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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김형진 시집 『언제나 어제는 내일』 해설 | 순수 고독의 삶과 시 / 강인한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6.01.25|조회수215 목록 댓글 1

   순수 고독의 삶과 시

     ―김형진 시집 『언제나 어제는 내일』 해설 

 

       강인한

 

 

   (표지 사진 _ 새벽의 곰소 바다)

 

     작가 김형진의 수필 제자들이 유고 시들을 모아 시집을 묶기로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시집 뒤에 붙일 글을 부탁하기에 그 해설은 내가 맡기로 자청하였다그가 지도교수로 맡아 가꾸는 동인들 이름이 ‘순수필 동인’이다순결순금순수순정…이라는 말들의 ‘순’일 것이다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순수함을 추구하는 수필 동인순수필고인이 추구하는 삶 또한 순수였을 법하다하지만 본의 아니게 그가 내내 추구한 삶은 고독 아니었던가어떤 시인은 절대 고독을 추구했으나 김형진의 고독은 샘물처럼 순수한 고독을 살았다 할 것이다삼 남매를 두었지만 독신 생활이 반평생도 넘지 않겠는가 싶다.

    해설과 아울러 유고집의 제목도 청하기에 시 제목으로 하나하나 들춰보았다평생의 시집 제목으로 삼기엔 적당한 게 쉬이 보이지 않았다그러다가 원고를 쓰는 도중 어떤 시의 한 줄이 눈에 띈다언제나 어제는 내일바로 이것이다 싶었다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며 소박한 제목김형진 유고시집 『언제나 어제는 내일』 한눈에 쉬운 듯 보여도 이리저리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말이다시집 제목을 듣고 고인이 빙긋 웃어줄 것 같다.      

  애당초 오래전부터 계획한 죽음은 아닐 게다천성 번거롭고 성가신 일을 싫어하는 성미라서 심상한 병이 아님을 깨닫고 내쳐 고칠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이대로 깊어지자깊어져 버리자그렇게 작정한 듯하다암 증세가 한 군데만 생긴 게 아니라 몸의 장기 여기저기에 속수무책으로 퍼진 상태가 되어서야 병원에 간 모양어떻게 손쓸 수도 없는 상태라고 했다몇 달 몇 해 끌고 싶지 않은 삶이라 생각했을 것이다술은 평생토록 못 마시는 체질이라도 담배와는 평생토록 즐기란 운명이었을까.

   원고를 모아 보내준 박 시인에게 물었다언제부터 선생님이 시를 썼던 것 같으냐고재작년이던가자기 시집 나온 걸 드릴 때 문득 “나도 시집 한 권 내고 싶은디…” 라고 말해서선생님이 남모르게 시를 써 왔다는 걸 알게 된 것이라 하였다.

 

   대학교 들어가 국문과 시절부터 쓰긴 써 보았을 것이다국문과 친구들과 뜨거운 언덕 ‘열원’이라는 동인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그 시절부터 햇수로 칠 순 없지만 근래 적어도 십 년 정도 써서 모았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생전에 내 시집 한 권’ 가진다는 것소박하지만 쉽지 않은 바람이었을 터일생에 이 한 권그 소망이 이제 유고시집이 된 것이리라모두 52편의 작품들을 4부로 나눠놓기까지 했으니이원록의 『육사시집』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처럼 김형진의 이 『언제나 어제는 내일』 유고시집이 가까운 친지와 독자들의 안타까운 마음속에 뿌리내려 깊은 사랑 받기를.

 

  먼동이 트면 산은 어둠을 털고 부스스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어둠 속에서 막혔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며 휘파람 소리를 낸다그 연둣빛 날숨소리는 먼저 숲을 깨우고 다음엔 길짐승과 날짐승을 깨워 크고 작은 숨소리로 산을 채운다.  

 

  북새가 높아지면 이웃 산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시나브로 걷기 시작한다높은 봉우리가 팔을 내리면 낮은 봉우리는 팔을 들어 서로 눈을 맞추며 배시시 미소를 교환한다.

