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외 1편)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허공
하얀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빨갛고 가녀린 발이 뿅뿅뿅 밟고 갔으리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 그것은 끝나고
새파란 허공에
해맑은 새 한 마리 실루엣으로 찍혀 있다
어쩌나
내 발자국 끝나는 곳에서 둥실 떠올라
나도 저처럼 하늘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해맑기는커녕
검고 칙칙한 얼룩으로 누더기가 되어
허공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
신경림 /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농무』『새재』『달 넘세』『가난한 사랑노래』『길』 『쓰러진 자의 꿈』『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뿔』, 장시집 『남한강』, 산문집 『민요기행』『바람의 풍경』 등.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만해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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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하얀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빨갛고 가녀린 발이 뿅뿅뿅 밟고 갔으리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 그것은 끝나고
새파란 허공에
해맑은 새 한 마리 실루엣으로 찍혀 있다
어쩌나
내 발자국 끝나는 곳에서 둥실 떠올라
나도 저처럼 하늘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해맑기는커녕
검고 칙칙한 얼룩으로 누더기가 되어
허공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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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농무』『새재』『달 넘세』『가난한 사랑노래』『길』 『쓰러진 자의 꿈』『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뿔』, 장시집 『남한강』, 산문집 『민요기행』『바람의 풍경』 등.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만해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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