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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에세이

문태준, 「극빈」감상 / 성선경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11.11.14|조회수447 목록 댓글 0

문태준, 「극빈」감상 / 성선경

 

극빈

 

   문태준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시집 『가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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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 1970년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 발달』.

 

 

 

   저 나비는 좋겠다.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열무꽃잎이어서. 열무꽃밭이어서. 살아오면서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 하나 없는 우리는 얼마나 가난하냐. 그 마음 얼마나 가난 하냐. 꽃잎 하나 곁에 두지 못한 우리는 얼마나 가난하냐. 우리도 가끔 열무밭을 열무꽃밭으로 만들어보자. 그러면 우리의 무릎도 따뜻해질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마음이 극빈에 가 닿았다.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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