 

  숲속에서 잠자던 낮 새들이 둥지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밤 새들은 둥지에 찾아들어 잠을 청한다나무들이 잎에 내린 이슬로 세수를 하고 새맑은 얼굴로 인사를 청하면골짜기 흐르는 물이 맑은 음성으로 고요를 깨운다.

 

  산의 소리 없는 걸음은 어느새 우리 동네 옆 공원에 다다라 잠시 머물다가 햇살이 내리쬐면 나무와 새와 연둣빛 날숨만 남기고 잽싸게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간다.

 

  햇빛 밝은 아침 우리 동네 사람들은 숲에서 새어나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연둣빛 숨을 들이마신다.            

   —「새벽 산」 전문      

 

 

   여기 시인이 정색을 하고 자세를 단정히 하여 대면한 첫 대상은 새벽의 산이다시의 길에 들어서는 그 굳은 마음과 추구하는 높은 뜻을 비춰주는 대상이 산그것도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새벽의 산이다시적 화자가 그려내는 산은 산수화나 풍경화 속의 정지된 산이 아니다이 시 속에서 산은 살아 움직이는 존재며 온갖 길짐승과 날짐승을 키우며 다독이는 신성한 존재로서의 산이다먼동이 트는 시각부터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사물들을 크고 작은 숨소리로 불러내고 있다.

 

   어둠을 뚫고 바야흐로 붉은 노을빛(북새)이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그 시각에 산은 앞뒤며 옆에 위치하고 있던 이웃의 산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서로 인사하고 미소를 주고받는다낮에 일하러 나서는 새들은 둥지 밖으로 나서고밤에 일하고 돌아온 부엉이 올빼미 같은 밤의 새들은 둥지를 찾아 잠을 청한다.

   소리 없는 걸음걸음으로 우리 사는 동네 근린공원까지 찾아온 산은 잠시 머물렀다가 연둣빛 날숨을 내뿜으며 재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햇빛 밝고 아름다운 우리 동네 사람들은 아침의 신선한 산의 연둣빛 숨을 들이마신다.

   건강한 하루가 이제 시작될 참이다.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가 그려낸 산은 단순히 높고 엄숙한 존재가 아니라 삼라만상과 친근한 인사를 건네며깨끗하고 신선한 연둣빛 숨을 고루 나눠주는 다정하고 인간적인 산이다찾아가서 그 산 속에서의 여러 가지를 보고 만지고 하는 능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화자는 근린공원까지 발걸음을 하여 내려온 산과 조우하고 있을 뿐이다젊은 시절이라면 저 가까이 보이는 산을 날마다 찾고 싶은 심정이었겠지만이렇게 상상의 날개를 이용하여 산을 불러오는 시인의 심경이 어떠할까.

 

비 퍼붓는 소리 밤새 요란터니

아침에 나가 보니 마당에 미꾸리 한 마리 꿈틀꿈틀

그걸 보고 할머니는 하늘서 떨어졌다네.

 

집시랑 물길 두엄저리 옆 도랑

웅덩이 되어 맑은 물 괴었는데 송사리 두어 마리 꼬리를 저어

그걸 보는 내 눈엔 하늘의 선물.

  ―「하늘의 선물」 전문

 

 

   시인은 요즘의 폭우가 도로에 넘치고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 피해를 내는 사건 사고들을 매스컴을 통해 잘 안다그러면서도 그와는 좀 거리가 먼 옛날의 물난리를 본 재미있는 기억 한 장면어릴 때 할머니와 더불어 신기한 경험으로서의 희한한 일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그려낸 게 이 시다거대한 소용돌이 회오리바람이 지상의 자질구레한 생명체까지 휩쓸어 물과 함께 움켜 가서 먼 거리를 이동하여 스르르 풀어질 때가 있다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눈으로 보고 겪은 그런 현상을 당시엔 용오름이라고 표현했다실제로 하늘에서 미꾸라지나 작은 물고기들이 휩쓸려 올랐다 비와 함께 쏟아지는 걸 본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물고기 개구리 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강한 상승 기류가 발생하여 주변의 가벼운 물체들이 갑자기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미국에선 토네이도라고 부르는 기상 현상이다지표면에서 갑자기 발생한 상승 기류가 강력할 경우 개구리송사리작은 옷가지 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물고기 비’라고도 말하고 ‘동물 우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오름을 보았던 어린 시절시인의 가족은 6.25 전쟁 바람에 휘말린 맏아들의 행방을 찾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전쟁이 삼년으로 끝날 때까지그 겨울의 불안하고 불길한 기다림은 음울한 판화처럼 그려지는 시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징소리는 어둠 속에서 벌겋게 번득이는

