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비평/에세이

홍일표의 「나비족」감상 / 오민석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6.02.08|조회수416 목록 댓글 0

홍일표의 「나비족」감상 / 오민석

 

 

나비족

 

   홍일표(1958~ )

 

 

해변에서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 나비를 주웠다

 

지구 밖 어느 행성에서 날아온 쓸쓸한 연애의 화석인지

나비는 날개를 접고 물결무늬로 숨 쉬고 있었다

수 세기를 거쳐 진화한 한 잎의 사랑이거나 결별인 것

 

공중을 날아다녀본 기억을 잊은 듯

나비는 모래 위를 굴러다니고 바닷물에 온몸을 적시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것이 나비인 줄도 모르고 하나둘 주머니에 넣는다

 

이렇게 무거운 나비도 있나요?

바람이 놓쳐버린 저음의 멜로디

이미 허공을 다 읽고 내려온 어느 외로운 영혼의 밀지인지도 모른다

 

공중을 버리고 내려오는 동안 한없이 무거워진 생각

티스푼 같은 나비의 두 날개를 펴본다 날개가 전부인 고독의 구조가 단단하다

찢어지지도 접히지도 않는

 

바닷속을 날아다니던 나비

 

 

       —시집『밀서』(2015)

  ..........................................................................................................................................................................................

 

   한때 공중을 날아다니던 나비가 바닷물 속에서 “물결무늬로 숨 쉬고” 있다. 나비는 “수 세기를 거쳐” 진화의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의 “쓸쓸한 연애” “한 잎의 사랑” 혹은 “결별”은 화석 속에 포획돼 존재의 긴 흔적을 보여준다. 존재는 살아서도 끝없는 변용(metamorphosis)의 길 위에 있지만, 죽어서 더 자유로운 변용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의 나비가 돌처럼 무거워져 바닷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생몰연대”를 넘어서는 이런 흔적이 지상에 얼마나 많은가.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