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연의 시「가뭄」평설 _ AI
가뭄
유주연
햇볕이 산등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새들은 마른 낙엽 밑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있었다
항아리는 토방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마른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가슴도 조각나고 있었다
대답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는 그들의 마른 처소에서 울고 사람은 제단 아래에서 멍해지고 있었다
텁텁한 입과 길어진 머리 안팎으로 미처 울음이 되지 못한 슬픔들이 무음으로 울고 있었다
빛은 점점 옅어졌고 대지는 뜨거워졌으나 흙은 짙어지고 퍼즐처럼 갈라졌으나 몸들은 결코 따뜻해지지 않았다
영혼들은 스스로 자기를 먹으며 버텼다
때로 단지 마른 고기와 치즈가 그려진 금빛 액자틀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없는 목소리로 벙어리처럼 호소하고 있었다
햇볕이 산등 뒤로 또 다시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넘어가고만 있었다
가뭄이었다
가뭄이었고
가뭄이었다
새들의 눈물이 낙엽을 적시고 있었다
사람의 모은 손이 신앙을 넘어가고 있었다
결정적 형태가 주어지지 않았다
가뭄이 깊어지고 피가 굳어가고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
다음은 작품을 의미 층위와 이미지의 작동 방식 중심으로 풀어 쓴 해설입니다. _임종명의 chatGPT
유주연의 시「가뭄」평설
이 시에서 ‘가뭄’은 자연 현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니라, 세계 전반에 걸쳐 응답과 생기가 고갈된 상태를 지칭하는 총체적 은유다. 시는 햇볕, 새, 항아리, 사람, 제단, 영혼 등 서로 다른 존재들을 하나의 조건 아래 놓음으로써, 가뭄이 특정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전반을 관통하는 상황임을 드러낸다.
시의 도입부에서 햇볕은 “산등 뒤로 넘어가고” 있지만 완전히 저물지 않는다. 이는 하루가 끝나지 않는 시간, 즉 종결되지 않는 고통의 지속성을 암시한다. 새가 마른 낙엽 밑으로 고개를 넣고 있는 모습, 항아리가 말라가는 풍경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행동과 저장의 기능이 모두 무력해진 세계를 보여 준다.
이 가뭄은 곧 인간의 내면으로 옮겨간다. “누군가를 부르는 사람”의 가슴이 조각나고, “대답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진술은 호소와 응답의 단절을 핵심 정조로 삼는다. 말은 발화되지만 도달하지 못하고, 슬픔은 “울음이 되지 못한 채” 무음으로 머문다. 이는 언어와 감정 모두가 마르는 상태를 뜻한다.
중반부에서 새와 사람은 각각 “마른 처소”와 “제단 아래”에 위치한다. 이는 자연적 존재와 종교적 존재를 병치함으로써, 본능과 신앙 모두가 구원의 기능을 상실한 상황을 드러낸다. 특히 “마른 고기와 치즈가 그려진 금빛 액자틀”은 풍요를 상징하는 이미지이지만, 실제 양식이 아니라 그림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재현된 구원, 형식만 남은 신앙을 암시한다.
“영혼들은 스스로 자기를 먹으며 버텼다”는 구절은 외부로부터의 공급이 완전히 끊긴 상태에서, 존재가 자기 소모로 연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가뭄이 육체적 결핍을 넘어 윤리적·영적 소진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후반부에서 시는 “결정적 형태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이 고통에 원인이나 해답, 완결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가뭄은 해석되거나 극복되지 않고, 단지 “깊어지고” “피가 굳어가며” “식량이 가루가 되어가는” 상태로 지속된다.
결국 이 시에서 가뭄은 물의 부재가 아니라, 응답·구원·형태의 부재다. 새의 눈물과 사람의 모은 손은 존재의 마지막 몸짓이지만, 그것이 신앙을 “넘어간다”는 표현은 기도가 더 이상 믿음의 질서 안에 머물지 못하고 절박한 생존 행위로 전락했음을 보여 준다.
이 시는 가뭄을 통해 세계가 더 이상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끝내 소멸하지 않고 버티며 반복되는 시간 속에 놓여 있음을 건조하고 집요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