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의 「백합의 선물」 감상 / 최형심
백합의 선물
최승자
언젠가 한 점쟁이가 내게 말했었죠
“당신은 전생에서 이생으로 내려올 적에
길가에 난 백합꽃을 꺾었어. 백합꽃
꺾은 죄로 이생에서 이 고생을 하는 거라구”
가끔씩 힘들 때마다 “내려오다 백합은
왜 꺾어 이 고생이누, 아니 하필이면
내가 내려오는 그 길에 백합은 왜 피어 있었누”
라고 생각했지만, 그 참 이제 보니 그건
아름다운 상징일 수도 있다는 생각 드는군요
아니 상징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이었다는
하필이면 거기에 백합이 피어 있었던 것도
하필이면 내가 그것을 꺾어 갖고 왔던 것도
어쩌면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고통이 정화된 그 자리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나, 이제 비로소 그 존재를,
그리고 용도를 내게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내가 당신의 힘을 빌려 내 무수한 전생들
그리고 이생에서 보냈던 모든 시간들을
폐지해 버린 자리, 내 마음의 작은 빈터 안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꽃,
백합꽃을 선물로 놓아 드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한 송이 백합이 어느 날 넘실대는 환한
빛 덩어리로 풀려 버릴 수 있길 바라면서
..........................................................................................................................
살다 보면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시인은 세상으로 오는 길에 그만 “백합”을 꺾어서 이생에서 고생을 하는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하필 백합을 꺾어서 이 고생인지 한탄을 하다가 백합이 어떤 “아름다운 상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거기에 백합이 피어 있었던 것도” 그걸 꺾어서 가지고 온 것도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 모든 고통이 정화된 그 자리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나” 그 꽃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로 줄 수 있게 된다면 멋진 일 아닌가, 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시인의 말처럼 이 모든 삶의 고통이 한 송이 백합을 피우기 위한 것이라면 그래도 견딜만할 것 같습니다.
최형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