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해설 / 권순진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시집『겨울-나무로 부터 봄-나무에로』(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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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개인의 현실적 고통과 시대의 아픔이 공존했던 80년대 초에 발표한 시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새운 자에게만 온다.’고 주장했으나 흥청망청 밤을 낭비한 자에게도 새벽은 왔다. 뒷날 그는 자청한 그때의 고난을 ‘그 누구를 위한 헌신’도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고문을 견디다 못해 친구를 밀고해야 했던 상황이었기에 시대의 모순과 절망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했던 그였다. 그의 <뼈아픈 후회>에서는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이라고 했다. 그런 사회가 자신을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작품 대개가 세상에 대한 야유와 풍자, 증오와 환멸, 그리고 냉소로 가득 채워졌다. 이 시는 그나마 나무와 계절이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시련을 견디고 꽃을 피우는 존재의 생명력을 긍정의 시선으로 그렸다. 스스로의 주체적 의지와 끈기로 혹독한 ‘겨울’을 극복하고 ‘봄’을 수확하는 인간의 힘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후 그는 대립과 불화와 증오만 갖고는 아무런 문제해결을 할 수 없음을 깨달아서인지 점차 모순관계에 있던 만물의 조화와 화해의 길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가 광주로 낙향하여 90년에 발표한 <게눈 속의 연꽃>은 불교적 화엄의 경지로까지 나아간다. 다시 침묵만이 미덕이라며 칩거하다가 98년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펴내는데 예상 밖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과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문화예술계의 여러 자리를 넘나들며 활약을 보였고 한때 진보진영에서는 그를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눈독을 들이기도 했는데 적극 고사한 일도 있다. 지금은 ‘역임’의 이력만 남긴 채 갓도 벗겨지고 끈도 떨어져 편안한 그냥 시인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과문한 탓인지 그의 최근 작품을 보지 못했는데 기다려진다. 어쩌면 그는 또다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면서 자신의 상처를 만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봄, 부디 아프지 말고 ‘마침내, 끝끝내’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길 바란다.
권순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