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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이비박스 / 조은설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22.11.10|조회수373 목록 댓글 0

베이비박스

 

   조은설

 

 

 

나는 먼 우주에 뿌려진 별의 씨앗 하나

엄마를 찾아

천 개의 비번을 풀고

바람의 손을 잡고 구름 징검다리를 건너

지구별에 왔지요

 

우리 엄마는 열여섯 살 비의 소녀

햇빛 한 올 들여다보지 않는

바위 그늘 틈서리에 웅크린

작은 제비꽃이죠

 

배꼽의 탯줄도 자르지 못하고

배냇저고리 한 벌 없는 나는

엄마의 속옷으로 휩싸인

한 움큼 붉은 슬픔

 

달의 숨소리

새벽이슬에 흠씬 젖고 있어요

갈대 상자 속에 나를 담아 나일강에 띄우고

내 푸른 눈 속에서 우화한 잠자리 엄마

이만 개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어요

 

나는 상자 속의 허공을 단단히 감아쥐고

내 가는 허리에

엄마의 슬픔을 비끄러매었어요

노란 샌들 한 짝

갈대밭에 걸려 흔들리는데

엄마의 눈물이

나일강의 새벽을 끌고 달려가네요

 

 

           —시집 『천 개의 비번을 풀다』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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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설 / 본명 임생. 1995년 《월간문학》 신인상 동화 당선. 2012년 《미네르바》 신인상 시 당선. 시집 『소리들이 사는 마을』 『아직도 나는 흔들린다』 『사랑한다는 말은』 『거울 뉴런』 『천 개의 비번을 풀다』 등. 동화집 『밤에 크는 나무들』 『파란 구슬의 비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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