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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강해림의 「맹목」 감상 / 하린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8.03.31|조회수968 목록 댓글 0

강해림의 맹목감상 / 하린

 

 

맹목

 

   강해림

 

 

이백만 년도 더 된 동굴 호수에 물고기가 산다

눈이 없다

 

오래 전에 퇴화해버려 눈이 있던 자리가

푹 꺼져 있다

폭격 맞은 집처럼

 

눈은 더 이상 볼 것이 없으므로

쓸모가 없으므로

 

어둠은 어둠이 아니었을 거야

 

그 최초의 어둠

동굴 입구가 막히고 그 안에 고립되어 살면서

어둠과 배 맞았을 거야

 

완전한 어둠 속에서 수수만년을

함께 뒹굴며

엉켜 살다보면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른다는데

 

안보일수록

환한,

 

청맹과니

널 향한

나의 사랑이 그러했을 거야

 

이 마을 저 마을 창궐하는

페스트처럼

 

막 불붙기 직전의

성냥개비처럼

 

파멸, 그 무모한

황홀처럼

  

...........................................................................................................................................................................................................

 

   심어해는 수심 200m 이상의 깊은 바다에서만 사는 물고기를 지칭한다. 깊은 바다는 햇빛도 비치지 않는 완전한 암흑세계다. 산소도 부족하고 수압도 높아서 생물이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심해에 사는 생물들은 얕은 바다의 생물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진화했다. 그들은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발광 기관을 내장하고 빛을 내는 경우가 많게 되었으며, 또한 잘 보기 위해 눈이 엄청 커졌거나 혹은 퇴화하여 아예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 심해어의 특징을 활용해서 사랑의 맹목성을 강조한 시가 바로 강해림 시인맹목이다. 화자는 앞부분에서 운명적으로 물고기가 심해어가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상황을 제시한다. “동굴 입구가 막히고 그 안에 고립되어” “최초의 어둠으로 살아가면서 심해어는 눈먼 물고기가 되었다. 그런 완전한 어둠 속에서 수수만년을/ 함께 뒹굴며/ 엉켜 살다보면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게 되고 어둠과 어둠 아닌 것의 구별이 없게 된다. 그로인해 심해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타자를 인식하게 되고 생존을 지속해 나간다. “안보일수록/ 환한,󰁚 청맹과니가 되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통도 하고 사랑도 하게 될 것이다.

   화자도 눈을 뜨고 있지만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청맹과니처럼 맹목적인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이 마을 저 마을 창궐하는/ 페스트처럼순식간에 밀려드는 전염병적인 사랑이고, “막 불붙기 직전의/ 성냥개비처럼위험한 상태에 놓인 사랑이다. 맹목이란 그런 것이다. 윤리적 도덕적 관습적 잣대에서 완전히 벗어나 앞뒤 가리지 않고 파멸을 향해 불타오르는 무모한/ 황홀”, 그 자체이다. ‘그런 맹목적인 사랑을 당신은 한 적 있나?’ 하고 시 속 화자는 독자에게 직접 묻지 않는다. 그런데 시를 다 읽고 나면 그 물음이 계속 따라 붙는다.

 

  하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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