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술과 나무를 좋아하는 남자가 가장으로 산다는 건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박철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글 :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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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 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꾹쑥꾹 쑥꾹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 속 깊은 곳에서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를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꽃이 피워내는 향기 때문이다. 신 살구를 깨물었을 때처럼 사는 일이 시고 떫더라도 삶은 귀하고 숭고하다. 시인은 범속한 삶의 구체성 안에서 그 귀함과 숭고함을 건져 올린다. 서울 근교의 럭키슈퍼가 있고, 영진설비가 있고, 작은 화원이 있는 고만고만한 소도시쯤 되겠다. 이 시의 화자는 소시민 가장이다. 그이를 야무진 살림 솜씨의 아내와 고운 눈썹을 가진 아이를 식구로 거느린 갑이라고 해두자. “머슴살이하듯이 / 바친 청춘은 / 다 무엇인가”(신동문, 〈내 노동으로〉)라는 시구처럼 갑은 머슴살이하듯 제 뜻은 뒷전에 밀쳐두고 세월에 휘둘리며 살다 보니 청춘은 지나가고 나이는 자꾸 먹는데 벌어놓은 것도 없고 번듯한 직장이나 직업은 없으니 벌이도 시원치 않다. 갑은 막막한 제 처지와 속내를 직접 토로하지 않고 슬쩍 빗대어 드러낸다. 그 사정은 이렇다. 갑은 막힌 하수도를 뚫은 노임 4만 원을 영진설비 아저씨에게 갖다 주라는 아내의 명을 받고 집을 나선다. 가다가 비를 만났다. 갑은 럭키슈퍼 앞에서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두 번째로 길을 나섰다. 화원 앞을 지나다가 향에 취해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영진설비에 4만 원 갖다 주는 하찮은 일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갑을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 갑의 무능을 탓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갑이 무능하다 해도 그이가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로서 꿋꿋하게 이 세상을 견디고 살아내는 일은 심오한 일이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삶은 전대미문의 존재론적 사건”(베르트랑 베르줄리,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수도가 막히고, 사람을 불러 막힌 하수도를 뚫는다. 뒤늦게 그 노임을 갖다 주는 일, 맥주 몇 병의 유혹에 지고, ‘자스민’의 향에 취해 노임으로 지불할 4만 원을 써버리는 일 따위는 다 하찮고 범속한 삶에 속한다. 갑은 이 범속한 삶을 구체적 실존 안에서 몸으로 찾아내고 그 실감을 말한다. 이 삶은 범속 할 수는 있겠지만 공허하지는 않다. 삶의 아기자기한 행복들, 불편과 결핍을 넘어서려는 분투, 악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의 덕성은 시의 문면 밖으로 비켜나 있지만 그것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삶의 실팍한 내역이다. 바로 그것들 때문에 조화와 찢김 사이에 걸쳐 있는 이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살다 보면 천둥과 번개가 치고, 서리와 우박이 내리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신경림, 〈목계장터〉)라는 시구의 지혜를 빌릴 필요가 있다. 살다 보면 무언가 막히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막혀서 생긴 불편과 심란함은 막힌 것을 기어코 뚫어야만 해소가 된다.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어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향기 잃은 나무는 문 밖에 서 있다. 쑥꾹새, 비, 향기 잃은 나무는 갑이다. 갑의 살림은 팍팍하나 거기에 아등바등 매달려 있지 않고, 그 가난을 관조하고 즐기는 한가로움과 존재의 충일이 느껴진다. 악은 진부한 외양을 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가난은 몸과 마음을 옥죄고 짓누르지만, 우리는 쉽게 악의 구렁 속으로 굴러떨어지지 않는다. 필경 가난이 여린 마음을 뻣세고 질기게 만들지는 못한다.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눈썹이 고운 아이들은 늠름하게 자라고, 살림솜씨가 매운 아내는 가난이 만든 곤경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까닭이다. 가족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은 닻이 되어서 이 세계 안에 나의 실존을 안정되게 고정시킨다.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아마도 갑은 영진설비에 밀린 노임을 갖다 주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그건 사람과 술과 나무를 좋아하는 갑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진부한 악에 기어코 빠지지 않은 갑과 을은 저마다 현실의 토대에 뿌리를 내린 귀한 사람꽃이다. 이 꽃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향기를 풀어낸다. 궁지에 몰리더라도 그 어려움을 꿋꿋하게 감내하며 결코 야수로 변하지 않는 이 꽃들 사이에 사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박철(1960 ~ )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이는 김포에서 오래 살았다. 내 기억에는 박철이 김포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다. 단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7년에 <창작과비평>에 〈김포〉 외 시편들을 발표하면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험준한 사랑》 등을 펴냈다. 시인과 얼굴을 직접 대면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시인은 아주 선량한 미소를 가졌다. 필경 그 미소는 시인의 내면에 깃든 평화와 다사로운 인격의 반향일 터다. 바람 편으로 시인이 호주에 이민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몸이 안 좋다는 얘기도 들렸다. 술자리에서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신산한 삶에 휘둘리면서도 그이는 시 쓰기를 쉬지 않는다. 그래서 잊을 만하면 속이 꽉 찬 시집 한 권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방식으로 그이에 대한 우리의 미더움에 넉넉하게 응답한다.
사진 :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