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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사이 / 김산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2.07.29|조회수498 목록 댓글 0

사이

 

    김 산

 

 

 

케일과 상추 사이, 당귀와 딸기 사이,

도톰한 흙무덤을 만지면 스펀지처럼 폭신하다

 

무릎을 구부린 동그란 공벌레가 잎사귀 사이,

그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오후 햇살 위로 벌레들이 지나간 그 사이,

바람이 궁리를 하다 이파리에 작은 구멍을 낸다

 

식물을 보고 있으면 꿈틀거리는 게 보여서 질끈 눈을 감다가

다시 눈을 뜨면 그 사이, 한 뼘씩 내가 자란다

 

조금 늦게 자라도 돼,

햇볕도 바람도 잠시만 저 사이에 머물러다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그 사이,

나는 지금이 너무 좋아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제는 여든다섯 아버지의 굽은 목과 낡은 메리야스

그 사이에 떨어진 말 못할 시간을 몰래 주워왔다

 

이 세상의 사이들이 시절만큼 적당히 멀어져서

식물 뒤편의 잎사귀들을 음각으로 주름지게 한다

 

 

           —계간 《청색종이》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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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 1976년 충남 논산 출생. 2007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키키』 『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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