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의 「세한도」해설 / 권순진
세한도
백무산
왜 그렸을까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앞서 그랬을까
목수가 보면 웃을 그림을 그렸을까
풍수가 보면 혀를 찰 집을 그렸을까
늙은 소나무 뿌리 위에 집을 짓다니
숲 그늘 습한 땅에 터를 잡다니
방위도 살피지 않고 지형도 살피지 않고
주위 땅이 더 높아 비만 오면 물이 콸콸
집 안으로 쏟아질 참인데
그는 아마도 유배지의 겨울 솔숲을
다 그려놓고는 못내 집이 그리워
집 한 채를 끼워넣었던 것일까
그런데 저 집은 살림집이 아니지 않은가
이상하게 크고 긴 건물과 낯선 문
궁궐일까, 그가 그리워하던 것은 옛 영화였을까
임금이었을까, 그것이 아니면 왜
저리 기막힌 소나무 아래
저리 한심한 집을 생각했을까
그는 두 가지 욕망에 괴로워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왜 저런 욕망이 깊이 깔린
그림을 그렸을까
—시집『초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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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인들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소재로 시를 썼다. 문사철시서화에서 ‘해동제일’이라 불렸던 추사의 작품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세한도’는 제주도 유배시절 귀한 책을 보내주고 자신을 찾아준 제자에게 고마움의 정표로 그려준 그림이다. 이 그림은 실경산수화가 아닌 완당의 마음 속 이미지를 나타낸 그림인지라 그 안에 함축되어있는 뜻을 정확히 짚어내기란 쉽지 않다. 아버지가 목수였던 백무산 시인으로서는 그 가운데 소나무 옆에 덩그러니 그려진 생뚱맞고 초라한 집 한 채가 못내 궁금했던 것이다. 왜 그렸을까?
소나무 뿌리 위에 집을 짓고, 지형이나 방위도 살피지 않아 비만 오면 물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곳에 지어진 집이라니. 목수의 안목으로는 비웃을 집이요, 풍수의 눈으로 보면 혀를 찰 노릇의 집이 아닐 수 없다. 건축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집이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지붕부터 그릴 때 백무산 시인은 주춧돌부터 먼저 그렸다. 목수인 아버지로부터 집은 밑에서부터 짓는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얼토당토않은 집 한 채가 후세 사람들에겐 사유의 공간을 확장 시켜준 셈인데, 그 방면에 눈썰미가 있는 시인으로서는 이 집이 잠재된 욕망의 표출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크고 긴 건물과 낯선 문’에 드리워진 추사의 지향은 무엇일까. 그 건물이 살림집이 아닌 궁궐이라면 시인이 볼 때 ‘한심한’ 꿈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유배지의 겨울숲속에서 그가 그리워했던 것이 과연 ‘옛 영화’나 ‘임금’이었을까. 심연 속에 가라앉혀둔 어설픈 욕망의 찌꺼기로 보기에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그림 옆에 있는 발문에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였다. 곤궁해도 지조를 잃지 않는 선비의 삶을 비유하는 세한(歲寒)이란 말을 빌려 그가 쓰고 그렸던 것이다.
‘권세나 이권 때문에 어울리게 된 사람들은 권세나 이권이 떨어지면 만나지 않게 된다’는 사마천의 말도 인용해 두었다. 그는 비록 세속적인 기득권을 모두 잃은 처지였지만 시류에 초연한 송백 같은 인물을 꿈꾸었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 집은 궁궐이로되 턱이 덜덜 떨리는 모진 추위에도 까딱없이 굳고 곧은 기품이 감도는 조정을 의미한 것은 아닐까. 원칙과 약속을 지키되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소신을 고집해서는 아니 될 것이며, 백성을 위하되 권세나 이권으로 똘똘 뭉친 자들에 의해 통치되어서도 안 된다는 바람과 더불어.
권순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