야수의 눈빛이 되어 우리 방 문구멍을 노리고

우리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

 

그 겨울,

아침에 나가 보면 얇게 깔린 눈밭에

어지러이 찍힌 발자국이

얼음 되어 서걱거릴 뿐.

 

마당가 개가죽나무를 점령한 까마귀 떼가

아침 햇살을 부리로 쪼며

우리 집 용마루를 위협했지.

 

그 겨울,

아버지의 숨찬 팔매질에

까마귀 떼 허공에 떠올라

쉬쉬 바람 소리를 내었지.

 

전쟁 바람에 휘말린 형님의 종적을 찾아

무명 목도리를 두른 어머니

바깥세상 떠돌았지.

 

그 겨울,

나는 북풍받이 언덕에서

먼 하늘을 향해 연을 날렸지.

바람 실린 연실을 한도 없이 풀다가

 

하늘 속에 묻혀 가는 하얀 방패연을

팽팽한 얼레질로 연신 확인했지.

 

청동빛 하늘 속에 묻혀 가던 하얀 방패연은

소년이 지나고청년이 지나고장년이 지난

이즈음에도 팽팽하게 연실을 끌어가고 있지.

  ―「그 겨울」 부분

 

   온 나라를 피바람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한국전쟁 삼년간의 기간에 남북에서 죽은 군인들과 더불어 민간인이 전쟁 후에 부역자로 처형된 수가 더 많았다고 했던가남북 도합 무려 3백 5십만 명이라는 비극의 희생자 집계 통계 숫자가 밝혀졌다전쟁 중 어머니가 시인의 형을 찾아 헤매는 모습은 안타깝고 안타깝다「뻐꾸기」란 시에 그려진 비통한 사연이 바로 그것죽은 형이 차마 자식을 찾는 어머니가 그리워 뻐꾸기가 되었을까그래서 “옛집 찾아”와서 뻐꾸기는 “구슬피 울”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뻐버꾹뻐꾹뻐버꾹

 아파트 숲 꼭대기서 새끼 뻐꾸기 웁니다.

 탄두 없는 포성이 집터를 뒤집던 날

 전쟁 통에 할미 잃고 어미도 잃어

 혼이 나가 분간 없이 떠돌다가

 옛집 찾아 아들 구슬피 웁니다.

    ―「뻐꾸기」 부분

 

   아버지어머니그리고 시인 형제가 살던 옛날의 고향고향집은 전쟁 통에 쑥대밭이 되어버렸고 마을의 늙은 고목이 청승스러울 뿐부모와 형제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살던 단란함이 그리워 하루도 잊은 적 없어 그리움은 시인의 한이 되었다먼저 돌아가신 아버지를 비롯해 중년 넘도록 모시고 산 어머니를 그린 시들「아버지의 휴식」「알약」「흰 고무신」「혼유석」「우리가 산다는 것」「도둑」으로 펼쳐지는 ‘집’ 혹은 ‘핏줄’에 대한 생각이 한 시도 가슴속을 떠난 적 없었을 것이다젊은 시절 바둑과 낚시를 취미로 소일하는 이면에는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번뇌와 뼈아픈 고독의 삶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으리라.

  시인의 고향은 전라북도 서해안의 부안군 줄포면이다줄포란 지명의 ‘포’는 작은 포구 곧 갯바닥바다와 접하고 있다는 의미다한국전쟁 터지기 직전 소년기의 모습을 그려낸 자화상 같은 시를 한 편 읽어본다.

