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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현실을 직시하는 모더니즘적 시선과 변주 / 박수빈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7.06.17|조회수474 목록 댓글 0

현실을 직시하는 모더니즘적 시선과 변주

  —강인한, 『튤립이 보내온 것들』(시와시학)

 

   박수빈

 

 

 

   강인한 시인의 열 번째 시집 『튤립이 보내온 것들』을 읽으면 시공간여행의 게이트가 열린다. 탑승한 캡슐 안은 캄캄하다. 어둠에 빛나는 보물 어디 있나, 앞과 뒤, 내면과 이면을 더듬어 읽는다. 손때 묻은 행적을 따라 색안경 낀 세상이 보인다. 지난날이 배경이 되어 기억들이 숨 쉬는 행간에 사유는 별처럼 빛난다. 거슬러 올라가보는 내력들에는 세상살이의 불의와 부조리를 직시하며 감각적인 숨결들이 생생하다.

   가열찬 군사 독재 시기인 1967년, 강인한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비판적인 시 「대운동회의 만세소리」로 당선한 이래 2017년 올해로 시력 50년을 맞는다. 시인은 고등학교 교사로 30년 동안 광주에서 살며 5.18 민중항쟁의 시기를 고스란히 겪었으며 서울로 거처를 옮기고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사고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시대의 응전에 부응하는 방법으로 문학을 그야말로 강인한 의지와 의식의 토대 위에 올려놓았다고 하겠다. 이번 『튤립이 보내온 것들』은 『강변북로』이후 5년 만에 나온 시집으로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다.”라는 시인의 말에 부합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물살 빠르게 휘도는 골짜기

      맹골수로 저 아래에 모로 누운 거대한 여객선은

      우리들의 성당이어요.

      여기 따뜻한 슬픔의 휴게실은 우리들의 주소이고요.

      머리카락에 붙은 부연 소문들

      날마다 시린 무릎에는 퍼런 전기가 흐르지만

      착하고 고운 지영 언니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요.

      거짓말을 감추려 또 거짓말을

      입술에 검게 칠하고 늑대들과 사는 여자는 참 불쌍해요.

      한라산에 철쭉은 어디만큼 왔나

      나비 앞장 세워 찾아가는 길,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천천히 종탑의 층계를 오르는 동안

      은빛 갈치 살같이 달려가는 그 골짜기로 봄이 오겠지요.

      기다리던 답장이 오고,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져

      끝없이 소라고둥처럼 내려가는 단조의 층계

      야자나무 잎사귀에서 호두나무 가지로 통통 건너가는

      별 하나, 별 둘,

      가만히 있어요, 가만히 있어요.

      눈 감고 가만히 기다리는 다영이, 수찬이, 차웅이

      손 내밀어 봐, 별 모양 귀여운 불가사릴 줄게.

      오라고,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볼우물 예쁜 최샘,

      집게발 높이 들고 옆걸음 치는 꽃게들, 뽀글뽀글 피워 올리는

      물방울 카네이션은 엄마한테 우리가 띄워 보내는 사랑이에요.

      아, 우릴 부르는 저녁 종소리……

      엄마 이제는 가셔요, 울지 말고 이제는 집에 가셔요.

         —「가라앉은 성당」전문

 

   세월호 여객선 침몰을 ‘가라앉은 성당“으로 치환한 착상이 아찔하다. 이 제목은 드뷔시의 피아노 ’전주곡집‘ 1집의 제 10번이기도 하다. 브르타뉴의 전설을 바탕으로 드뷔시는 건반의 모든 영역을 사용하며 공주의 질투로 바다에 가라앉은 성당을 묘사하는데 그 음악이 이번에는 시와 상호텍스트가 되고 있다. 바다 안개 속에서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며 이어서 파도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이미지가 세월호의 비극과 겹쳐진다.

