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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달의 기식자」 평설 / 정다인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8.04.17|조회수415 목록 댓글 0

김연아의 달의 기식자평설 / 정다인

 

 

달의 기식자

 

   김연아

 

 

왕은 백마의 울음소리를 먹고 살았다
백마는 백조를 보면 울었다
어느 날 백조가 죄다 사라져버리자
백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왕은 갑자기 늙어버렸다

달이여 영원한 시간을 아는 달이여
누가 백조를 불러와 말을 울게 할 것인가?

우리는 달의 기식자
하루에 밤을 먹어치우고
시간의 벌집에서 꿀을 채취하려 한다

그것은 유랑의 낱말
길 밖으로 벗어나
우연에 맡기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끼의 목소리, 새의 모음 같은 것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음미하고
창궐하는 것

어둠의 빈 웅덩이, 달에서 오는 파동이
나에게 도달한다
백조처럼 길게 휘어진 목을 가지고
흰 종이에 씨를 뿌리기 위해
나는 행을 배열한다

내가 달에 기식하는 동안
달은 내 심장을 먹고 춤을 추었다
평생 마신 숨을 다 센 것처럼
나는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내 이름을 갖지 못한 울음은
내려앉을 둥지가 없는 백조와 같다
그것은 나와 허공 사이에서 무한하게 펼쳐진 채
바람을 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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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의 밤에 걸린 액자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떤 시간에 우리 자신과 마주할까? 낮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잠시의 여유도 없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밤이 오면 우리를 둘러싼 소음과 잡다한 일들과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조용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예의 시간이다. 일상에 맞물려 닳아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사라져가는 자신을 찾기 위해 밤을 떠도는 우리에게 불면은 당연한 병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우리 자신은 더 선명하고 외롭다. 달과 함께 밤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화자의 목소리는 우리의 울대를 통과한다. 화자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우리의 목소리이기도 한 불면의 시간을 들여다보자.

 

   이 시에는 액자 하나가 걸려있다. 불교 설화 윤타왕과 백마이야기를 시의 첫머리에 걸어두었다. 액자 속의 이야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우리는 화자를 만날 수 있다. 밤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액자 속의 이야기에는 백조를 보면 우는 백마의 울음소리를 먹고 사는 윤타왕이 등장한다. 백조가 사라져버리자 백마의 울음소리가 사라져버리고, 마침내는 윤타왕도 힘을 잃는다. 이 이야기의 뒷부분은 부처의 힘으로 다시 백조가 돌아오고 백마가 다시 울게 되어 윤타왕도 힘을 되찾는다. 시에는 백조가 사라져버리고 백마의 울음소리가 끊겨 윤타왕이 힘을 잃는 부분까지 나온다. 그 부분에서 액자가 걸려있는 벽이 열리고 화자의 세계가 등장한다.

 

   “달이여 영원한 시간을 아는 달이여”/ 누가 백조를 불러와 말을 울게 할 것인가? 라는 탄식은 윤타왕의 것이지만 화자의 것이기도 하다. 힘과 밝음의 상징인 백마와 백조를 잃어버리고 어둠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윤타왕과 일상 속에서 에너지를 소진한 채 자신을 찾고 있는 화자는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

 

   ‘우리는 달의 기식자/ 하루에 밤을 먹어치우고/ 시간의 벌집에서 꿀을 채취하려 한다라는 구절에서 화자는 낮의 시간을 벗어나 밤의 시간을 떠돌며 시간의 벌집에서 꿀을 채취하려 한다’. 자신의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서 하자는 밤의 방랑자가 되어 불면의 시간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유랑의 낱말/ 길 밖으로 벗어나/ 우연에 맡기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끼의 목소리, 새의 모음 같은 것/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음미하고/ 창궐하는 것이라고 화자는 불면의 방랑을 묘사하고 있다. 어둠 속의 유랑은 밝음과 이정표가 명확한 길 위에서가 아니라 길 밖에서 시작된다.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일은 우리 안에서 길을 잃고 우리 안에서 길을 찾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일인 것이다.

 

   ‘백조처럼 길게 휘어진 목을 가지고/ 흰 종이에 씨를 뿌리기 위해/ 나는 행을 배열한다라고 화자는 밤의 긴 두루마리에 써 내려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그것은 이끼의 목소리이며 새의 모음같이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언어들이다. 화자의 긴 독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불면의 밤에 자신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화자 자신뿐이다. 누구도 그 언어를 해독할 수 없다.

   ‘달은 내가 기식하는 동안/ 달은 내 심장을 먹고 춤을 추었다라고 화자는 밤의 골똘한 침잠이 가져다주는 피로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불면의 시간이 가진 징벌이며 묘약이다. 화자도 우리도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밝음의 세상에서 또다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마주쳐야 하는 시간을 위해서 눈을 감아야 하는 것이다. 화자는 불면의 유랑을 접고 낮으로 연결된 수면으로 빠져든다.

 

   ‘내 이름을 갖지 못한 울음은/ 내려앉을 둥지가 없는 백조와 같다/ 그것은 나와 허공 사이에서 무한하게 펼쳐진 채 바람을 삼키고 있다

   화자가 어둠 속에 남겨두고 온 화자 자신의 울음소리를 백조와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밝음 속으로 날아들지 못하고 여전히 불면의 밤을 떠돌고 있는 화자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나와 허공 사이에서’ ‘바람을 삼키고 있백조가 액자 속으로 다시 날아 들어간다. 화자에게 있어서 밤은 하루 밖의 시간이며, 목적지가 없는 여정이다.

 

   오늘도 불면의 밤이 흘러가고 있다.

 

 

                        ⸺포엠포엠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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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인 / 2015시사사등단. 시집 여자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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