 

 

개펄에 고물을 처박은 어선의

삭은 돛대가 안개 속에 떠 일렁인다.

길을 잘못 든 늙은 갈매기 한 마리가

수직으로 내리박힌다.

 

어판장魚販場 눈부신 양철지붕 위에서

펄럭이던 오색 깃발,

내 어린 시절의 빛나던 꿈이

무너진 방파제 밑 그늘에 흩어져 있다.

 

바람은 가물거리는 죽도竹島 

반짝이는 파도 속에서 잠을 자고

개펄에는 스멀스멀 어둠이 번진다.

 

부둣가 주막집 살 빠진 창문 틈에서도

어판장 휑한 양철지붕 위에서도

어둠은 녹슨 칼을 갈며 길목을 지켜,

 

밀물도 썰물도 오갈 데 없이

막혀 버린 고향 길.

 

멀리 의상봉 꼭대기에

금빛 낙조 한 점 떨어져 있다.

  ―「줄포항」 전문

 

   지금은 항구라는 말이 너무나 어색한 갯가 줄포면이지만 어엿한 항구였다소년 시절의 기억을 이 한 편의 시는 생생하게 소환하고 있다“개펄에 고물을 처박은 어선”이며 “삭은 돛대”와 “어판장 낡은 양철지붕” “펄럭이던 오색 깃발”등 사실적인 그림의 구도가 손에 잡히는 듯한 실감으로 독자들 가슴을 파고든다“어린 시절의 꿈이무너진 방파제 밑 그늘에 흩어져 있다”는 시간과 공간을 접고 넘나드는 과감한 붓 터치의 감각적 표현 기법그리고 “멀리 의상봉 꼭대기에금빛 낙조 한 점 떨어져 있다. 는 카메라 워크의 원경을 배치한 기법은 영화적 실감을 느끼게 한다정말 빼어나게 역동적인 작품이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는 박정희 군사정부의 근대화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 농촌 내지 농경문화가 해체되던 시기라고 할 것이다이 무렵을 잘 상징하고 있는 김형진의 다음 시는 그런 뜻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산골 동네 들머리  

사람 무덤보다 덩실한

무덤 하나 있어

 

동네 할아버지 말,

여그가 본래는 사람 살던 집턴디

이렇게 소 무덤만 덩실 남었지라우

 

(중략)

 

머리에 온통 피를 뒤집어쓴 황소

호랑이불보다 더 무서운 돌진에

주인 기함하자 황소도 콧김 한 번 크게 뿜고

고꾸라졌다고 하드만이라우.

 

이튿날 해 밝아 모여든 동네 사람들

마당에 소 묻어

시방은 덩실한 소 무덤으로 남었지라우.  

 

덩실한 무덤에서 이제도 내뿜는  

거친 콧김 소리

  ―「소무덤」 부분

 

   주인과 집안 일꾼인 황소가 스물다섯 해를 같이 살았다 한다어느 늦가을 삼십 리 장을 보고 쇠전에 들러 늙은 소를 팔고 집에 돌아왔다팔려나간 황소가 피투성이로 집에 돌아와 쓰러져 죽었다인정에 짐승의 애틋한 행동이 눈물겨워 사람 무덤 못지않은 소 무덤을 만들어 다독여준 실화라고 한다.

  토끼사냥기가 막힌 호랑이청개구리 ―세 가지를 한데 묶어 하나의 제목을 삼은 시 「거짓의 힘」이 눈에 띈다상급생이 거짓말로 산토끼가 많은 골짜기를 일러주고 그 말을 곧이들은 하급생들이 허탕치고 돌아온 이야기호랑이가 자기보다 무서운 존재로 곶감을 두려워했다는 민담 설화덩치 큰놈들에게 억눌려 청개구리는 조용히 나뭇잎 뒤에 붙어산다는 이야기 등이건 단순한 해학을 위해서 쓴 만담 같은 시가 아니다제목에 ‘힘’이란 말에 주목해야 할 시라고 읽어야 한다거짓말을 주의해야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의 힘에 주목하라는 것그렇다거짓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건 착한 언행이라 할 법하다그러나 거짓말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낭패를 겪게 하는 건 죄악이다.

