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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커브 (외 1편) / 최지인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2.07.28|조회수579 목록 댓글 0

커브 (외 1편)

 

   최지인



과거가 말하길망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의자에 앉아 세월을 곱씹었다

몇 가지 사건들; 제주 오키나와 타이베이 마닐라 싱가포르 스리랑카 마다가스카르 아이티 홋카이도

해변의 모래알
그것은 비슷한 정서미래가 중단되었다고 내다보지만나아가는 이들 모르는 곳으로,

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나는 
쓸쓸해서 
바리케이드 앞에 선 시민 

동지가 경찰에게 발각되어 끌려갔을 때 의자에 웅크려 작은 몸을 숨기고

하늘에서 폭죽 같은 게 터졌다 빛을 잃은 파편들 무너진 돌벽들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느 날 네가 사라졌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홀로

도시에 남겨졌다

봉인된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문 열면

구경꾼들이 모여 있을 것만 같다

잠시 쉬고 싶어

콩은 생각했다 움직이지 않은 채

땅속에서

운명을 헤아렸다 

죄를 짓지 않을 아이와 같은 해에 태어난 나는 그에 비해 안온한 시절을 보냈다 그의 모국; "독재자에게 죽음을외치는 거리를 걷다 보면 죽은 자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태어나선 안 됐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후를 도모하자

분노하라 
여러 해 동안 
친구의 유고 시집을 읽고 있다 

너는 다음 생에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지 
부족한 게 많았어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모르겠지 
울어도 이상하지 않지 

내가 아니게 될 때 
네가 아니게 될 때

맨손으로
그릇을 깨끗이 씻었다 

여름이면 집집이 창 열고 
바람 되어 

잠들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고 도통 알 수 없던 마음도 투명해지고 

겨울에 입을 스웨터도 다 짰다
이제
생생하다

미래가 말하길

 

 

 

침엽수
 

 

 
나무가 된 흰 뱀이 천년을 살았다

 

그것을 지탱하는 수많은 지지대

 

제발 살아주세요 절대 무너져선 안 돼

 

살아야 하니까 내가

 

가려진 것들

 

네 얼굴이 가물가물해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

 

투명한 숫자들 돌멩이들

 

갈림길에 서 있다

 

웃었지?

 

벼락처럼

 

쪼개진 네 얼굴

 

벼락처럼

 

전 세계로 송출되는 전쟁 이미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죽은 이와 죽을 이가 모여 웃고 있는 사진 한 장

 

영혼의 상처는 몇 세기가 지나야 아물까

 

바닥에 배를 대고

 

떨어진 잎들을 통에 담았다 그것들은 도시에서 까맣게 될 것이다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라는 명령

 

나는 알았다 내가 살아남을 것을 늙어 본 사람들과 함께 사물처럼

 

도로에서 죽은 고라니 곁을 산 고라니가 지키고 있다

 

 

 

             —월간 《현대시》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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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 1990년 경기 광명 출생. 2013년 《세계의 문학》신인상으로 시 등단. 시집『나는 벽에 붙어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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