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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윤의섭의「부러짐에 대하여」감상 / 진란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4.06.07|조회수323 목록 댓글 0

윤의섭의「부러짐에 대하여」감상 / 진란

 

 

부러짐에 대하여

 

   윤의섭

 

 

죽은 나무는 저항 없이 부러진다

물기가 사라질수록 견고해지고 가벼워지고

아마 죽음이란 초경량을 향한 꼿꼿한 질주일 것이다

무생물의 절단 이후는 대개 극단적이다

잘려나간 컵 손잡이는 웬만하면 혼자 버려지지 않는다

강철보다 무른 쇠가 오래 버티었다면 순전히 운 때문이며

용접 그 최후의 방편은 가장 강제적인 재생 쉽게 주어지지 않는 안락사

수평선 너머 부러진 바다와 구름 사이 조각난 낮달

나는 네게서 얼마나 멀리 부러져 나온 기억일까

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지만 대신 바람이 갈라지고 마는 걸

편린의 날들은 사막으로 치닫는 중이다

이쯤 되면 버려졌다거나 불구가 되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스스로 부러질 때가 있었던 것이고

서로의 단면은 상처이기 전에 폐쇄된 통로일 뿐이라고

둘로 나뉘었으므로 생과 사의 길을 각자 나누어 가졌다고

조금 더 고독해지고 조금 더 지독해진 거라고

부러지고 부러져

더는 부러질 일 없을 때까지 부러

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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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뼈의 진액도 빠져나가서 마른 스펀지처럼 버석거리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많아지면 저절로 골다공증도 깊어져서 위태하게 되는 것이다. 꼿꼿하게 지탱하고 버텨온 무릎이 아프게 꺾이고, 조금 헛디디면 그만 옴팍 뼈가 금이 가고 바스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남다른 열성으로 부지런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어느 순간 뜻하지 않은 찰과상으로 삶이 꺾여 지는 때가 있다. 나무나 나뭇가지들이 폭풍이나 폭설에 뚝 부러지는 것은 스스로 부러지는 것보다는 외부의 영향으로 부러지는 것이다. 정호승시인은 제목이 같은 '부러짐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것은 새들이 나뭇가지를 물고 가서 그들의 집을 짓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뭇가지는 스스로 부러지는 법은 대개 없다. 외부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부러지는 것이다. 부러짐의 순간은 매우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부러졌던 그 시간들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더 부러져서도 견딜 수 있도록 내성을 길러 줄 것이다. 사랑도 애절하고 절절하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니라면 죽을 것 같고 살아야 할 이유조차도 모를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의연히 삶을 지탱하며 이런 지탱이야 말로 부러짐으로써 생긴 좌절과 생채기들의 전리품이 아니겠는가? 죽은 나무는 죽은 것 같으나 땅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거나 또다른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풍란을 얹히는 받침으로, 때로는 실내 장식품으로 재구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군가 예술가의 손을 만난 것은 순전히 운이고 즐거운 역전이다. 그러므로 부러진 나무여, 스스로 낙망하지 말며 스스로 슬퍼하지 말자. 세상에 형체로 남아 있어서 의미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어느 날 네게서 부러져 나와 무용의 날들이 생긴다 해도 좌절하지 말자. 그런 과정이야 말로 우리의 인생을 드립커피처럼 풍성하고 깊은 맛을 내게 하는 조연임을! 나아가 인생의 향기와 추억을 조련하던 주연이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라고.

   내 상처와 부러짐의 기억들이 누군가에게는 포근하고 따숩게 머물 수 있는 둥지가 될 수 있었음을!

 

  진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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