 

   현대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시대다이성적 판단에 앞서 눈속임의 거짓말에 가볍게 속지 말 일이다세상은 속아서 사는 자를 비웃을 뿐속아 넘어간 이를 편들어주지 않는다뻔한 거짓말로 대중들을 호도하여 당당히 높은 자리를 차지한 자를 우리는 보았다그리고 그는 떵떵거리며 터무니없는 일을 저질러 망신을 자초한 걸 우리가 어제오늘 보고 있는 형편이다실인즉 그 허우대만 멀쩡한 희대의 사기꾼은 평소 그 자리가 어떤 자리가 되었건 쌍욕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천박한 위인이었다그에게 속은 자만 억울한 걸까경계해야 할 건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의도적인 ‘거짓의 힘’이란 사실을 무겁게 깨달아야 한다.

   시인은 조상이 경주 김씨라고 하였던가신라 적 이야기를 기술한 고려시대 간행된 『삼국유사』에서 뽑은 시편들 중 한 편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찬찬히 새겨 볼 일이다여기에 시인이 생각하는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것은 어떤 세상인가.

 

신비한 음률 하늘에 닿아

신라의 바다 파고波高가 잦았단데

그적 전능

이적 뭍에 올라 어느 골에 은거하나

 

울울창창 백두대간 남으로 흐르고

골짜기 맑은 물도 남으로 흐르는데

어느 산 어느 골에 숨죽이고 숨어 있나

 

거품 문 거짓이 칼날로 휘몰아쳐

산맥에 낭자한 한숨 능선마다 맺히고

산골에 검은 물 히죽히죽 맴도는데

 

바위 섬 대나무는 뿌리마저 메말라

천심이 민심인지민심이 천심인지

마른 입술 깊은 시름 음률 잃은 고을고을

하늘은 맥없이 먹구름만 나나.

 

남에서 태풍 북에서 한파

움츠러드는 가슴에

입도 코도 자유 앗은 감염의 맹위

입 닫고 코 막고 혼자 쉬는 숨

 

세상 시름 잠재웠던 그 음률

거품 문 거짓이 쪼개버렸나

먹구름 낀 하늘에 닿지 못하나.

 

동해 서해 물줄기가 달라선가  

물빛 다르고 인심도 다른데

그 달밤 처용 춤은 동서가 한 사위

 

삼국 민심 하나로 묶던 신비한 그 음률

밝고 맑게 솟구쳐 하늘에 닿아  

동서남북 산맥이랑 강줄기 그대로

막힌 데 맺힌 데 트이고 풀려

그 강산 그대로 한결 푸르른 하늘….

 

*만파식적『삼국유사』 기이제이紀異第二에 나오는 피리

 

    (2025.12.13 탈고)

 

 

 

사족(蛇足) —김형진 시인이 이 시에서 염원하는 그 큰 꿈을 생각해 본다. 남북 한 민족이 화합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동서 갈등의 해소, 박정희가 일신의 성취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어처구니없는 동서 갈등도 사라지기를 얼마나 애타게 소망하고 있는 건지. 정읍호남고등학교에서 7년, 광주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27년간 국어과 교사로 필자와 함께 근무한 수필가며 시인인 김형진 선생님은 전북대학교 2년 선배. 본명은 김길전. 어제(2026.1.24) 오후에 시인이 지도한 '순수필 동인회' 주최로 전주에서 고인의 1주기 추모회 겸 유고시집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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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산벚나무 | 작성시간 26.01.26 김 선생님과 직장에서 그분의 삶을 가까이해본 사람으로서
    욕심 없이 소박하고 순수한 삶을 살다 가신 그분의 생전 모습이 생각납니다
    유고 시집 만드신 순수필 동인과 시집 뒷글을 쓰신 강인한 선생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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