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란 풀들에 대한 소견
강인한
요즘 발표되는 시들 중에 두 페이지 이상 세 페이지, 네 페이지짜리 시도 곧잘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가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반성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대놓고 짧게 써달라고 13행 미만으로 원고 청탁을 하는 시 전문 잡지도 있다. 신인들의 경우 너도 나도 긴 시를 써내는 게 무슨 패션 유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현상이다.
파레이돌리아
강지수
햇빛이 비칠 때마다 얼굴 한쪽이 희게 빛났다 눈을 가늘게 떴다 광원을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빛나는 쪽이 늘 패배였다 차게 식은 볼을 매만졌다 기미 주근깨 그런게 선명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그래서 더 사람 같다고 생각하며
더 사람 같다고, 그게 무언지 헤아릴 수 없을 때 나는 더 깊은 그림자를 만들고 싶어했고
더 사람 같다고, 빛이 있어서 그림자가 있는 거지 그림자가 있어서 빛이 있는 건 아냐
그건 알지만
나뭇가지와 나뭇가지의 사이
여백이 이름을 가지면
닫혀 있다고 믿었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
웃음과 다정 필요 없는
말의 무게 잴 필요 없는
꿈이 아니라서
깰 수도
혼자일 수도 없고
자려고 누운 침대 위에서 오래도록 눈뜨고 있다
사물의 빈틈을 멋대로 지켜보는 건
나의 악취미
날씨를 가늠하려고 다가선 창가에서 해보다 더 길게 바라본 창틀의 먼지
그리고
매끈하게 부풀어오른 이파리의 뒷면에
다닥다닥 붙어 차갑게 들끓고 있는 벌레들의 잔상
저기 어디에 쪼그리고 앉아
누군가의 등에 손톱을 박아 넣은 적 ······ 있는 것 같아
뭉근하게 터져나온다
필사의 마음
온실 밖에선 모든 꽃이 한철이고
난 그게 마음에 들어
오래 응시하면 눈이 멀지도 모른다고
감았다 뜨면 산산으로 조각나는 아침의 정경에서
풀을 뽑았다
뿌리가 희박했다
―《문학동네》 2024년 여름호
*
대상에서 의미 있는 현상을 찾아내려는 심리적 현상을 ‘파레이돌리아’라고 한단다. 그건 일종의 인지 오류라고 본다. 인지 오류는 일상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달 표면에서 토끼를 발견한다거나 구름에서 어떤 특정한 형태를 연상하는 등. 예컨대 자주 발생하는 UFO 목격담 같은 것이 그것이다. 대개는 착각으로 밝혀졌지만. 저 시 「파레이돌리아」 를 주목한 건 202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신인 평론가 송현지 씨다. 《파란》 2024 가을호에 「웃자란 말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사뭇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웃자란 말들이란 필요 이상 지나칠 정도로 서술한 말이 많음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시인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시를 써야 하는데 능력 부족의 결과물이거나, 최선을 다해 쓴 게 저 정도의 시라면 차라리 발표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송 평론가가 두, 세 편 그런 경우의 시들을 부분적으로 이용한 것은 굳이 그런 종류의 시들이 눈에 띄어서 예를 든 것일 게다. 그러다 시 전문을 다 인용한 것도 있긴 하다. 그건 임지은 시인의 시집에 든 「혼코노」란 작품이었다. 낯선 외국어나 일본어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혼코노'는 요즘 나타난 '입틀막', '듣보잡'처럼 줄인말이란다. 혼자서 코인을 이용하는 노래방이란 말 그걸 '혼코노'라고 만든 조어라 한다. 시의 서술 분량이 상당히 긴 시인데 그 시 마지막에 코인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끝나는 시. 마지막에 와락 웃음이 터진다. 일종의 황당한 안티클라이맥스 기법을 구사한 재미있는 시가 임지은의 「혼코노」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요즘 젊은 신인들의 시가 늘어지고 길어지는 것은 새로운 시 쓰기의 모색이며 시 쓰는 방법론의 개발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긍정적인 편에 손드는 송 평론가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건대 미숙한 작품에 대한 어쭙잖은 변명, 묽어진 포에지를 웃자란 말로 포장한 시들이 서로서로 어깨 너머로 눈치를 보며 나타난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쯤 긴 시 쓸 수 있다며 과시하는 돌림병, 해괴한 코로나 같은 현상으로 그치면 좋겠다.
처음엔 이 글 서두에 인용한 시를 '좋은 시 읽기'에 문제적인 시의 보기로 소개하여 볼까도 생각했다. 그랬을 때 무조건 '아, 이 시는 카페지기가 좋은 시로 소개하는 시'라고 판단하여 대뜸 모범적인 시니까 필사하려고 덤빌 것 아니겠는가 걱정이 되었다. 오래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그렇게 소개하고 '한줄 메모장'에 반성하며 다같이 되새겨 보자고 내놓은 작품이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단지 '좋은 시 읽기'에 내놓은 시란 점에만 생각이 미쳐 한줄 메모장의 조언을 못 보고 "야 이건 문제적인 아방가르드로 볼 만한 시인가 보다"라고 오해를 샀던 해프닝이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