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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진은영의 「단조로운 시」 감상 / 양경언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3.07.05|조회수452 목록 댓글 0

진은영의 단조로운 시」 감상 양경언

 

 

단조로운 시

 

   진은영

 

 

지나가는 개와 슬픈 고양이

트위터의 이름처럼 

다정한 소녀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의 흰색에 대해 쓰면서

네가 얼마나 내 뺨을 창백하게 했는지

 

내 사랑

한 줄로 된 현악기

울리거나 멈추거나

 

나도 알아

내가 단조로……운 밤이라는 거

하얀 도화지에 흰 조각 모자이크

 

죽은 이들의 이름을 다채롭게 사칭하면서

네 곁으로 가고 싶다

 

모든 게 정확히 틀렸다

제 자리에서

 

정확히 말해야 해정확히 말하기 싫어

무언가 검정 얼음 속에서 녹고 있어!

 

꿈과 죽은 자들

시와 너는

똑같다

 

모두 이곳에 없었던 것

없어서 내 심장이 소리쳐 불렀던 것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202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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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17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에서는 백여 명의 시민이 모여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다그렇게 모인 이들에게 그리고 그 자리의 뜻에 공감을 표하는 많은 이들에게 진은영의 시를 건넨다제목의 단조로운이란 표현은 얼핏 우리가 살아가는 참담한 현실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 못하는(듯 느껴지는) ‘에 대한 반성을 담았다는 인상을 남긴다하지만 시는 단조로운에서도 단조(短調)와 울다라는 말에 먼저 반응하고자 한다.

 

   마치 한 줄로 된 현악기처럼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자리에 더 이상 있지 못하고 저 혼자 울리거나” “멈추는 소리로 남은 그녀를 절대 잃고 싶지 않은 고유한 한 사람으로 떠올리는 일이란 내 뺨이 창백해질 정도로 마음 아픈 일이다그러니 그녀가 살아 고통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다했고살아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기억하는 행위는 내가” 그리고 여기에 남은 우리가 단조로 슬피 우는 소리와 닮아 있다여성혐오 범죄가 구조적인 문제임을 모르는 척하느라 사건의 의미를 왜곡하고 훼손시키는 관료들정치인들에게는 단조롭게 들릴 이 비가(悲歌)가 어두운 을 끌어들인다.

 

   어쩌면 그 의 어둠은 다음과 같은 말들이 적히면서 내는 잉크의 빛깔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이를테면 네 곁으로 가고 싶지만 갈 수 있는 길이 이젠 없어서” 우리의 심장이 그녀를 향해 그녀가 살아 애썼던 시간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말들이 적히면서 내는 빛깔로혹은 그녀와그녀와 같이 한 줄로 된 현악기의 자리로 가게 된 또 다른 그녀들을 통해 알게 된 지금 이곳에 없는 성폭력 없는 세상’, ‘여성혐오 범죄 없는 세상’, ‘성차별 없는 세상을 소리쳐” 요청하는 말들이 내는 빛깔로. “흰색” 종이에손팻말과 포스트잇에, “하얀 도화지에 흰 조각 모자이크에 적히는 이것은 이곳에 없는 무언가를 없는’ 바로 그 자리에서 소리쳐 러 내는 가운데 솟아나게 만드는 시와 같은 것다시 말해 그녀가 힘껏 손 내밀어 우리 손에 쥐여 준 성폭력에 맞서 싸울 용기(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의 피해자가 무참하게 죽어간 것을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녀가 생전에 성폭력에 맞서 싸운 용기도 기억하자는 발언에서 인용)’를 내면서 끝까지 적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시인의 메시지가 맞다단 한 사람의 고통단 한 사람으로부터 빚어진 슬픔과 구체적으로 마주하는 일은 그 사람과 함께 속하고 싶고 함께 만들어가고 싶었던 세상을 그리는 일과 같다우리의 슬픔은 힘이 세다. (한겨레 2022-09-30)

 

  양경언(문학평론가)

 

*한겨레에 이 글이 발표되고 한달 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녹사평 분향소의 영정 사진들 사이에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가 조화(弔花)처럼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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