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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안주철의 「연어」 감상 / 채상우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8.03.05|조회수421 목록 댓글 0

안주철의 연어감상 / 채상우

 

연어

 

   안주철

 

 

함부르크 항구 일요일 새벽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게 내리던 눈이
구름을 넘어오는 햇빛에 기대며 
하나 둘 흩날릴 때 

나 몇 살이었을까 

짓무른 과일을 시장 구석에서 
골라 버리던 아내는 

몇 살이었을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제 다 큰 딸에게 그때 너 몇 살이었니 
물어도 딸은 웃기만 하네

 

연어 뼈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아프리카 
친구들 틈에서 연어 뼈 요리를 
궁금해 하면서 맞던 눈송이들 몇 개였을까 

고등어 열 마리 사 들고 뒤통수 득득 
긁을 때 몇 명이 미끄러운 눈길에서 
넘어졌을까 

예전에 팔지 않고 나누어 주던 연어 뼈를 
싼값에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국적 
다 알 수 없었지만 꼭 알아야 할 필요는 
몇 마리였을까 

그때 나 수치스러웠는데 
침을 뚝뚝 흘리며 수치스러웠는데 
다 몇 마리로 세야 
제대로 된 연어가 됐을까 

아내와 나, 그리고 딸아이는 
몇 마리의 연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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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하지만, 가난은 부끄럽다. 그리고 불편하다. 아무리 당당해지고 싶어도 가난하면 괜히 주눅이 든다. 까닭 없이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가난이 죄가 아니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가난이 죄가 아니기 때문에 수치스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잘못된 논리다. 수치심은 수치심이고 죄책감은 죄책감이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내면으로부터 발현하지만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하는 감정이다. 따라서 가난과 수치심의 밀착은 일개인이 아니라 적어도 개인들 간에 발생하는 문제다. 가난이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우리 세계가 그만큼 잘못되었다는 증거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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