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참의 「밀실」 해설 / 최규리
밀실密室
김 참
목 위에 머리 대신 확성기가 달린 우리. 그런 우리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는 질문들. 머리는 어디 두고 오셨어요? 몰라요. 자고 일어나 보니 머리가 없어졌더라고요. 오디오 수집가도 아닌데 목 위에 확성기를 단 사람이 모여 사는 이상한 단층 아파트. 예? 단층 아파트요? 세상에 단층 아파트도 있어요? 지상부는 단층인데, 지하는 101층이에요. 그럼 주차는 어떻게 해요? 주차요? 나야 모르죠. 나는 차가 없으니까. 아직 어두운 새벽, 식은땀 흘리며 복기해 본 간밤의 꿈. 지하 5층과 14층, 22층 버튼에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추락하던 엘리베이터. 목 위에 확성기를 단 이웃들과 함께 커다랗게 비명을 질러도 끝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엘리베이터. 101층에서도 멈추지 않고 무저갱으로 추락하던 밀실. 서로를 비추는 두 거울 속에서 무한 증식하며, 끝없이 추락하던 사람들. 귀가 터지게 소리 지르는 확성기들로 가득하던, 어둡고 기괴한 방.
—계간 《시와세계》 202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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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없어졌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 한다. 절마에 빠진 현실로 인해 스스로 벌레가 되고 말았던 신체. 불안과 공포가 만들어 낸 자기 부정이다.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방. 소외된 목소리. “목 위에 머리 대신 확성기가 달린 우리”는 무수히 많은 말들을 하면서도 늘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아서 답답하다. “쏟아지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하고 싶던 말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깊은 수렁 속으로 추락하는 사태. “목 위에 확성기를 단 사람이 모여 사는 이상한 단층 아파트”에서 우리가 가끔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목소리를 높여 세상을 향해 외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현실. “단층 아파트”라는 모순. 아파트는 단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단층인 아파트. 높이 건설된 자본주의의 맨 아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아파트처럼 포화상태에 있다. 계급화된 사회. 수평적 구도에서의 다양성은 무시된다. 제도권 바깥의 사람들과 가장 아래에 배치된 사람들의 목소리. 너무 아래에 있어서 확성기를 달고 아우성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매우 비현실적 시의 환경에서 매우 현실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는 사람들. 지상은 단층이지만 지하는 101층인 “어둡고 기괴한 방”. 밀실에 갇힌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누구나 기괴한 밀실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최규리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