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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커스 천막 안에서 / 강성은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08.02.10|조회수287 목록 댓글 0
서커스 천막 안에서

강성은




내 남편은 마술사에요
내 머리털에 기름을 끼얹고 성냥을 그어요
나는 커다랗게 환하게 웃어요 내 머리는 불타요
내 남편은 마술사에요
불 속에서 싱싱한 장미꽃을 피워 올리지요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소리 질러요 환호해요
붉은 장미 한 송이씩 따서 어여쁜 소녀들에게 나눠주지요
내 남편은 마술사에요
줄기와 가시만 남은 내 머리 속에 신비한 향신료를 넣고 휘휘 저여요
나는 커다랗게 환하게 웃어요 내 머리는 부글부글 끓어 넘쳐요
내 남편은 마술사에요
내 머리 속에 끓고 있는 스프를 국자로 떠 먹어요
사람들은 냄새를 맡고 취해요 서로의 먹이통을 쪼개요 개들이 달려와요
내 남편은 마술사에요
검은 재로 남은 나를 주워 모아 손으로 비벼요 훅 불어요
나는 커다랗게 환하게 웃어요 나는 어두운 천막 밖으로 날아가요
내 남편은 마술사에요
긴 모자 속에 숨겨둔 내 머리털 하나로 다시 나를 만들어요
나는 새로 태어나 당신이 가르쳐준 대로만 자라나요
안녕, 안녕, 안녕 우리는 방긋 웃으며 주문을 외워요
천막 안으로 달이 거대한 몸을 밀고 들어와요
사람들은 출구 찾지 못해 달에게 깔려 납작해져요
마술은 슬프고 우습고 달콤하고 거대하게 끝나가요
나는 태어났다 죽었다를 반복하며 천막 안에서만 살아 있어요
내 남편은 마술사에요


―계간 『시와 사상』200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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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숙명여대 불문과에 입학하여 휴학 중.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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