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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서정주 시인의「송정오장(松井伍長) 송가(頌歌)」해설/ 전상하(전비담)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8.07.19|조회수4,801 목록 댓글 0

서정주 시인의송정오장(松井伍長) 송가(頌歌)해설

생명파 시인 서정주의 야만적 역설

   

  전 상 하 (전비담)

 

 

 


 

  송정오장(松井伍長) 송가(頌歌)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 떠서 다니는

  몇 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몇 만 리런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가 오겠읍니다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 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神風) 특별공격대원.

  정국대원(靖國隊員)

 

  정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에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가 내리는 곳

  소리 있시 내리는 고운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몇 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서정주, 송정오장 송가(松井伍長 頌歌)전문. <매일신보>1944.12. 9.

 

   

  친일시인 미당 서정주의 송정오장 송가는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친일시다.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서 조선청년 최초로 전사한 마쓰이 오장을 추모하며 찬양하고 있다. ‘마쓰이 오장의 본명은 인재웅(印在雄)이며 창씨개명한 이름이 마쓰이 히데오(松井秀雄). 1924년 개성 출생의 그는 당시 서울 서대문구 수색동의 한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소년비행병 제13기로 입대한 후 특공대원으로 선발돼 야스쿠니(靖國)부대 소속 오장으로 복무하던 중, 19441129일 레이테만()에서 미군함에 돌진하면서 전사하였다. 그는 스물한 살, 청운의 꿈을 품었을 조선청년이었다. ‘오장(伍長)’은 당시의 일본군 계급으로 우리의 하사계급에 해당한다. 전사 후 그는 두 계급 특진하여 일본군 소위가 되었다.

  

  인재웅, 마쓰이 오장이 제로센(零戰) 비행기를 이끌고 출격하여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는 그의 죽음을 일왕(日王)을 위한 감연한 희생으로 미화하여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26일자에서 친일시인 노천명은 시 신익(神翼)-송정오장 영전에로 그의 죽음을 찬양했고 <매일신보 사진판> 12월호에서는 시 군신송(軍神頌)을 통해 그를 군신(軍神)’으로 추앙하였다. 친일작가 이광수도 신시대12월호에 신병(神兵) 송정오장(松井伍長)을 노래함이라는 시를 실어 그를 찬양하였다. 그 무렵 <매일신보>는 송정오장을 따르자는 사설을 실었는데, 그 기사를 본 서정주가 감격에 겨워 송정오장 송가라는 시를 지어 노천명의 시 신익(神翼)-송정오장 영전에가 실린 지 불과 삼일 후인 129일에 같은 지면에 발표한 것이다.

 

  서정주는 이 시에서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이라고 하며 영미연합군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조선 청년병의 죽음을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한 영광스러운 자기희생으로 미화하여 조선청년들에게 일왕을 위해 옥쇄(玉碎)할 것을 선동하기 위한 이유다.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 할망정 나라를 잃어 불운한 동족의 청춘들을 자살특공대로 내몰아 침략자 일제를 위해 옥쇄하기를 선동하는 이 구절은 얼마나 섬찟한가. 이는 단순히 친일을 넘어 일제의 반인륜적 살인행위를 비호하는 범죄가 아닌가.

 

  레이테만은 필리핀 레이테섬 동쪽에 있는 만()으로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필리핀해와 면해 있다. 19441023일부터 26일까지 필리핀의 레이테섬, 사마르섬, 루손섬에서 미·오스트레일리아 연합군과 일제군 사이에서 벌어진 레이테만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큰 해전으로 평가된다. 일제는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가미카제를 공식작전으로 체택하여 레이테만 전투에서 조직적으로 수행한다. 이 가미카제작전은 일본 항공모함 탑재기 제로센에 250킬로그램의 폭탄을 실은 뒤 적 항공모함의 갑판에 육탄자살공격을 감행하는 작전이다.

 

  가미카제(神風)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란 뜻이다. 127410월과 12818월 두 차례에 걸쳐 여몽연합군이 일본 본토를 초토화하려는 찰나 난데없이 태풍이 불어와 일본을 구한 일이 있은 후, 일본은 태풍을 가미카제로 미화하여 일본불패’, ‘신국일본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유래한 가미카제특공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적기를 공격하는 자살특공대다. 특공대가 출격할 때 귀환용 휘발유를 아예 공급하지 않아 대원의 백퍼센트가 죽음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비정상·비상식적인 상황에서 서정주는 조선인 가미카제특공대원의 첫 희생을 찬양하고 조선의 청년들에게 일왕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것을 독려한 것이다. 이른바 생명파 시인 서정주가 타인의 귀중한 생명에게 또 다른 생명과의 공멸을 위한 도구로 그 생명을 사용하라고 선동하는, 이러한 야만의 일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서정주는 무슨 권리로 이러한 선동을 자행한 것인가. 무엇보다, 비록 생명파라는 이름을 표방하기까지는 않더라도,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반생명·호전·반인권 전쟁범죄의 편에 가담할 수 있는 일이 가당키나 한지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이토록 노골적으로 반미 시를 썼던 서정주는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자 곧장 친미로 돌아선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보여주던 친일부역의 현실참여적인 시적 면모는, 해방 이후에는 격동기 나라의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회귀·자연회귀의 현실도피의 시적 행보로 변모한다. 동양의 영원주의로 회귀하고(귀촉도), 자연과의 화해를 읊고(풀리는 한강 가에서,상리과원), 현실달관의 정서를 보여준다(,기도). 또한 신라의 설화에 기대어 영원회귀의 이념과 선()의 정서(신라초), 유년기의 경험(질마재 신화)에 탐닉한다. 일제 침략전쟁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던 현실참여의 문필적 행보가 해방 이후 격동기 우리 사회의 불합리·부조리한 문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굳게 침묵하며 실존적 문제로 안일한 도피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가 다시 현실참여의 행보를 보인 것은 1980년 쿠데타로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부터다. 그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 후보의 찬조연설을 하고 대통령 당선축하 축시와 헌사를 지어 바쳤으며, 광주항쟁 이후 티브이방송에 출연해 군부파쇼정권에 대한 지지발언을 하였다. 또한 그는 1987118일 당시 대통령 전두환의 생일축하장에서 낭송한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에서, 우리가 티브이뉴스에서 종종 보던 북한의 아나운서가 그들의 독재자를 찬양할 때 쓰는 바로 그 어조를 능가하는 숭배와 아부의 말투로 군부독재를 찬양하여 상식적인 국민정서의 낯을 부끄럽게 만들었다.(“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부분)

