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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근처를 앓다(외 1편) / 정선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2.07.26|조회수429 목록 댓글 0

근처를 앓다 (외 1편)
 
   정 선

 

 
어떤 사람의 가슴 한가운데 들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서성이는
호수에 던진 돌멩이가 만드는 파문 같은
폐부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리는 콘트라베이스 저음 같은

근처, 라는 아픈 말
화들짝 물러나
종소리를 앓으며 냉가슴의 저녁을 맞이하고
딱지 앉은 절망의 새벽을 여는 말
‘그곳’이 아닌, 근처
내가 근처를 맴도는 건
발이 오래전부터 해 오던 육담즙질 얘기
그 얘기는 상처가 되어 발바닥에 못 박히고
바람이 뜨거운 상처를 악보처럼 명랑하게 연주할 때
가슴에서는 건강한 구름들이 피어나곤 한다
이를테면 비늘구름 면사포구름 두루마리구름
그 구름들은 잡담도 웃음으로 간직한다지

이제 구름의 근처에서 산뜻하게 책장을 넘길 줄 아는,

 

이 가을
나는 또 무엇의 근처일까 
 

 

 

마추픽추에서 띄우는 엽서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픈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이른바 비굴 한 자루를 등에 지고
비 오는 새벽 여섯 시 마추픽추
라마가 잉카 이슬을 맨 먼저 밟는 곳

 

떠도는 그
대신 바람이 읽겠다
흔들리는 바람
대신 콘도르가 울어 주겠다

 

석벽의 붉은 꽃 한 송이
니 맘 안다
니 맘 안다
편히 쉬어 가라고
고개를 끄덕이겠다

 

고독은 우루밤바 계곡처럼 골이 깊고
고통의 음조는 다분히 변덕이 심해서
내 불구를 저 와이나픽추 안개가 쓰다듬겠다

 

 

                ―시집 『마추픽추에서 띄우는 엽서』 202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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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 본명 정경희. 1963년 전남 함평 출생. 전남대 국문학과 졸업. 2006년 《작가세계》로 시 등단. 시집 『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 『안부를 묻는 밤이 있었다』 『마추픽추에서 띄우는 엽서』. 에세이집 『내 몸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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