 짓는 일은 아주 고단한 일이었다. 얼마 전 대전역 앞 한 소줏집에서 그이와 소주잔을 기울였는데, 한옥이 4년 반 만에 완공되었다고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쁘냐고 물었더니, 기쁠 것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이는 어떤 시에서 “그 소용돌이치는 여울 앞에서 나는 백 년 잉어를 기다리고 있네”(<임방울>)라고 쓴다. 나는 그이가 기다리는 “백 년 잉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이가 얼마 전에 집필을 끝냈다는 첫 장편소설이 금빛 비늘이 찬란한 잉어일까. 송찬호가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이라는 새 시집을 펴냈다.

 

 

   _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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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수산 | 작성시간 13.04.18 송찬호, 시를 써보겠다는 사람들에겐 너무 아득한 거리. 가도 가도 아득하기만한 거리. 그 상상력을 흉내내는 연습 조차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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