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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에세이 사물 사전] 알약 - 하재연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5.01.09|조회수436 목록 댓글 0

[에세이 사물 사전] 알약 - 하재연

:2015.01.07 09:57

 
[에세이 사물 사전] 알약 ⓒ이현경



이것은 미래의 것이어야 한다. 내게는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 당겨오거나 삭제해야 하는 것. 정지를 실현하는 것.

두려웠다. 목구멍을 벌려 그것을 삼킨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링거를 통해 점점이 떨어지는 링거액이나 가루 형태 혹은 캡슐과 같은 다른 약들이라면, 본인이 복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다른 방식의 투약, 투여, 혹은 삽입 등이 가능할지 모른다. 주삿바늘을, 수용액을, 기구를 사용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자각시키는 사물들을, 내 목구멍을 크게 벌리고 적당한 물과 함께 내 안으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그 행위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얼굴이 붉어진다는 사실을 자각한 아이가 자신의 변화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더욱 얼굴이 붉어지게 되고, 처음 그리되게 만든 동기보다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다는 사실 그 자체를 더 수치스러워하듯이. 그것은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상태로 나를 공포스럽게 하곤 했다. 희고 둥그런 그것은 단번에 삼키지 못하고 있으면 쓴맛이 점점 더 입안에서 퍼져나가 힘들었지만, 색깔이 입혀진 것들의 미끈거림 또한 불쾌한 촉감과 맛이었다. 조악하게도 인공적인 그 색깔들이 내 몸속에서 체액과 섞일 거라는 상상은 야릇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하나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대개 고통이라는 감각을. 우리가 정상적으로 일상의 일들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처리의 과정에서 어떤 하나의 감각이 유별나게 권리 주장을 하지 않으며 대체로 고른 수준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예기된 평정의 상태가 깨어지고 처리될 수 없는 하나의 감각이 불쑥 솟아오르는 순간 신체는 잘 조작된 기관이기보다는 언제든 돌발 상태가 가능한, 스스로에게 이질적인 생물체와도 같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의 포악성에 쩔쩔매다가, 오래 걸려야 할 반추와 평형의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나는 그 시간에 도달하는 거리까지의 길목을 깜깜하게 또는 새하얗게 삭제하기로 한다. 네 시간 또는 여덟 시간가량의 침묵. 침묵은 그 이상으로 확장 가능하다.

그것은 어떤 감각을 착오시킨다. 나의 교감신경이, 그것이 일으키는 기전에 의해 자극된다는 것은, 기분이 좋거나 나쁘다, 마음이 우울하고 무기력하다는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상태보다 명백하게 실재적이다. 그러므로 이 착오가 지속적일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동일한 결과를 보장한다면, 누구라도 착오된 실재를 택할 것이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럴 것인데, 신체와 외부, 작용과 반작용의 과정이 가르는 이 무의미한 내/외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이토록 명백한 경우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물체인 나는, 이 무생물의 간섭으로 가능한 어떤 상태를 상상하게 된다. 호르몬의 과다 또는 부족과 통증과 염증과 불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살아 있음의 증상과 같은 것들이 소거된 상태란 것. 그런 신체란 것에 대하여.

근 미래에 한한 것일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지니는 신체에 대한 증진성이라는 것이 영속적이지 않다면, 결국 그 효과란 나의 감각과 정신을 예기치 못한 상태에 놓아두는 것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나의 신체를 고양시키거나 마비시키는 행위를 통하여. 그렇게 해서 감각 또는 정신은 지극하게도 신체적 영역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양 영역의 인과성과 밀접함을 분리시킬 것이다. 분리 사이의 심연이 깊어질수록 생물체로서 내가 느끼는 고통은 감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행복할 것인가? 나는 심연을 원하는가?

지구에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주어진 고통과 소모와 망각이라는 무의미의 목구멍을 벌리고서 그것을 성공적으로 털어 넣을 수 있다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또한 결국에는 나와 상관없는 영역으로 내게서 멀어질 것이다.


하재연(시인)


하재연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라디오 데이즈》,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이 있다.

             _ 한겨레 문학웹진 <한판>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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