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실 김민채 잠실에 간다 빗소리 같은, 시간을 갉아먹는 초침 소리 아삭아삭 맛있는 초록 물 뚝뚝 떨어지면 아이들은 손톱에 검은 물이 들어서 누에처럼 여물어 갔다 뽕잎을 따고 뽕잎을 나르고 뽕잎을 먹이던 순환 회로에 불이 켜질 때에야 나는 뽕잎을 덖었다 제대로 된, 따끈한 맛 네댓 번 보여주면 기죽을까 불 속에서 연단 받는 풀잎, 여린 풀잎들 지하철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날 때 굴을 뚫고 굴을 빠져나올 때 귀 닫고 눈 감고 스스로를 가두는 잠실의 풍경 속 깊은 잠 저마다 둥근 집을 짓고 마지막으로 천문을 닫아야 하늘과 내통한다는데 달빛 들어 올리는 소리에 쿨럭, 잠실이 흔들린다 할머니는 밤새 실을 뽑고 날개를 달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가고 몰려오는 잠실역 4번 출구 달 바깥으로 손을 뻗은 아이들이 제 이름을 버리고 뜀박질하는 소리 들린다 오두개가 익어간다 ―시집 『노랑으로 미끄러져 보라』 2022. 7 ------------------- 김민채 / 1967년 전북 고창 출생. 2008년 월간 《시문학》 등단. 시집 『빗변에 서다』 『노랑으로 미끄러져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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