    “물살 빠르게 휘도는 골짜기/ 맹골수로 저 아래에 모로 누운 거대한 여객선”은 “우리들의 성당”이라는 도입부가 흡입력 있다. “따뜻한 슬픔의 휴게실은 우리들의 주소” 부분에서는 현실인식과 참회의식이 나타난다. 세상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착하고 고운 지영 언니”가 있는 반면 “거짓말을 감추려 또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조를 이루며 산다. 그래서 세상은 어지럽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천천히 종탑의 층계를 오르는 동안/ 은빛 갈치 살같이 달려가는 그 골짜기로 봄이 오겠지요.”에서는 시각적이며 청각적인 이미지가 빼어나다. 이렇듯 이 시에는 감각적인 비유들이 슬픔을 더하고 있다. “기다리던 답장이 오고”는 또 얼마나 반어적인지 죽음으로 받을 수 없는 회신을 대신하느라 “끝없이 소라고둥처럼 내려가는 단조의 층계”이었을 심정이 처절하다. “물방울 카네이션은 엄마한테 우리가 띄워 보내는 사랑”이라든가 “우릴 부르는 저녁 종소리”에서 애도는 강조해도 끝이 없다. 세월호 사고가 어른들의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한다. 무능한 관리들은 죽은 영혼이나 다름없다. 꽃보다도 아까운 아이들을 바다 속에 수장시킨 것이다. 얼마나 씻어야 어른들의 피 냄새가 사라질까.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얼마나 오래 바다에 울려야 정화가 될까.

 

 

      바람들이 차갑게 또는 서늘하게

      길 위에서 서로 다른 체온을 비비며

      색실처럼 넘나드는 아침 여섯 시의 공기.

 

      길바닥에

      지렁이들 나와 죽어있다.

      어제는 얼마나 먼 길 찾아나서 땡볕에

      말라 죽었느냐, 느린 걸음으로

      울며 가는 달팽이들.

 

      갈대숲 푸른 덤불을 감고

      길 가는 미루나무 새 잎을 향해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나팔꽃 넝쿨손.

 

      강아지랑 고양이

      식구들 유모차에 다 태우고

      한강공원 산책 나선 할머니.

 

      강변북로 아래 굴다리 지나

      튤립 꽃은 가고 없네. 공원관리사무소 옆

      돌돌거리는 유모차에 쫑긋쫑긋 귀를 버리고.

         —「튤립이 보내온 것들」전문

 

   이른 아침 강변북로 아래를 걷다가 화자는 튤립 꽃이 지고 난 뒤의 풍경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옆에는 땡볕에 말라죽은 “지렁이들”이며 “느린 걸음으로/ 울며 가는 달팽이들”이 있다. 여기에 “갈대숲”이나 “미루나무 새 잎을 향해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나팔꽃 넝쿨손”도 합세를 하여 활력이 있거나 죽어있거나 어울려 있다. 그 위에 시인은 “강아지랑 고양이/ 식구들 유모차에 다 태우고/ 한강공원 산책 나선 할머니”를 추가하여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반려동물을 태우고 노인이 지나가는 모습은 “튤립 꽃”의 지는 이미지와 일맥상통한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라져버린 “튤립 꽃”이 만들어 내는 다양하고 무심한 모습들이다. 그러고 보니 제목 “튤립이 보내온 것들”이 소멸이나 쇠락을 노래하면서도 튤립이 피어 있을 때의 생기를 반추할 수 있게 한다. 사라지면서 빛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튤립”은 ‘시’의 메타포로 해석할 수 있고 「튤립이 보내온 것들」은 궁극적으로는 시가 발현하는 ‘생명’ 혹은 ‘살아가는 고통’의 이면이다.

   이 밖에도 시집에는 「풍경의 발작」, 「옥상에 빵 한 덩이」, 「반려인간」, 「Y의 비극」, 「광화문에서 프리허그를」 등등 가편들이 많지만 지면 관계상 아쉽다. 시적 대상을 통해 세상을 향해 문제 제기하는 사고의 연장선들이 삶의 구체성을 지니고 진정성 있게 독자에게 다가간다.

 

 

                        —《열린시학》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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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빈 / 1963년 광주 출생. 아주대 대학원 박사 졸업.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13년 《열린시학》에 평론 등단. 시집『청동울음』, 평론집 『스프링 시학』. 현재 상명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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