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 (외 2편)
정현종
잃어버린 시가 얼마나 많으냐.
메모 안 해서 잃어버리고.
허공에 날려 보내 잃어버리고.
또 올 테니 잃어버리고.
세상에 널려 있어
잃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잃어버리고.
그로 하여 유쾌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놓아 보내고……
껄껄대며 놓아 보내고……
시간은 간다
—콜라주
1
나의 탄생은 내가 몰랐으니
나는 처음부터 아는 게 없었다.
2
그렇지 않은가
모든 때가
‘때가 때이니만큼’ 아닌가.
그렇거니, 그렇거니!
3
(괜히 허세를 좀 부리자면)
시간이 가는 것도 두렵지 않고
시간이 가지 않는 것도 두렵지 않다.
4
시간은 가는 것이기도 하고
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니……
포옹
모든 게 싹튼다
포옹 속에서.
부화하고
태어난다
포옹 속에서.
피어나고
날고
흐른다
포옹 속에서.
(포옹 이외에 이념이 없고
포옹 이외에 종교가 없다)
그리하여
지구는 꽃핀다
포옹 속에서.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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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 1939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 추천 완료로 시 등단. 시집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그림자에 불타다』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시선집 『고통의 축제』 『이슬』. 그밖에 시론과 산문집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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