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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에세이 사물 사전] 꽃 - 최문자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5.02.27|조회수361 목록 댓글 0

: 2015.02.25 09:46

  [에세이 사물 사전] 꽃 - 최문자

 

[에세이 사물 사전] 꽃 ⓒ이현경



새벽 1시, 한밤중인데도 중환자실은 대낮처럼 환했다. 오십여 개의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이 제각기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대거나 뭔가를 열망하면서 당나귀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낯설고 두려웠다. 나는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자꾸만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사람들의 언어는 단순하고 소박했다. 대개가 알아들을 수 없는 텅 빈 말들이었지만 거의가 살려달라는 또는 통증을 멈춰달라는 내용으로 일괄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내 오른쪽 병상의 여자 환자는 예외였다. 췌장암 말기로 수술했으나 거의 가망이 없다는 그 여자는 다른 환자들과 달리 고통을 호소하거나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꽃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다.

 

“환자분, 눈 떠보세요. 눈 떠보세요.”

 

간호사가 절박하게 깨우는 소리에도 옆 병상의 여자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저 아까부터

 

“아카시아 꽃, 아카시아 꽃, 아카시아― 꼬오옷.”

 

간헐적으로 꽃 이름을 외치다가 조용해지고 그러다가 다시 꽃을 불러댔다. 늘 끝 자인 ‘꽃’ 자는 제대로 발음되지 못하고 뭉개졌다.

 

옆구리에 구멍 세 개를 뚫고 왼쪽 폐 30퍼센트를 잘라내는 수술을 한 나도 한 시간 전쯤 눈을 떠 몽롱한 상태였다. 옆구리를 칼로 찌르는 듯하고 가슴 부위가 저렸지만 나는 옆의 여자가 불러내는 ‘아카시아 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알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그 환자가 아카시아 꽃을 불러대는 까닭을 물어보았다.

 

“지금 남 걱정할 상황이세요? 환자분도 아까 깨어날 때 누구 이름인지 몰라도 이름 막 불러댔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여기선 다들 그래요.”

 

내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불러댔다는 이름, 나에게 호명당한 그는 누구였을까? 절박한 순간에 꼭 불러내고 싶은 그 누구, 나에게도 그럴 만한 사람이 정말 있었던가? 간호사에게 혹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나도 모르는 그 이름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듯 입 안이 얼얼했다.

 

중환자실에 누워 삶과 죽음 사이를 떠다닐 때 나오는 중얼거림과 부르짖음은 아무도 해석해낼 수 없다. 50대 초반인 여자가 죽음의 순간에 꽃 이름을 통해 하려던 말이나 두 손 두 발을 묶인 채 무엇인가 꼭 전하고 싶어서 온몸을 뒤틀던 80대 노인이 품은 말이나 모두 상징계의 난해한 영역에 있다. 혹시 삶의 고통스러운 모퉁이에 서서 뭔가 말했어야 하는 순간, 가루로 흩어지던 부서진 과거의 문장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이 여러 번 뒤집혀, 통로도 궤적도 없는 꽉 찬 언어. 아마도 그 말은 이별할 수 없는 대상을 향해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연민이나 고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전의 일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올케가 3개월 만에 깨어났다. 온 가족이 기뻐하며 지켜보고 있을 때 올케는 눈물까지 흘리며 애절하게 ‘종식이 아버지’를 여러 번 불렀다. 우리 주변에 ‘종식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없었던 터라 황당해하며 오빠의 눈치를 살핀 적이 있다. 올케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 우리는 ‘종식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올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종식이 아버지’는 올케의 그 무엇이었을까?

 

‘종식이 아버지’는 단순히 ‘종식이 아버지’만이 아니고 ‘아카시아 꽃’은 단순히 ‘아카시아 꽃’만이 아닐 것이다. 부르는 대상이 꽃이거나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무의식이 그려나간 궤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깊은 곳에서 서로 붙잡고 뻗어나가며 위로 뚫고 오르는 그 무엇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무의식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의식은 한없이 거대하고 황당한 세계이며,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 곳에서 의도치 않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나를 알기 위해선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응시하며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모든 행위는 태초에 원인이 있었다고 하며, 말에 있어서 아무리 말실수라 할지라도 그것의 발화는 단순하지 않고 무의식에서 발생한 구조화된 언어라고 했다.

 

거목이 거목으로 설 수 있는 힘은 그 뿌리에 있다. 또 무한하게 뿌리의 뻗침을 수용하는 대지에 있다. 뿌리는 땅속에 수동적으로 묻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무섭게 파고드는 존재다. 누구나 지상의 것이 무너지려 할 때 뿌리의 현존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뿌리를 부르게 된다.

 

50대 여인의 영혼을 툭 치고 지나간 꽃, 아카시아 꽃은 그 어떤 것의 부표일까? 태초에 여자의 뿌리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환자분, 눈 떠보세요. 눈 떠보세요. 숨 쉬세요.”

 

“아카시아― 꼬오옷.”

 

‘꽃’ 자 발음을 끝까지 내지 못하고 힘없이 병상에서 미끄러지는 여자를 끌어 올리며 간호사는 응급이 터졌다고 소리를 질렀다. 여러 명의 황급하고 어지러운 발소리, 응급 처치하는 소리가 한참 동안 들렸다. 조금 있다가 바퀴 구르는 소리를 내며 옆 병상이 이동했다. 중환자실은 두 개의 출구가 있는데, 저쪽 문으로 나가면 영안실이고 이쪽 문으로 나가면 회복실이라고 했다. 여자의 병상이 저쪽 문을 향해 나갈 때 여기저기서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자를 밀고 나가는 병상을 따라 여러 겹의 줄이 엉키는 밤, 가시가 수없이 박힌 한 그루의 아카시아 꽃을 생각하며 나는 통증을 핑계로 소리 내어 울었다.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아카시아 꽃 축제를 만난 적이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동재 아카시아 밀원지를 산책하게 된 것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행운이었다. 신동재 일원 5킬로미터 구간은 아카시아 꽃으로 뒤덮여 온 산이 눈밭으로 보였다. 그 산을 오래 걸었다. 그날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도 옷에서 자꾸 아카시아 꽃 냄새가 났다.

 

그 여자가 죽기 전까지 불러댔던 꽃도 아카시아 꽃이다. 하얀 순백의 꽃(분홍색도 있다고 한다)과 진한 향기, 아카시아 꽃의 꽃말은 ‘비밀 사랑’이다. 그 여자의 아카시아 꽃은 비밀을 품은 거대한 빙산 속 어느 무엇의 부표임에 틀림없다. 몸이 웬만큼 회복되면 올봄에 신동재로 가서 그 산을 걸을까 한다.



최문자(시인)

최문자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 《울음소리 작아지다》,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나무고아원》, 《사과 사이사이 새》, 시선집 《닿고 싶은 곳》 등이 있다. 한성기문학상, 박두진문학상, 한국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_ 한겨레 문학웹진 <한판> 201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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