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혁의 「리시안셔스」해설 / 정겸
리시안셔스
성동혁
눈을 기다리고 있다
서랍을 열고
정말
눈을 기다리고 있다
내게도 미래가 주어진 것이라면
그건 온전히 눈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왜 내가 잠든 후에 잠드는가
눈은 왜 내가 잠들어야 내리는 걸까
서랍을 안고 자면
여름에 접어 두었던 옷을 펴면
증오를 버리거나
부엌에 들어가 마른 싱크대에 물을 틀면
눈은 내게도 온전히 쌓일 수 있는 기체인가
당신은 내게도 머물 수 있는 기체인가
성에가 낀 유리창으로 향하는, 나의 침대 맡엔
내가 아주 희박해지면
내가 아주 희미해지면
누가 앉아 있을까
마지막 애인에rps 미안한 일이 많았다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내가 나중에 아주 희박해진다면
내가 나중에 아주 희미해진다면
화병에 단 한 번 꽃을 꽂아 둘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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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안셔스의 또 다른 이름은 ‘꽃도라지’이다. 그러나 화훼농가나 상인, 일반인에게는 ‘리시안셔스, 혹은 리시안’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꽃도라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혹자들은 도라지 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식물이다. 재배되는 리시안셔스는 용담과 유스토마속에 속하며, 도라지는 초롱꽃과 도라지속에 속하기 때문이다.
리시안셔스는 사방화 등 꽃꽂이를 할 때 모든 꽃과 함께 조화롭게 보이며 제 몸을 희생하며 다른 꽃들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꽃꽂이는 물론 꽃다발, 꽃바구니 등을 만들 때 많이 이용되고 있다.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이며 ‘우아함, 아름다움’ 그리고 ‘상냥함’과 ‘모성애, 행복’ 등으로 웨딩부케나 연인에게 선물하는 꽃과 사랑을 고백할 때 많이 애용되고 있다.
성동혁 시인의 시 「리시안셔스」에는 반복법을 유난히 많이 사용하여 어떤 의미를 강조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화자의 독백성 의문법이 자주 등장하고 있어 부정적 세계를 긍정적 세계로 반전시키려는 노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 화자는 이 시를 통하여 독자로 하여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일까? 분명 이 시 속에는 화자만이 간직하고 싶은 삶과 미래,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은유적 의미를 분명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눈, 꽃, 서랍, 성에 낀 유리창’ 등을 통하여 삶에 대한 불확실성, 암울한 현실, 그리고 복잡함과 비밀성, 그러면서도 꽃을 등장시켜 미래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어떤 병상에서의 투병생활과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긴박한 상황에서 화자를 구출해준 모든 이에게 영원히 변치 않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화자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재의 환경 즉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계선에서 미래의 희망적 메시지인 눈을 기다리고 있다. 그 눈을 꼭 보면서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희망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삶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시기에 ‘당신은 분명 살 수 있어’,라는 그 말을 꼭 듣고 싶지만 확언해 주는 이가 없어 답답하였던 것이다. 화자는 분명 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복잡하고 비밀이 담긴 서랍을 열어 미래가 보이는 그리고 희망이 보이는 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남은 한 가지는 오직 희망의 전도사인 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확실히 살아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집도하는 의사에게 직접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성에가 낀 유리창으로 향하는, 나의 침대 맡엔/ 내가 아주 희박해지면/ 내가 아주 희미해지면 누가 앉아 있을까/ 마지막 애인에겐 미안한 일이 많았다/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화자는 지금 죽음의 늪에서 탈출했다. 그는 삶의 불씨를 지펴준 간병인과 화자를 도와준 모두에게 영원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화자는 지금 행복의 상징인 우아하고 아름다운 리시안셔스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