  서정주 문학정신의 디엔에이(DNA)는 한편으로는 정권의 지각변동을 따라서 일관성 없이 구부러지고 미끄러지는 기회주의적 성질을,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와 독재 파시즘을 따라서 일관성을 보이는 특성을 보인다. 그가 자서전에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백 년은 갈 줄 알았다고 한 것처럼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이르는 독재권력도 백 년은 갈 줄 알았던 모양이다.

  

  일제말기에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신민화 정책의 선전에 앞장선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가 문필로써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427<매일신보>에 평론 ()의 이야기-주로 국민시가(國民詩歌)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저 평론에서 그는 대동아공영권이란 또 좋은 술어(述語)가 생긴 것이라고 나는 내심 감복하고 있다. () 시인은 모름지기 부족한 실력대로도 좋으니 중국의 고전에서 비롯하여 황국(皇國)의 전적(典籍)들과 반도의 옛것들을 고루 섭렵하는 총명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동양에의 회귀가 성()히 제창되는 금일.”이라고 썼다.

  서정주는 이후 친일문예지인 국민문학국민시가의 편집을 맡으면서 친일작품을 양산하여, 평론 1, 4, 단편소설 1, 수필 3, 르포 1편 등 10여 편에 이른다. 친일작품의 양으로 보면 다른 친일문인에 비해 그리 많다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가 해방을 맞이할 무렵의 나이가 갓 서른이었음을 미루어 볼 때 일제의 압력을 받을 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러므로 서정주의 친일작품은 누구보다 자발적 부역의 혐의가 짙다는 점, 또한 해방이후 어떠한 반성도 없이 일관하여 친일독재의 세력에 편승하는 등 이를테면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에서 묘사된 한국문학사의 탁월한 기회주의자 이인국에 비견할 만한 행보를 보인다는 점, 그럼으로써 한국문단의 주류를 장악할 수 있었고, 그러한 위치에서 국민의 정서·가치관에 끼친 영향력이 실로 지대했다는 점 등의 관점에서 보면, 서정주는 그를 그리 일컫는 자들의 호칭에 따라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일지 모르겠으나 그는 오히려 한국 친일문학의 우뚝 선 거장이며, 수장(首長)인 것이라고 해야 옳다.

  서정주는 1992년 월간 시와시학에서 자신의 친일행적 논란과 관련하여 국민총동원령의 강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일문학을 썼다.”고 한 바 있다. 이는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백 년은 갈 줄 알았다고 한 그의 또 다른 졸렬한 변명과 함께, 민족의 지조와 기개를 초개같이 버리는 대신 일신의 영달과 안위를 초개같이 버리고 일제침략전쟁의 비행기에 투신하는 대신 민족의 위기에 투신하여 목숨을 잃어간 독립지사와 그 유족·후손들 앞에 궁색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기회주의자의 비열(卑劣;鄙劣)어록(!) 최상단의 반열에 오를 말이 아닐 수 없다.

 

  서정주가 200012월에 사망하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고 이듬해 6<중앙일보>에서 발 빠르게 미당문학상을 제정해 지금까지 시행해오고 있다. 같은 해 건립된 고창 미당시문학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유족회의 친일·친독재 작품 병행전시 요구를 받아들여 2006년부터 서정주의 친일작품과 전두환 생일송시 등을 전시함으로써 서정주의 친일·독재 부역의 역사를 청산했다고 자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정주문학을 기념하여 상을 제정·시행한다는 것은 서정주의 문학에 대해 이미 기념할만한 것이라고 역사·문학사적 평가를 종결했다는 의미나 다름없을 텐데, 이는 '친일잔재 청산'이라는 70년여의 민족적 과제가 아직까지 대부분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보편의 국민상식·정서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비상식적인 일이고, 세계사적으로도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미당문학상을 비롯한 우리의 친일문인기념 문학은 일그러진 한국 근현대사의 부끄러움을 만천하에 내보이는 수치스러운 우리 문학의 자화인 것이다.

  

  우리가 촛불로 친일·친독재 청산과 개혁의 개벽시대를 연 이즈음에, 1939년 일제하에서 첫 시집 촛불을 펴낸 신석정 시인의 작가정신을 생각한다.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일제의 그 엄혹한 검열과 연행·취조에 맞서 급기야 문인으로서는 극단의 선택인 붓을 꺾음의 방식으로 격렬하게 저항하며 단 한 편의 친일작품도 쓰지 않음으로써 고결한 문학적 지조와 시대의 양심을 지켜낸 그이의 귀하디귀한 결단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혼탁한 친일문인들의 기회주의적 작태 앞에서 답답하던 가슴이 그제야 활짝 숨통이 트여 깨끗해지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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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하(필명, 전비담) / 경북 문경 출생. 2013년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으로 시산맥등단.

 


문학뉴스 연중캠페인-친일시 다시 읽기’_서정주의 송정오장 송가해설/전상하  _문학뉴스 2018.01.17

원문보기  http://munhaknews.com/?p=1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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