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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읽기

[시]콧수염이 아프다 / 류흔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2.07.31|조회수343 목록 댓글 0

콧수염이 아프다

 

   류 흔

 

 

 

안 먹던

드립커피를 사자마자

후회했다.

식은 그것을

들입다 마시다가

대충 붙인 스티커처럼

콧수염에 거품이 붙어서

지나가던 개가

하하하

웃었으므로.

 

테이크아웃 가게에서

다시는

드립커피를 사지 말아야지.

하던 대로

평범한 커피를

마셔야지.

이런 결정을 하니 콧수염이

다소

다소곳해졌다.

 

한편 생각해보면

내 콧수염은

공기가 왕래하는 처마 아래

베란다에 모여 있다.

거기는 내가 숨겨 놓은

깨알 같은 화분이 있고

달팽이가 있고

어젯밤 뒷골목에서

실수로 묻혀놓은 자두색

게으른 루주가 있다.

 

나는 버릇대로

현관문을 열기 직전에

혀로 싹싹

핥아서

재빨리 정돈한다.

그럴 때 콧수염은 내 침 비린내를 고까워하면서

속삭인다.

“완벽하다고 여기는 건 아닐 테지?”

 

완벽한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나.

애인과 함께

전립선도 그렇고

콧수염 곳곳으로

전염되는 흰색 털 문제는 그야

말로 심각하다.

“개당 5백 원.”

마누라가 뽑기를 제안한 그날 밤부터

각방을 썼다.

 

궁지에 몰린

내 눈동자를

콧수염이 올려다보며 위로했지만

나는 한층 슬퍼졌다.

“시나 써야지.”

이럴 때 시를 쓰면 기분이

업 된다.

이럴 때 시 쓰면 정말로

기분이 업 된다고

 

언젠가 마누라에게 털어놓았더니

“나도 시 쓸까?”

라고 그녀가 말했었다.

나는 당시에

참말로 어이없던

열악한 분위기가 생각나서

흰 털과

검정 털

귀한 고동색 털을 구분하지 않고

콧수염을 잡아

비틀었다.

 

 

          ―계간 《문예바다》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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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흔 /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아 2011년 시집 『꽃의 배후』 발간으로 등단. 시집 『꽃의 배후』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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