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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이영광의「구멍가게」감상 / 장석주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4.08.14|조회수344 목록 댓글 0

이영광의「구멍가게」감상 / 장석주

 

 

구멍가게

  —중독자를 위로함

 

   이영광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빈 곳,

토해도 나오지 않는 빈 것들과

끝장을 봐버리자고

간밤엔 구멍이 되어 사방으로 끓어 넘쳤다

 

이 동네 아침엔 아직 막히지 않은 샘이 하나 있지

목말라 지폐 몇 장 묻은 손을 집어넣으면

생수와 생약과 반짝이는 동전들을 게워주지

차고 시원한 구명들을 팔지

작은 나뭇잎을 식혀주는 큰 나뭇잎처럼

 

저녁이 오면, 피가 마른다

구멍가게는 또 몸을 덜덜 떠는 기쁨들에게 병을,

끝장을 팔려고 불을 켠다

작은 나무들을 말려 죽이는 큰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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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 1965년 경북 의성 출생.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아픈 천국』『나무는 간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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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동네에는 중독자들이 있고, 또 구멍가게도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죠. 제 안에 ‘구멍’들을 가진 사람들이 간밤에 구멍이 되어 사방으로 끓어 넘치다가 아침녘에 구멍가게로 들이닥치죠. 구멍가게는 이미 볼 장 다 본 사람들이 하루를 연명할 수 있도록 “생수와 생약”을 게워주고, “차고 시원한 구멍들”을 파니까요. 구멍가게는 끝장을 보지 못하고 다만 끓어 넘치기만 하는 중독자들의 신전(神殿)이예요. 서른 몇 해 전 부모님들이 원서동 골목에서 작은 동네 슈퍼를 하며 채송화 씨방 같은 가난한 살림을 꾸리던 시절이 있었지요.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그 생업의 터전! 그 구멍가게를 작파한 뒤에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꽤 오래 고단한 삶을 꾸리느라 고생하셨죠. 저녁이 오면 피가 마른다는 느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아요. 피가 마르는 그 시각, 사방에 어둠이 내리면 세상의 모든 구멍가게들은 “몸을 덜덜 떠는 기쁨들”에게 병을 팔고 끝장을 팔려고, 불을 켭니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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