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성의 「연두」 평설 / 송기한
연두
정희성
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 꽃 진 자리
어린 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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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의 「연두」는 “완벽히 충족되지 않은 세계”가 줄 수 있는 여운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잔상을 남게 하는 것인가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 시이다. 이 정서적 효과는 충족되지 않는 미정형의 상태에서 오는데, 시인이 제시하는 소재들 가운데 완성형으로 제시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연두’는 이 시가 제시하는 그러한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도입의 역할을 한다. 이 색은 진행형일 뿐 결코 완성형이 아닌 까닭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연두색과 더불어 그 정서적 효과를 배가시켜주는 시적 장치가 ‘~만’이다. 이 단어는 무엇을 한정하는 경우에 주로 쓰이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통사적 기능을 초월하는 곳에서 음역된다. 가령 ‘~만’은 한정이라는 구속보다는 ‘넘쳐남’으로 넘어가는 ‘과잉’의 상태를 조절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이 시의 특색은 바로 ‘~만’이 함의하는 정서적 장치 속에 숨겨져 있다.
정상에 오른 뒤 느끼는 희열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이를 체험하지 못한 주체들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희열 뒤에 오는, 정복 뒤에 오는 상실감에 있을 것이다. 더 오를 수 있다는, 또다시 성취할 수 있다는 목표의식이야말로 자아의 존재감이며 정체성을 배가시켜줄 것이지만, 그것이 성취되고 난 뒤에는 이런 동기가 사라져버린다. 그것이 사라진 뒤에 자아의 의욕은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정상에 서 있다는 충만감은 자칫 오만으로 흐를 수가 있으며, 그에 따른 낭패감은 익히 보아온 터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의 여백, 충족되지 않은 공간이 중요한 것이다. 더 올라갈 수 있다는 목표의식이 있어서 좋고, 그 결과 자만과 부정적 의식은 틈입할 여지가 없게 된다. 그런 중간자의 입지란 바로 여유이다. 시인은 그러한 여백을 인생의 최대 미덕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송기한 (문학평론가, 대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