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의 「연애의 법칙」 감상 / 나희덕, 문태준
연애의 법칙
진은영(1970~)
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우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던
하얀 발가락으로
우리는 세계의 배꼽 위를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
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
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 선수처럼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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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란 백리향의 작은 잎처럼, 부드러운 모래처럼, 따스한 자갈처럼, 조가비의 분홍빛 혀처럼 감미롭고 따스한 것이죠. 그러나 시인이 정작 말하고자 하는 건 연애의 달콤한 감각이나 관능이 아니라 쓰디쓴 법칙이랍니다. 그는 나를 그리는 동시에 지우고, 나를 어루만지는 동시에 상처 입히는 존재라는 것. 나는 “뜨거운 아스팔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멜랑콜리아」)처럼 녹기 시작하지만 “아직 누구의 부드러운 혀끝에 닿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서로의 존재를 껴안는다는 일의 고단함과 고독함을 시인은 텅 빈 체육관에서 홀로 샌드백을 치며 땀을 흘리는 권투선수에 비유하고 있어요. 시를 다 읽고 난 뒤에도 텅, 텅, 샌드백 치는 소리가 귓가에서 내내 들려오는 것 같아요.
나희덕 (시인)
향기가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 잎을 만지던 손가락으로 연인의 목덜미를 가볍게 쓰다듬어 만지는, 이 시의 도입부는 감미롭고 아름답다. 그 향기는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의 빛나는 시간에 은은하게 머물 것이다. 이 사랑 행위는 시인이 시 「청혼」에서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라고 쓴 시구와 마음의 결을 같이 한다. ‘너’와 ‘나’는 모래집과 모래 무덤처럼 허물어지고 흩어질 유한한 존재이지만, 혼곤한 잠에 든 지친 영혼을 곁에서 지켜줄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의 첫 결심과 지속이 헛헛함과 고독을 다 채워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천장에 매단 샌드백이 흔들리며 덩그러니 제 쪽으로 돌아올 적에 그것을 껴안고 탄식하듯 주저앉는 권투 선수 처지가 되기도 할 것이다. 연애에는 사랑에 대한 믿음의 센 근력, 애씀, 감정의 다툼, 좌절이 함께 들어 있다. 이것을 잘 알기에 시인은 시 「청혼」에서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이라고도 노래했을 텐데,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놓을 수 없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