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의 「재춘이 엄마」감상 / 문정희
재춘이 엄마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 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 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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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맛이 간 비름나물 같은 청산옥 여자가 염천(炎天)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볼 줄 아는 시인! 한국시에 드물게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시인이다. 음률을 속으로 삼키며 산문시 형태로 이끌어 가다가 끝 행에서 목울대를 건드린다. 그래 재춘아. 공부 잘해라!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재춘이, 갑수, 병섭이, 상규, 병호는 말 그대로 미래와 희망의 동의어가 아니고 무엇이랴.
새해 새 달력 앞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어머니들의 기왓장에 딸의 이름은 없었다는 것! 이 땅의 차별의 한가운데에는 어쩌면 어머니라는 전통 관습의 이름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모성(母性)의 신성성과 그 정체에 대해 새로이 질문을 가한 이론서들이 이 시를 주목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문정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