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참 좋은 저녁이야」 감상 / 김사인, 이영광
참 좋은 저녁이야
김남호 (1961~ )
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
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
김남호 시집 『링 위의 돼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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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는 유서 쓰기이다. 말해놓고 보니 제법 비장하고 그럴듯하다. 유서를 쓰는 자, 그가 곧 시인이다. 그럴 법하다. 그러니 이 시속의 굴뚝새 왜가리 기린 자벌레도 영락없는 시인이다.
시의 화자는 비감해 마땅할 "유서" 곁에 "좋은 저녁" "참 잘 썼어요" 같은 말들을 세우고, 연식 정구공이나 오제미를 던지고 받듯 유쾌한 리듬으로 함께 논다. 짐짓 말장난처럼, 맹랑한 방식, 명랑한 어조로 "유서'란 말을 '픽픽' 던진다. 본질탐구가 아니라 그 말들과 '더불어 놀기'의 자취로써 죽음에 관한 시 쓰기를 삼는다.
"좋은 저녁"인 것도 "유서를 쓰기 딱 좋은" 때문이다. 굴뚝새 기린 자벌레뿐 아니라 학생들의 백일장도 그렇다면 유서 쓰기 시합이다. 상이라는 것도 결국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이지 뭐람, 이렇게 이 시는 '조잘조잘, 꼬깃꼬깃' 맹랑한 주장을 하고 있다. 경박한가. 한데 어쩌면 모든 것들 앞뒤에 "유서"를 쓴다거나 읽는다고 말을 붙이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아이티 소식(2010년 1월의 대규모 지진 발생)은 우리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천지天地의 저 불인不仁함, 저 깊고 큰 무심함과 거대한 야생성 앞에서 인간 개체의 삶과 죽음이란 초개와 같다. 가치와 제도와 문물들도 자랑삼기엔 턱없이 초라해 보인다.
그 무력감과 허무감 곁에 이 시 한 편을 놓아본다. 죽음을 대하는 정색의 비장과 진지, 또는 익숙한 탈속의 포즈와 선미禪味가 아니라, 위악과 자조가 섞일 망정 비애와 허무를 쉬 내색하지 않으려는 이런 장난기 쪽에 차라리 희망이 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현대문학』 2010년 2월호)
김사인(시인)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 중 하나이다. 탄생과 더불어 죽어간다. 새, 짐승, 벌레의 한 동작 한 동작은 그래서 다 유언을 적는 일이 된다. 아이들의 운문 산문도 그걸 심사하는 일도 한 걸음 한 걸음의 유서 쓰기이다. 이것은 비관이 아니다. 삶은 죽음으로 끌려가는 공포 여행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가는 명랑한 여행이다.
이영광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