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조은설
나는 먼 우주에 뿌려진 별의 씨앗 하나
엄마를 찾아
천 개의 비번을 풀고
바람의 손을 잡고 구름 징검다리를 건너
지구별에 왔지요
우리 엄마는 열여섯 살 비의 소녀
햇빛 한 올 들여다보지 않는
바위 그늘 틈서리에 웅크린
작은 제비꽃이죠
배꼽의 탯줄도 자르지 못하고
배냇저고리 한 벌 없는 나는
엄마의 속옷으로 휩싸인
한 움큼 붉은 슬픔
달의 숨소리
새벽이슬에 흠씬 젖고 있어요
갈대 상자 속에 나를 담아 나일강에 띄우고
내 푸른 눈 속에서 우화한 잠자리 엄마
이만 개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어요
나는 상자 속의 허공을 단단히 감아쥐고
내 가는 허리에
엄마의 슬픔을 비끄러매었어요
노란 샌들 한 짝
갈대밭에 걸려 흔들리는데
엄마의 눈물이
나일강의 새벽을 끌고 달려가네요
—시집 『천 개의 비번을 풀다』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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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설 / 본명 임생. 1995년 《월간문학》 신인상 동화 당선. 2012년 《미네르바》 신인상 시 당선. 시집 『소리들이 사는 마을』 『아직도 나는 흔들린다』 『사랑한다는 말은』 『거울 뉴런』 『천 개의 비번을 풀다』 등. 동화집 『밤에 크는 나무들』 『파란 구슬의 비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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